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때 탄생한 '미국의 얼굴'..터전에 대한 애정을 담다
그랜트 우드 '아메리칸 고딕'
아이오와 출신 그랜트 우드
'개척정신' 농민 부부 그려
대공황 겪는 미국인 '위로'
"가장 미국적인 그림" 찬사
미국 작가 마커스 버킹엄은 20여 년간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들이 강점을 발견하고 집중적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 강점을 계발하고 실행한 것이 성공 비결이었다. 미국 화가 그랜트 우드(1891~1942)는 강점의 힘을 활용해 성공한 대표적 예술가다. 우드의 걸작 ‘아메리칸 고딕(American Gothic)’은 자신이 지닌 가장 강력한 자산이 강점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미국 아이오와주의 작은 마을 엘든에 있는 농가를 배경으로 농민 부부(또는 부녀)를 그린 이 초상화는 1930년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림 속 남자가 미국을 상징하는 멜빵 청바지를 입고 오른손으로 삼지창을 연상시키는 건초용 쇠스랑을 꽉 잡은 채 단호한 눈빛으로 관객을 응시하는 모습이 미국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자립심이 강하고 규범과 전통, 가족에 대한 의무를 중시하는 미국의 전통적인 남성상 그 자체였다.
보수적 정의감과 서부시대 개척정신을 대표하는 이 그림은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상징물이 됐다. 1929~1933년 미국을 강타한 대공황으로 건국 이후 최대 위기에 빠진 국민에게 용기를 주고 단합과 결속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미국인의 정체성과 삶의 가치관을 구현한 가장 미국적인 그림’ ‘미국인의 청교도 윤리와 개척정신, 도덕성을 상징하는 아이콘’ ‘미국의 모나리자’라는 찬사를 받으며 20세기 미국 미술의 왕좌에 올랐다.
우드는 아이오와주 애나모사 출신으로, 고향에서만 활동하던 시골뜨기 화가였다. 국제무대에 나온 경험도, 대도시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경력도 없는 지역 작가의 그림이 국가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최고 지위에 오르는 이변이 벌어진 것이다.
우드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동네화가라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강점인 지역성을 부각시킨 전략이 적중했다. 우드는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반 미국 미술의 독자성을 추구하던 새로운 미술운동인 ‘지방주의 미술’의 이론과 실천을 주도한 대표 화가였다. 지방주의 미술가들은 보수성이 강한 중서부 지방에서 주로 작업하던 지역 작가들로 구성됐으며, 지역문화와 지역적 특성을 강화해 국가적 일체감과 자부심을 드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우드는 미국의 정신이 지역성에 있다는 신념을 가졌다. 이런 우드의 예술관은 “예술가는 자신이 잘 아는 땅과 사람을 그려야 한다. 자신이 태어나고 활동하는 지역에 머물며 작업할 때만 개성적인 양식을 확립할 수 있다”는 그의 말에서도 나타난다.
‘아메리칸 고딕’은 지역주의가 미술의 미래라는 우드의 예술철학을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다. 그만큼 등장인물과 소재가 지역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작품 제목인 ‘아메리칸 고딕’은 두 인물의 뒤에 보이는, 일명 ‘목수 고딕’으로 불리는 목조주택에서 가져왔다. 1880년께 엘든 주민인 찰스 디블이 지은 이 집은 중세 유럽 고딕 건축 양식을 모방한 미국식 짝퉁 주택이다. 신속하고 저렴하게 집을 지을 수 있는 데다 유럽 문화를 동경하는 지역민의 허세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어 대공황 시대를 살아가는 미국 노동계급에 인기가 많았다.
그림의 모델로는 지역주민인 62세 치과의사 바이런 매키비와 30세인 우드의 여동생 낸 우드 그레이엄을 섭외했다. 남자의 낡은 멜빵 청바지와 검정 재킷, 작은 펜던트로 장식한 검소하고 소박한 여자의 검정 드레스와 식민지풍 앞치마도 중서부 지역 전통 복장이다.
남자의 안경은 세상을 떠난 우드의 아버지가 쓰던 것이다. 2층 창문을 가린 커튼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지역민의 정서를 상징한다. 이 그림은 명성만큼이나 많이 패러디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대표적으로 영화 ‘록키호러픽처쇼’, 애니메이션 영화 ‘뮬란’, 영화 ‘스타워즈’를 꼽을 수 있다. 그림 속 엘든의 목조주택은 지역 관광명소로 변신해 백악관을 제외하고 미국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집이 됐다.
미국 작가 도널드 클리프턴과 톰 래스의 공동 저서 《강점혁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왜 강점을 활용하는 삶을 살지 않는 걸까? 한 가지 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의 강점을 제대로 인식하거나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 관장 >
▶ 경제지 네이버 구독 첫 400만, 한국경제 받아보세요
▶ 한경 고품격 뉴스레터, 원클릭으로 구독하세요
▶ 한국경제신문과 WSJ, 모바일한경으로 보세요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부 믿고 11억에 판 아파트, 지금은…" 이혼 위기 주부 '한탄'
- 30대 운전자, 벤츠 수리 맡겼다가 분통 터뜨린 이유
- "버핏도 포트폴리오 교체…성장주 대신 '이것' 비중 늘려라"
- "비트코인 신기록 행진, 오래 못 간다"…JP모간의 경고
- "달러 비쌀 때 팔자"…지난달 달러예금 40억달러 감소 [김익환의 외환·금융 워치]
- 현빈 측 "SNS 사칭 주의…개인이 운영하는 것도 없다"
- "유노윤호 덕분에…" 또 미담 알려져
- 허경환, 허닭서 27억 빼돌린 동업자 실형에 "비싼 수업료" [종합]
- 소녀시대 유리 닮았다 했더니…사촌동생
- [인터뷰+] "은은하지만 강하게"…'권진아 필터'를 거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