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11억에 환수..'호렵도 팔폭병풍' 첫 공개

전지현 2021. 2. 1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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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영향 받은 궁중 그림
정조 북학 정치 엿볼 수 있어
호렵도 팔폭병풍 일부. [사진 제공 = 문화재청]
말을 탄 사냥꾼들의 활과 당파(창)가 금방이라도 호랑이와 사슴을 관통할 것처럼 역동적이다. 장엄한 절벽 산에서 평원으로 이동하며 사냥을 즐기는 청나라 황제를 그린 조선시대 김홍도파 호렵도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1억원에 매입한 '호렵도 팔폭병풍(胡獵圖 八幅屛風)'을 18일 국립고궁박물관에 공개했다. 작품 수준이 높고 보존 상태가 좋아 낮은 추정가의 9배가 넘은 금액에 낙찰된 작품이다.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한 캐슬린 제이 크레인 박사가 소장했던 이력이 있고 미국 개인 소장가가 경매에 출품한 작품으로 언제 어떻게 한국에서 반출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호렵도 팔폭병풍 7~8폭 일부.
이 호렵도는 비단 바탕 병풍 8폭을 하나의 화폭으로 사용한게 특징이다. 병풍 전체 크기는 가로 385.0㎝, 세로 154.7㎝이며, 그림은 한 폭이 가로 44.3㎝, 세로 96.7㎝다.

병풍 8폭 하단에 김홍도 낙관이 보이고 바위와 나뭇가지 표현이 김홍도 화풍이지만 인물의 옷선 등이 달라 그의 영향을 받은 18세기 후반 도화서 화원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병풍 제1~2폭에선 폭포를 시작으로 스산한 가을 분위기 산수가 숙달된 화원 화가의 필치로 묘사돼 있다. 제3폭은 화려한 가마를 타고 길을 나서는 황실 여인들을, 제4폭은 나발과 동각을 부는 사냥꾼들을 담았다. 제5~6폭은 흰 용이 새겨진 푸른색 가죽옷 행괘를 입은 청 황제와 다양한 자세의 기마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제7~8폭은 호랑이와 사슴을 향해 활을 겨누거나 창과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사냥꾼들을 묘사했다.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일반적인 호렵도는 사냥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 호렵도는 황제 일행을 강조하고 있다"며 "웅장한 산수 표현과 화면 구성이 탁월하며 인물과 동물의 묘사가 생동감 있고 매우 정교해 호렵도 중에서도 수작으로 평가받는다"고 설명했다.

호렵도 팔폭병풍
오랑캐(胡)가 사냥하는(獵) 그림을 뜻하는 호렵도는 18세기 무비(武備)를 강조한 정조의 군사정책과 맞물려 제작되기 시작했다. 호렵도를 처음 그린 화가는 김홍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기록으로만 남아있으며,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대부분 호렵도 병풍은 민화풍이다. 이에 반해 이번에 돌아온 호렵도는 수준 높은 궁중화풍이며 조선 시대 호렵도의 시작을 볼 수 있다.

정병모 경주대 초빙교수는 "정조 때 김홍도 화풍으로 그린 궁중화원의 그림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호렵도 가운데 가장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며 "아울러 정조 때 북학과 국방 정치를 상징적으로 엿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도 역사적 의미를 더한다"고 분석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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