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 분석]물 새는 목재창고에서 시작한 ASML, 시총 273조원 '슈퍼 을' 우뚝

권동준 2021. 2. 1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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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 2477억2500만달러
글로벌 반도체 노광장비업체
EUV 장비시장 점유율 100%

273조원 = 30여 년 만에 반도체 노광장비 리더가 된 회사 시가총액


ASML 설립 당시 회사 건물

시가총액 2477억2500만달러(2월 28일 기준) 회사. 우리 돈으로 273조7300억원이자 삼성전자 시총 절반에 해당하는 이 회사가 처음 탄생했을 때 직원들은 불안했다. 회사 문을 연 첫 사무실이 목재 창고였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물이 새는 이 사무실에서 급성장하는 반도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첨단 노광장비를 만들 생각을 하니 아득했을 것이다. 지금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슈퍼을' ASML 시작은 이렇듯 미약했다.

1984년 세계 굴지 전자회사인 네덜란드 필립스와 반도체 제조장비업체 ASM인터내셔널은 반도체가 미래 차세대 산업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도체 제조장비를 생산하고 있던 ASM인터내셔널 리소그래피(노광 장비) 사업부를 떼어내 새로운 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반도체 장비 사업 저변을 확대해 시장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ASML이다.

ASML 현재 본사

100% = 5나노 이하 미세 공정에 꼭 필요한 EUV 장비, ASML 시장 점유율

노광은 웨이퍼부터 패키징까지 반도체 대표 8대 공정 중 하나다. 실리콘 웨이퍼 위에 반도체 회로를 빛으로 새기는 작업이다. 반도체 공정 전체 시간 중에 60%를, 비용 중에서는 35%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공정이다. 현재 노광 공정은 대부분 불화아르곤(ArF) 기반 노광장비를 활용한다. ASML도 불화아르곤 노광장비로 시장 점유율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2010년 세계 노광장비 시장에서 ASML 점유율은 64%였다. 현재 ASML 점유율은 85% 이상으로 독점적 위치에 올랐다. 경쟁사로는 니콘과 캐논이 있지만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 니콘과 캐논은 반도체용 노광장비 시장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ASML 여러 노광장비 가운데 시장점유율 10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극자외선(EUV) 기반 노광장비다. 노광장비는 어떤 빛을 쏘느냐에 따라 공정 횟수를 줄이고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기존 불화아르곤은 빛 파장이 193nm다. 파장이 짧을수록 미세한 회로를 새길 수 있다. 불화아르곤으로 7나노 공정까지는 어떻게든 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하는 힘들다. TSMC와 삼성전자 등 주요 파운드리 업체들이 5나노 이하 미세 공정까지 도달한 상태인 만큼 불화아르곤 노광장비는 한계에 직면했다.

이 한계를 극복한 것이 EUV 노광장비다. EUV는 파장이 13.5nm급으로 5나노 이하 공정을 실현할 수 있다. 세계에서 EUV 노광장비를 만들 수 있는 건 ASML이 유일하다. 글로벌 파운드리 업체들이 앞다퉈 EUV 장비를 도입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EUV가 바로 장비 공급사인 ASML을 '슈퍼을'로 도약시킨 주인공이다.


40대 = 올해 ASML이 목표로 잡은 EUV 장비 생산 대수

수요가 있으면 공급을 늘려 균형을 맞추면 된다. 하지만 이 EUV 장비를 그런 상식에서 벗어난 제품이다. 워낙 장비 개발이 어려워 1년에 수십 대 정도밖에 만들지 못한다. 미세 공정을 위해 EUV 수요가 늘어나는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다. ASML 밖에 EUV를 만들지 못하니 TSMC와 삼성전자도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 올해 ASML이 목표로 잡은 EUV 장비 대수는 40대 정도다.

ASML EUV 장비.

이 40대로 TSMC, 삼성전자, 인텔 등이 나눠 가져야 한다. 반도체 회사들이 사활을 걸고 EUV 장비 확보전에 뛰어들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도 비행기를 타고 네덜란드를 향한 것도 이 때문이다. TSMC를 맹추격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서 ASML EUV 장비를 한 대라도 더 빨리 사들여야 한다. 2019년 ASML 매출 비중 가운데 EUV가 차지하는 비중은 31%였지만, 2020년에는 43%를 차지하며 가장 '돈벌이'가 되는 제품군으로 자리매김했다.

3000억원 = 치솟는 ASML EUV 장비, 최근 가격?

EUV 장비는 높이가 4~5미터에 달한다. 무게만 180톤에 육박한다. 워낙 첨단 장비다 보니 안에 들어가는 부품 수도 10만개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EUV 장비 노광작업은 진공 챔버 안에서 이뤄진다. 온도도 0.005℃ 단위로 미세하게 조절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광학계 시스템이 오염 물질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내부 모니터링도 실시간으로 진행돼야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EUV 장비 생산이 쉽지 않다. ASML 또한 장비 한 대를 만드는데 5개월 정도 시간을 들여야 한다. 반도체 제조사들이 EUV 장비로 인프라를 전환하는 추세라 수요는 급증하는데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생산 목표 대수가 있더라도 납품 기일을 제때 못 맞추는 일이 다반사다. 지금도 ASML EUV 장비를 구매하려면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보통 EUV 장비 가격은 1500억~2000억원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반도체 제조사들이 웃돈을 더 주고서라도 EUV 장비를 빨리 받고 싶어 하니 부르는 게 값이다. 올해에는 EUV 장비가 3000억원에 육박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1.5% = 삼성전자가 보유한 ASML 지분

