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금 100兆 손에 쥐고도..총수 취업제한으로 M&A 차질 우려
이재용 부회장, 취업제한 M&A 영향 불가피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위 계획도 차질 우려
"취업제한, 정치적 이유"…"실효성도 의문"
법무부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취업 제한을 통보하면서 삼성전자가 준비 중인 인수합병(M&A)에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가 쌓아둔 실탄만 100조원에 달하는데, 총수 없이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M&A의 무게를 누가 짊어지겠냐는 것이다. 정부가 수차례 시스템반도체 1위를 내세우며 삼성전자에 전방위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오히려 발목만 잡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8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의 순현금은 총 104조원이다. 증권가는 올해 삼성전자가 반도체 설비 투자에 약 35조원을 쓸 것으로 내다본다. 전년(28조9000억원)보다 약 20% 늘어난 규모지만, 여전히 보유 현금에서는 여유가 있는 편이다.
삼성전자는 넉넉한 현금으로 그동안 뜸했던 M&A 시장에 나설 계획이다.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사장은 지난 1월 28일 4분기 실적 발표 이후 진행한 컨퍼런스콜에서 "지난 3년간 지속적으로 M&A 대상을 매우 신중히 검토해왔으며 많은 준비가 된 상태다"라며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실행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정책 기간(2021~2023년) 내 의미 있는 규모의 M&A를 실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삼성전자가 추진한 역대 최대 규모의 M&A는 2016년 하만이다. 당시 80억달러, 약 9조원을 투입했다. 지난해 말 기준 순현금 보유액만 104조원에 달하는 만큼 더 큰 규모로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상황이 급변했다. 법무부가 지난 16일 뇌물 공여 혐의로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취업 제한을 통보하면서다. 취업이 제한되면 이 부회장은 경영 활동에 관여할 수 없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은 5억원 이상 횡령·배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해당 범죄와 관련한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징역형의 경우 집행이 종료된 후 5년간, 집행유예 때도 기간이 종료된 후 2년간 적용된다. 다만 ‘형이 진행 중’인 상황에 취업 제한이 적용되는지 여부는 명확하게 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까닭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삼성전자의 M&A 추진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의 옥중경영에 취업제한까지 더해지면서 삼성전자의 M&A는 멈췄다고 봐야 한다"며 "대형 M&A는 상당한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는데 이를 누가 책임지겠느냐"고 말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M&A는 어떤 식으로든지 진행될 수는 있다"면서도 "기업의 경영환경이 갈수록 불확실해지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유보금 규모만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M&A 대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2030 시스템 반도체 1위’라는 중장기 목표를 세운 만큼 업계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국산화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KAIST) 경영대학 교수는 "이미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반도체 등은 남보다 한 세대, 두 세대 앞서가야 제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반도체에 계속 투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차량용 반도체가 주목받는 이유는 성장성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스타티스타는 지난해 세계 차량 반도체 시장 규모가 450억달러에서 오는 2040년 175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봤다. IHS 마킷 역시 올해부터 전기차 시장 확대에 힘입어 장기적으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동차에서 다양한 기능을 조정하는 차량용 반도체는 비메모리 반도체 중 하나다.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정보를 처리하기 위한 연산, 추론 등의 목적으로 제작된다. 수익률과 시장이 큰 고부가가치 산업이지만, 진입 장벽에 높다는 단점이 있다.
삼성전자의 M&A 대상 주요 기업으로는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언,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이 꼽힌다. 현재 세계 자동차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쥐고 있는 업체들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차량용 반도체는 실내외에서 사용하고 온도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신뢰성 있는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지원을 수차례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9년 경기도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133조원 투자해 파운드리 분야의 글로벌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원대한 목표 설정에 박수를 보내며 정부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했었다.
김태기 교수는 "정부가 시스템 반도체 1위를 외쳤는데 이를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삼성전자밖에 없다"며 "총수 부재 속 어떻게 이를 지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병태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취업제한은 이중처벌"이라며 "취업제한으로 인한 실질적 효과가 의문이며 정치적 이유가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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