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보다 심각하다"는 김명수 인사 논란..왜? [뉴스 깊이보기]

유설희 기자 2021. 2. 1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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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고 있다.김 대법원장은 이날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공개한 녹취록과 관련해 불거진 거짓 해명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권도현 기자


서울중앙지법이 형사합의부 중 1곳에서 운영한 ‘경력대등재판부’(이하 대등부)를 3곳으로 확대한다. 정경심 동양대 교수 사건을 선고한 형사합의25부만 부장판사 3명으로 구성된 대등부로 운영됐는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심리한 김미리 부장판사가 속했던 재판부(형사합의 21부)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을 심리한 박남천 부장판사가 속했던 재판부(형사합의 35부)도 대등부로 운영키로 결정했다.

공교롭게도 추가로 대등부가 된 두 재판부는 이달 초 정기 법관 인사에서 서울중앙지법에서 3년 근무하면 다른 법원으로 이동한다는 원칙이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아 ‘무원칙 인사’ 논란이 불거진 곳들이다. 법원 내 일각에서는 사법농단이나 현 정부 인사와 관련된 사건을 심리하는 일부 재판장의 장기 유임 논란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해 대등부 지정을 통해 ‘물타기’하려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18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사무분담위원회는 22일에 법관 정기 인사 시행을 앞두고 어느 법관을 어느 재판부에 배치할지를 정하는 사무분담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중앙지법은 형사합의부 중 1곳에서만 운영되던 대등부를 3곳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대등부로 추가지정된 재판부는 조국 전 장관 사건 등을 심리하는 형사합의21부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을 심리하는 형사합의35부다. 형사합의21부에는 재판장이었던 김미리 부장판사가 남게 됐고, 김상연·장용범 부장판사가 새롭게 합류했다. 형사합의35부는 이종민·임정택·민소영 부장판사로 새롭게 구성됐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건을 심리했던 윤종섭 부장판사, 김용신·송인석 판사가 그대로 형사합의32·36부에 남게 됐다. 사무분담은 서울중앙지법의 수석부장판사·직급별 판사 대표들이 결정한다.

■조국·양승태 사건 재판부…대등부 전환에 “꼼수” 뒷말

대등부 확대 운영은 사법개혁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경력 15년 이상의 부장판사가 재판장, 경력이 낮은 판사가 배석을 맡는 합의부는 부장판사 의견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반면 경력이 비슷한 부장판사가 돌아가며 재판장·주심을 맡는 대등부는 수평적인 관계에서 실질적인 합의가 가능하다. 재판장 1인의 뜻이 그대로 선고에 관철되지 않은 구조이다.

문제는 대등부로 추가된 재판부가 공교롭게도 인사 논란이 불거진 곳이라는 점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꼼수”라는 말까지 나왔다. 한 부장판사는 “김미리 부장판사가 남은 것에 대해 언론에서 비판이 나오자 물타기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부장판사도 “인사 문제로 논란이 된 재판부를 대등부로 구성해서 논란을 피해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인사에서 주요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장들의 유임 인사가 비판을 받자 이런 여론을 의식해 이 재판부들을 재판장 1인 마음대로 판결할 수 없는 구조인 대등부로 바꿨다는 해석이다. 왜 법원 내부에서는 대등부 확대를 두고 이런 해석이 나오는 것일까.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달 초 단행한 법관 정기인사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인사였다.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에서 3년을 근무할 경우 다른 법원으로 이동하는 것이 원칙인데, 3년을 넘게 근무한 김미리 부장판사, 윤종섭 부장판사만 유임됐다.

김미리 부장판사의 경우 서울중앙지법 3년 근무 기간을 채웠는데도 형사합의21부에 남게 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문제는 사건 심리가 거의 진행되지 않아 김미리 부장판사가 반드시 남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시각이 많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의 경우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기록 열람·등사가 지연돼 지난 1년 동안 공판준비기일만 5차례 열렸다. 조국 사건의 경우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자녀 입시비리 사건이 병합돼 있는데 이 중 감찰 무마 사건의 심리만 끝난 상황이다.