가격을 높여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EUV 장비. 그렇다면 ASML은 누구에게 이 장비를 '우선적'으로, 또 '많이' 줬을까. TSMC, 삼성, 인텔, 마이크론 등의 수요자 가운데 현재까지는 TSMC가 가장 앞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ASML EUV 장비 생산량 가운데 40% 정도를 TSMC가, 그리고 25% 정도는 삼성전자가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객사별로 ASML 매출 비중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매출 가운데 대만향은 47%, 한국향은 26%였다. 이러한 ASML EUV 장비 확보전 성과는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네덜란드를 방문해 ASML EUV 장비 공급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향후 삼성전자 향 EUV 장비 공급량 변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ASML EUV 장비를 둘러싼 TSMC, 삼성, 인텔 등의 질긴 인연은 2012년부터 본격화했다. 당시 EUV 장비로 노광장비 기술 무게 중심을 옮기려는 ASML에 호응해 TSMC와 삼성, 인텔이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당시 인텔이 ASML 지분 15%, TSMC가 5%, 삼성전자가 3%를 사들였다. 그 뒤 TSMC는 2015년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인텔은 지분율을 3%까지 낮췄다. 삼성도 2016년 지분 절반을 팔아 초기 매입액 원금(7260억원) 이상인 7400억원을 회수했다. 현재는 1.5%만 가지고 있다.

EUV 장비로 반도체를 처음 양산한 건 삼성이다. 하지만 TSMC가 이후 EUV 장비 확보에 대규모 투자에 나서면서 현재 ASML 최대 고객사로 거듭났다.

7나노 = 이하 공정에서 대세는 EUV

반도체 시장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ASML. 그리고 EUV. 대안은 없을까. 나노 공정이 10단위 수에 이를 때만 하더라도 나노임프린트리소그래피(NIL)와 DSA(Directed Self-Assembly), 플라즈마 레이저 등이 대안으로 손꼽혔다. NIL은 나노 패턴을 입힌 스탬프를 도장 찍듯 웨이퍼 위에 전사하는 방식이다. 32나노 이하 회로를 그릴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됐다. 렌즈를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EUV보다 경제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캐논 등이 EUV 연구개발(R&D)이 한창일 당시 NIL 개발에 돌입했지만 마땅한 성과는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웨이퍼와 스탬프(마스크)가 직접 접촉하기 때문에 마모 문제 등이 지적됐다.

DSA는 성질이 다른 고분자를 하나의 분자로 합성해 웨어퍼에 도포, 가열함으로써 미세한 패턴을 얻는 기술이다.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아 공정 수를 줄일 수 있고 이를 통해 원가 절감이 가능하다. 하지만 활용 기술 면에서 NIL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마스크가 없는 플라즈마 레이저 나노그래피도 회로 패턴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강점 때문에 대안으로 꼽힌다. 그러나 아직 분해능이 EUV에 못 미친다.

EUV도 광원 에너지 부족이라는 단점이 초기에 지적된 바 있다. 이는 시간당 처리할 수 있는 웨이퍼 수가 제한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ASML이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점차 문제를 해결했다. 이제는 양산 가능할 정도로 EUV 장비를 고도화했고 7나노 이하 미세 공정에서는 사실상 막강한 위상을 차지했다. 여러 EUV 대안 신기술이 제품화하지 못한다면 한동안 EUV 천하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0.55NA = ASML 또 다른 한방

EUV 장비는 렌즈와 미러 해상력에 따라 성능이 좌우된다. 해상력은 보통 렌즈 수차(NA)에 비례한다. 이 때문에 NA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NA 수치가 높으면 해상력이 올라가 빛이 더욱 선명해지고 보다 미세한 반도체 회로 구현이 가능하다. ASML이 세계적인 광학회사 자이스 지분을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EUV 장비 NA는 0.33이다. ASML은 연구개발을 통해 차세대 EUV 장비 NA를 0.5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를 High-NA라고 부른다. High-NA를 통해 빛 왜곡을 최소화하고 회로를 더욱 미세하게 구현하도록 한다. ASML은 2023년에 High-NA 기반 EUV 장비 시제품을 공개할 계획이다. 차세대 EUV 장비 개발로 미세 나노 공정 반도체 노광 장비 시장 독점적 지위를 한층 견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REVIEW = '슈퍼 을'은 한동안 지속 전망…하지만 낮은 생산성이 발목 잡을 수도

TSMC와 삼성전자, 그리고 인텔과 마이크론 등 '갑'인 반도체 회사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기업인 건 분명하다. 그리고 EUV 시장 개화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ASML 업계 영향력은 몇 년간 강력하게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경쟁사가 없는 공급 독점이고 해당 제품에 대한 수요가 한동안 보장된다는 것이 ASML 가장 큰 장점이다. 지금은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면서 마진을 충분히 남겨도 수요가 따라와 주니 수주 관계에서도 고객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뛰어난 기술력과 시장 환경은 ASML 주가를 견인하는 최대 요인이기도 하다.

또 중국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도 점쳐진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로 SMIC 등 중국향 제품 공급에 난항을 겪고 있지만 ASML이 네덜란드 회사인 만큼 우회로를 탈 수도 있다. ASML 중국향 매출 비중은 약 20% 수준이다.

하지만 '슈퍼을'은 오래 가기 힘들다. 고객사 입장에서 차세대 반도체 노광장비를 단 하나의 기업에 의존하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장기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공급처를 다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키를 돌릴 수 있다. 파운드리 간 대체 기술 개발과 투자 경쟁에 돌입할 가능성도 언제나 열려있다. 수요 대비 너무 낮은 생산, 즉 연간 40대 안팎이라는 ASML EUV 장비 생산성은 이러한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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