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은 멋있었다" 74세 만학도가 장학금 전액 쾌척한 사연

이승규 기자 2021. 2. 1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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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 사학과 17학번 신현문씨
5년전까지 초졸..69세에 검정고시, 수능 합격
캠퍼스에선 "밥 잘 사는 멋진 형님"
신씨 "배고픔보다 못 배운 한이 더 컸다"
18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영암관에서 만학도 신현문(74·앞줄 가운데)씨가 손주뻘 동기·선배들과 함께 졸업 사진을 찍었다. 신씨는 대학원 입학으로 받은 면학장학금 전액을 고향 칠곡군에 기부했다./칠곡군

18일 오전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영암관 앞에서 재학생 정은찬(24)씨가 학사모를 쓴 동기에게 손수 그린 캘리그라피를 선물했다. “卒業(졸업)을 祝賀(축하)드립니다. 永遠(영원)한 雅友(아우) 은찬 드림. 계명대학교 史學科(사학과) 17학번 큰 형님 신현문”이라는 글귀 오른쪽에 대나무 두 그루가 그려져 있었다. 정씨는 “큰 형님이 대나무처럼 오래오래 쭉쭉 뻗어나가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큰 형님’ 신씨는 올해 나이 74세. 계명대 사학과의 만학도였다.

◇못 배운 한(恨)에 고시원서 공부한 노익장

신씨는 이날 대학에서 받은 면학장학금 100만원 전액을 고향 경북 칠곡군 호이장학회에 기부했다. 그는 “배고픔보다 못 배운 한이 더 컸다”면서 “우리 고향에서 다시는 나처럼 가난해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신씨의 숭고한 기부가 빛날 수 있도록 지역 인재 육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5년전까지만해도 신씨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다. 빈농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농사를 돕기 위해 공부를 포기해야했다. 하지만 30대가 되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공부를 할 수 있는 자본부터 모으자고 결심한 신씨는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대구로 나와 사업을 시작했다. 성공과 실패를 번갈아 겪던 신씨는 60대에 이르러 상가 임대업을 하게되면서 원하던 자본의 독립을 이뤘다고 한다.

18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영암관에서 만학도 신현문씨를 위해 동기 정은찬(24)씨가 선물한 대나무 캘리그라피. 정씨는 "형님이 대나무처럼 오래오래 쭉쭉 뻗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에 그렸다"고 했다./이승규 기자

지난 2016년 2월 69세였던 신씨는 고향 칠곡의 한 고시원에 들어갔다. 준비물은 검정고시 교재와 필기구, 옷가지가 전부였다. 잡념이 든다는 이유로 휴대폰도 집에 뒀다. 삼시세끼도 고시원 내 식당에서 해결하며 9개월간 두문불출 공부에 전념한 신씨는 그해 3월 중등검정고시, 10월에 고등검정고시 합격에 이어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까지 치르고 이듬해 계명대 사학과에 합격했다. 주변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독학을 했던 신씨는 “수능까지 시간이 촉박해 검정고시 교재만 봤는데, 아는 문제가 제법 나오더라”고 말했다.

◇”할아버지”에서 “멋진 형님”으로

일흔살 17학번 새내기로 대학생활을 시작한 신씨는 손주뻘인 동기들과 친해지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고 한다. 동기 정은찬씨는 “오리엔테이션때 “나를 할아버지말고 형님으로 불러달라”는 (신씨의)외침에 동기들이 자지러졌다”고 말했다. 신씨는 동기들의 식사, 커피, 술자리는 물론 노래방 비용을 책임졌다. 한달에 지출한 밥값만 100만원을 거뜬히 넘었다고 한다. 대학 내에선 “사학과에 밥 잘 사주는 멋진 형님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신씨는 “내가 먼저 낮은 자세로 다가가 사람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나이 문제로 신씨를 어려워하던 동기들도 어느순간 ‘형님’ ‘큰형님’이라 부르며 그를 따랐다. 노래방에서 최신곡을 부르다가도 신씨가 마이크를 잡고 18번인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면 동기들은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고 가사를 고쳐 함께 불렀다. 컴퓨터가 익숙하지 않은 신씨를 위해 수강신청을 도와주는 선배가 생겼고 군대에서 휴가를 받으면 신씨부터 찾는 동기가 생겼다. 신씨에게 학업과 가정 사정 등 깊은 고민을 상담하는 이들도 점차 늘어났다. 신씨의 선배인 김동기(24)씨는 “형님은 어른이라며 사고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어린 우리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셔서 따르게 됐다”고 말했다.

18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영암관에서 만학도 신현문(74·가운데)씨가 손주뻘 동기·선배들과 함께 졸업 사진을 찍었다. 신씨는 대학원 입학으로 받은 면학장학금 전액을 고향 칠곡군에 기부했다./이승규 기자

◇”배움과 사람을 남겼습니다”

신씨가 졸업하던 날, 동기와 선후배 약 20명이 신씨의 졸업을 축하하러 학교로 찾아왔다. 본지와 인터뷰를 할 때도 4명은 신씨의 곁에 머무르며 쉴새없이 추억을 쏟아냈다. 4.5점 만점에 3.8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졸업한 신씨는 “동기들 도움 덕택에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씨는 올해 졸업과 동시에 계명대 일반대학원에 입학해 역사학 공부를 이어나간다. 신씨는 “원래 대학만 졸업할 생각이었지만 아직도 배움이 고픈지 함량미달이더라”면서 “생이 허락한다면 박사까지 따면서 평생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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