윤종섭 부장판사 유임의 경우 같은 사법농단 사건을 심리한 박남천 부장판사는 다른 법원으로 이동해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3년을 한 법원에서 근무하면 다른 법원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원칙을 적용하면 임종헌 사건을 심리한 윤종섭 부장판사, 양승태 사건을 심리한 박남천 부장판사 모두 다른 법원으로 이동해야 한다. 사건 규모와 진행 상황을 고려해 예외적으로 두 부장판사 모두 유임되는 것도 인사 실무상 가능하다. 원칙으로 따지면 둘 다 유임되거나 둘 다 이동하는 것이 통상적인 인사이다. 결국 윤종섭 부장판사만 남고, 박남천 부장판사가 다른 법원으로 이동하게 됐다. 법원 내부에서는 “같은 사법농단 사건인데 어떤 기준으로 인사를 한 것이냐”는 뒷말이 나왔다.

■ 법원 측 “본인 의사 존중”…일부 판사 “정경심 재판부는 왜 이동했느냐” 반박

대법원 관계자는 “개인적인 인사 희망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인사총괄심의관이 지난 3일 정기인사 발표 후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올린 글에서 서울중앙지법 인사 원칙에 대해 “현재 담당하고 있는 사건의 규모나 재판진행 상황, 인사희망 등을 고려하여 예외적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의 잔류 희망이 일부 수용되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번 인사를 앞두고 김미리 부장판사는 잔류를 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종섭 부장판사는 잔류, 박남천 부장판사는 이동을 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것만 놓고 보면 재판진행 상황이 아닌 본인 인사 희망을 기준으로 인사를 한 것처럼 보인다.

법원 일각에서는 “원칙이 없다”도 주장도 나온다. 예를 들어 정경심 교수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형사합의25부의 임정엽·김선희 부장판사는 잔류를 희망했는데도 다른 법원으로 이동하게 됐기 때문이다. A부장판사는 “25부는 남겠다고 했는데 내보내지 않았느냐. (원칙 적용이) 선택적”이라고 말했다.

일부 판사들은 이번 인사를 두고 대법원장의 무원칙 인사 자체가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이것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김미리 부장판사의 경우 야당에서 여권에 유리한 판결을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던 상황이었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은 일부러 재판 진행 속도를 지연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왔다. 지난해 9월 조국 동생 조권씨의 웅동학원 비리 사건에서 조씨에게 뇌물을 전달한 공범보다 낮은 형을 선고해 ‘봐주기’ 판결 지적도 있었다. 공범이 자백을 해 조씨 사건처럼 치열하게 법리 공방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반론도 있다. 그렇지만 이처럼 공정성 의혹이 불거진 상황에서 기존 인사 원칙을 깨고 김미리 부장판사를 유임하면 오해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일부 판사들은 지적했다. B부장판사는 “울산 사건은 정권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사건이다. 차기 대선 후로까지 질질 끄는 것이 중요한 상황일 수 있다”며 “1년 동안 공판준비절차만 계속 진행해왔던 김미리 부장판사한테 사건을 계속 맡기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종섭 부장판사의 경우 일각에서 사법농단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유임시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법농단에 관여한 판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던 김 대법원장으로서는 법원이 사법농단 사건에서 연달아 무죄를 선고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다.

윤종섭 부장판사가 임종헌 전 차장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C부장판사는 “윤종섭 부장판사가 유죄를 선고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자의적 원칙으로 윤 부장판사만 유임하면 (결과적으로) 재판 결론을 선택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B부장판사는 “인사농단”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는 “임종헌 사건에서 유죄가 선고되면 김 대법원장을 살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특정 판사만 유임시키는 것은 실제로 진행되는 재판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판사는 “윤종섭 부장판사, 박남천 부장판사 모두 유임됐다면 이렇게 논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을 담당했던 박남천 부장판사는 지난해 1월 사법농단에 연루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 법원 일각 “거짓말 논란보다 심각한 문제”…김명수 “여러 요소 살펴 인사”

D부장판사는 “김미리 부장판사, 윤종섭 부장판사를 남겨두기 위해 인사 원칙을 깬 것은 분명하다”며 “거짓말 논란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A부장판사는 “3년 근무하면 다른 법원으로 이동한다는 원칙이 수십년간 지켜져온 만큼 3년이 넘으면 이동하는 게 맞다. 예외를 만들면 좋지 않다”며 “일부 판사들에게만 예외가 적용돼서 이 정도의 인사 논란이 불거졌다면 대법원장이 해명을 내놔야 할 만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법원을 항의 방문했던 지난 17일 “여러 요소를 살펴서 인사를 하는 것이며 일일이 만족할 수 없다”고 밝혔다. B부장판사는 “여러 요소에 정치적 요소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냐”며 “대법원장은 외형적인 중립성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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