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통상시대' 본격화.. 韓, 연 5억弗 '기후대응 청구서' 직면 [연중기획-지구의 미래]
상품 생산 때 발생한 탄소에 비용 부과
EU, 2023년 '탄소국경조정제도' 시행
배터리 '탄소발자국' 공개 의무화 추진
美도 '탄소국경조정요금제' 도입 전망
G20 중 무역의존도 두 번째 높은 한국
이산화탄소배출량 세계 7위 등 상위권
철강·전자·자동차 등 업종 지불 비용 커
탈탄소경제 시스템 구축 시급 목소리
탄소중립이 세계 경제와 무역에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면서 ‘탄소통상시대’가 시작됐다. 상품의 질과 가격을 따지듯 상품 제조과정에서 배출한 탄소량을 검증하는 것이 새로운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EU, 2023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 시행 예정
EU는 ‘탄소국경조정’을 통해 EU로 수입되는 상품의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탄소에 대해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2021년 상반기에 법제화를 마치고, 2023년부터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제조과정이 단순해서 탄소함유량을 쉽게 측정할 수 있는 시멘트와 철강, 비료, 비철금속, 화학, 펄프·제지, 유리제품에 대해 우선 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탄소국경조정제도와 탄소발자국 기준 도입은 기업이 제품 생산 전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발자국을 계량하고, 투명하게 검증받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강제할 것이다. “이 제품에 포함된 탄소발자국은 몇 그램인가요?”를 묻는 일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품 생산에서 가격과 질을 두고 경쟁했다면, 탄소중립 시대에서는 재생가능에너지와 순환자원을 활용해 온실가스 배출 없이 상품을 생산하는 게 중요해진다. 국내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철강산업계가 지난 2일 ‘2050 탄소중립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후, 석유화학·시멘트 업계의 탄소중립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책임성을 강화한 경영 환경이 주목받는 것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EU의 탄소국경조정 도입에 가장 민감한 국가는 대유럽 수출액이 46%를 차지하는 러시아다. 회계·컨설팅그룹인 KPMG는 탄소국경조정이 시행되면 러시아 산업계는 연간 50억유로(약 6조7000억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러시아는 대외적으로 탄소국경조정이 세계무역기구(WTO) 위반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대책수립에 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탄소중립 선언 이후 배출권거래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고, 지난해에만 풍력발전 72GW와 태양광발전 48GW를 설치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 대책을 구체화하고 있다.
한국은 급부상한 탄소통상시대에 매우 도전적인 상황을 맞이했다.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고, 에너지에서 탄소집약도는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무역규모는 세계 7위이고, 무역의존도는 G20 중 독일 다음으로 높다. 주요 수출품인 철강,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제품 등은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다. 전력에서 석탄발전 비중이 40%를 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은 최하위다.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11위이고 이산화탄소배출량은 7위다.
그린피스가 EY한영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EU와 미국, 중국이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경우 한국은 2023년 철강·석유·전자·자동차 등 국내 주요 업종에서만 연간 5억3000만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탄소통상시대에 적응하지 않으면 경제적 타격은 불가피하다. 앞으로 통상·산업정책과 에너지정책의 연계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어떤 에너지를 사용해 산업 활동을 하는가가 탄소배출량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탄소배출량이 세계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하는 시대, 한국도 탈탄소경제 시스템 구축과 에너지전환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leeyujin20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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