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러 권일용] 가짜뉴스의 피해자가 되다
[프로파일러]
권일용 | 전직 경찰·범죄학 박사
경찰은 ‘가짜뉴스’를 ‘실제 언론 보도처럼 보이도록 가공해 신뢰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유포되는 정보’로 정의하고 있다.(박헌기, <수사연구> 2019년 1월호) 그러나 사회적 논의를 통한 명확한 정의는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물론, 필자는 가짜뉴스에 대한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수없이 많은 뉴스와 댓글을 매일 보다 보니, 사실과 거짓이 혼동되거나 댓글의 내용을 보고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자주 생긴다.
11년 전인 2010년 2월24일 부산의 주택가에서 13살의 한 여학생이 실종되었다. 집 근처를 수색하던 과학수사(CSI)팀은 빈집에서 음식을 먹은 흔적을 발견하고 지문과 디엔에이(DNA)를 확보하여 유력한 용의자 김길태가 머물렀던 흔적을 찾아내었다.
경찰이 김길태를 추적하는 동안 온 국민이 여학생의 무사 귀가를 염원하였다. 검거가 지연되자 당시 경찰청 프로파일러로 근무하던 필자는 팀원들과 함께 사건에 투입되었다. 안타깝게도 며칠 후 아이는 집 근처 물탱크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아이의 몸에서도 김길태의 디엔에이가 발견되었다. 주검 발견 3일 후 결국 김길태는 체포되었다.
디엔에이까지 확보되었지만 김길태는 자신의 범행을 모두 부인하기 시작하였다. 범인 체포가 늦어진 상황에서 자백까지 받아내지 못하자 국민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필자는 애타는 심정으로 김길태와 면담을 통한 라포르, 폴리그래프, 뇌파 검사 등의 과학수사를 동원한 조사를 수사팀과 협업하여 진행하였다. 4일째 되던 날 필자와 조사실에 마주 앉아 있던 김길태는 결국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였다. 그런데 복귀하던 필자는 부산지방경찰청으로 가서 ‘피해자’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김길태 체포 이후 수사본부에 투입되어 있는 동안 한 네티즌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김길태의 팬카페를 개설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건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그는 메인 화면에 ‘사랑해요 김길태’라는 글을 올렸고, 카페 공지란에 ‘김길태의 디엔에이가 일치하지 않아 풀려났다’는 제목의 기사를 만들어놓았다. 수사본부에 투입된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위(당시 계급)가 언론에 공식 발표하였다는 내용의 허위사실을 기사로 만들어 필자의 사진까지 합성하여 사실인 것처럼 만들어 유포한 것이다.
그 가짜 기사를 실제 본 이후 나는 오랫동안 거의 모든 뉴스를 신뢰하지 않았다. 사건에 투입된 경찰관의 한 사람으로 피해자의 죽음 앞에 무한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필자는, 가짜뉴스에 의해 그 범인을 풀어준 당사자가 되어 있었고 그 허위사실이 인터넷에 공유되고 있었다.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분노의 감정이 치솟는다. 사실이 아니면 그만이지 뭘 그러느냐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일은 당해보지 않으면 그 심정을 알기 어렵다.
2017년 3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일반 국민의 가짜뉴스에 관한 인식’이라는 보고에서 20~50대 성인 108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 대상자의 76%가 가짜뉴스 때문에 진짜 뉴스를 볼 때도 가짜로 의심한다고 발표하였다. 결국 가짜뉴스는 언론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원인이다. 특히 최근 유튜브에서 번지고 있는 가짜 정보들과 허위 내용을 유포하는 댓글들은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결국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만들고 있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영업자의 삶을 파괴하기도 하고, 허위 댓글과 방송으로 상처받은 연예인들은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하지만, 처벌로 그 상처가 사라지진 않는다. 또래들에게 상처받은 청소년들은 악의적 소문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언제까지 가해자들의 양심에만 호소할 것인가. 문제가 되는 정보의 검색과 신속한 삭제, 강력한 제재를 할 수 있는 국가 기능이 없다면 피해자의 상처는 다소나마라도 회복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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