"운동은 맞으면서" 폭력 일상화.. 보복 겁나 신고도 못한다 [반복되는 '학폭 악몽', 이대론 안된다]
승리 지상주의에 체벌 당연시
폭력 당해도 80%가 신고 안해
지도자·선수 인식 개선 시급
최숙현법 시행.. 신고 의무화 上>
일부 프로배구 스타의 학교폭력 파문이 사회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체육계의 폭력 사건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매년 양상을 다양화해 이어지고 있어 그만큼 뿌리가 깊다. 전문 기관들은 △운동부의 '폭력 내재화' △신고 체계 부재가 근본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생 시절부터 해결할 수 없는 폭력에 노출된 선수들이, 학폭에 이어 실업·프로선수가 되어서도 폭력의 일상화에 노출된다는 분석이다. 최근 선수들의 폭력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자, 관련 기관들은 신고 제도화와 함께 조사 강화 대책을 내놓은 상황이다. 다만 지도자·선수들의 인식 개선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폭력 내재화·신고 부재, 학폭 불러
18일 체육계 등에 따르면 코치·동료 선수 간 폭력 사건은 매년 형태와 대상만을 달리해 반복되고 있다. 2019년에는 코치에 의해 자행된 빙상계 성폭력 사건이 불거졌다. 이어 지난해에는 동료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해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최숙현 철인3종경기 선수의 사연이 알려지며 대중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전문가들은 '학생 운동부 시절부터 폭력이 내재화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학생선수 시절부터 승리 지상주의가 만연한 환경에서, 체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돼 운동선수의 폭력이 내재화된다는 것이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하며 폭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점이 학교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지난 2019년 실시한 '학생선수 인권상황 전수조사'에 따르면, 신체 폭력을 경험한 초중고 학생선수 중 21.4%가 '스스로 잘못해서 (폭행)피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특히 초등학생 선수 38.7%는 폭력 피해를 당한 뒤에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응답했다.
안재찬 대한장애인체육회 연구원은 지난 2019년 '스포츠 현장의 인권 그리고 인권감수성' 논문을 통해 "운동선수들은 마치 기계와 같이 시합에서 우수한 성적을 생산해 내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았다"며 "구조적 문제가 현장에서의 폭력과 비도덕적 행위, 일탈, 인권침해 등의 현상을 초래했고, 급기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고 지적했다.
폭력이 내재화 된 환경에서 신고를 통한 문제 해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신체·성폭력을 경험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경우는 79.6%에 달했다.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보복 등이 우려된다'·'대처 방법을 몰랐다'는 응답이 37.5%에 달해, 신고 체계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고 최숙현 선수의 경우에도 극단적 선택을 하기 4개월여 전부터 소속팀과 대한체육회 등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비판이 일기도 했다.
■ "제도보다 인식 개선 먼저"
근본적으로 학생선수의 학교폭력 노출을 막기 위해서는 폭력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신고 체계를 제도화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권위도 지난해 시도교육청·대한체육회 등에 △학생선수 대상 인권침해 신고방법 교육 강화 △학교 내 학생선수 및 학교 운동부 지원체계 확장 △다양한 인권침해 가해자 유형에 따른 대응방안 마련 등을 권고하기도 했다.
19일부터는 스포츠 인권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개정된 이른바 '최숙현법(국민체육진흥법)'이 시행된다. 이 법안은 빙상계 성폭력 사건과 최숙현 선수의 극단적 선택을 계기로 개정됐다.
핵심 내용은 △체육인에게 인권침해·비리 즉시 신고 의무 부과, 신고자·피해자 보호 조치 강화 △ 직권조사 권한 명시, 조사 방해·거부 시 징계 요구 등 스포츠윤리센터 조사권 강화 △가해자에 대한 제재 및 체육계 복귀 제한 강화 등이다. 특히 신고 의무를 부과해 체계를 제도화했다는 점이 주목받는다. 다만 미신고에 대한 처벌은 명문화하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도 제기된다.
이에 체육계 관계자들의 폭력에 대한 인식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 연구원은 "탁상공론식의 논의와 의무적 교육은 스포츠인권의 현장 적용에 한계가 있다"며 "인권감수성의 역할과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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