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단체장들 제어" MB국정원 문건에 '사찰 정국' 일파만파
"국정 역행 적극 제어..4대강 반대는 정부 흔들기"
지자체 예산 삭감, 행정감사 등 '액션플랜' 구체적
배진교 "고발·손배소 추진..여당도 동원됐을 수도"
與 진상 규명 총공세..MB 넘어 박근혜까지 정조준
野 "DJ야말로 극악한 사찰 정권"..정치공작 주장
재보선 미칠 파장 촉각..野주자 박형준에 與 맹공
"선거 있다고 정보기관 국회 사찰 덮어둬야 하나"
[서울=뉴시스]정진형 김남희 기자 = 이명박(MB) 정권 시절 국가정보원 불법 사찰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당시 피해자인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사찰 문건 원문을 처음으로 공개하면서 향후 정국에 미칠 영향을 놓고 귀추가 주목된다.
배 의원은 18일 국정원이 2011년 9월 15일 생산한 것으로 추정되는 '야권 지자체장의 국정운영 저해 실태 및 고려사항' 제하 문건을 국정원 정보공개 청구로 확보해 공개했다.
이 문건은 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과 민주노동당(정의당 전신) 등 야권 광역단체장 8명과 기초단체장 24명의 '문제점'을 나열하고 압박하기 위한 방안을 담고 있다. 배 의원은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 인천 남동구청장이었다.
문건은 야당 지자체장 32명을 겨냥해 "국익과 지역발전보다 당리당략·이념을 우선시하며 국정기조에 역행해 적극 제어 필요"라고 적었다. 노동조합 인사 초청 강연을 열거나 4대강 사업 반대, 6·15 공동선언 이행 촉구 행위를 한 것을 '좌편향', '종북·좌파 중용', '정부정책 흔들기', '지역민 불신 유발'로 규정했다.
지자체장을 압박하기 위한 구체적 '액션플랜'으로 교부세 등 지방예산을 삭감하거나 행정감사 불이익을 줄 것을 제시했다. 지역 내 비판여론 조성 방안으로는 "건전언론 및 보수단체와 협조, 규탄성명 발표·항의집회 개최"를 적시했다.
이와 관련, 배 의원은 오후 국회 기자회견을 열고 "이 문건의 작성자는 직권남용의 소지가 있다"며 "지자체장, 그리고 문건에 등장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형사고발과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문건에서 '시도당'에 지자체장 견제 강화를 주문한 대목을 인용하며 "국정원이 당시 여당을 동원해 자신들의 인식을 퍼트리고 야권 지자체장들을 견제했음을 유추해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집권여당은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이었다.
앞서 국정원은 지난 15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MB 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 12월 16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국정원에 지시한 '정치인 등 주요 인사 신상자료 관리 협조 요청' 문건과 관련해 보고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당시 보고에서 이를 '직무범위를 이탈한 불법정보'로 명명하며 국회 정보위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요구시 문건 보고를 시사했다. 가칭 '국정원 60년 불법사찰 흑역사 처리 특별법' 제정도 건의했다.
이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MB 국정원이 18대 국회의원 299명 전원을 포함해 정관계, 재계, 문화예술계를 망라하는 광범위한 불법 사찰 의혹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야당에 대한 총공세에 나섰다.
MB 정부 후신인 박근혜 정부로 전선도 넓혀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국정원에 사찰 대상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중단 지시'를 내렸는지 확인하지 못했다는 국정원 입장을 근거로 사찰이 지속됐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민주당은 국회 정보위원회 의결을 통한 자료 열람 등 국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활용해 진상을 반드시 밝혀낼 것"이라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불법사찰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내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 소속 의원 50명은 성명을 내고 특별법 입법을 예고했다. 18대 국회의원이던 안민석, 안규백, 홍영표 의원, 이종걸 전 의원도 개별적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하거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의당은 고(故) 노회찬 의원에 이어 배진교 의원도 사찰을 받았단 사실을 확인한 후 당 차원에서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18대 국회의원 전원을 사찰한 것으로 의심되는 만큼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에선 당시 의원인 권영길 전 대표, 강기갑 전 의원 등과 상의해 정보공개 청구를 추진하는 쪽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의당 관계자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전직 의원들에게 정보공개 청구를 했는지 확인 후 수락하면 당 차원에서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며 "박근혜 정부 때까지도 사찰 의혹이 나오는 만큼 한다면 18대 뿐만 아니라 19대, 20대 국회의원들도 같이 청구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사찰이 이뤄졌다며 맞불을 놨다. 하태경 국회 정보위 간사와 박민식 부산시장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박지원 국정원장은 김대중(DJ) 정부 시기 불법 도청의 실상을 국민들에게 낱낱이 공개하고 정치공작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당시 불법도청 사건 주임검사를 맡았던 박민식 후보는 DJ 정부 시절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이 1800명을 상시 불법도청해 재판을 받았던 것을 상기시킨 뒤 "(DJ 정부가) 불법사찰에 있어서는 가장 극악한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아울러 사찰 의혹이 4월 재보궐선거에 미칠 파장에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정치공작' 의혹 제기를 강하게 반박했다. 김병기 국회 정보위 여당 간사는 TBS 인터뷰에서 "선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얘기"라며 "(정 그러면) 보궐선거 이후에도 차근차근 하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도 MB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를 정조준했다. 정태호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은 "현재 출마하고 있는 후보자가 당시 정무수석이었기 때문에 더 우리로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 추진에 대해 "정쟁화가 될 수 있으니 야당과 같이 논의해봐야 한다"면서도 "하든 안하든 간에 개인이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다 나오게 돼있다. (사찰 자료가) 매달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원내 관계자는 뉴시스에 "선거가 있을 때는 정보기관의 국회 사찰을 덮어줘야 하는가.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것"이라며 "여야의 문제가 아닌 의회 대 정보기관의 문제"라면서 진상 규명 강행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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