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사우디 왕세자 대신 국왕과 접촉하겠다" 35살 젊은실세 입지 흔들
[경향신문]
미국 백악관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카운터파트너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을 거론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35살의 젊은 실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MBS)를 사실상 사우디의 지도자로 대우했던 관행에서 돌아선 것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백악관이 살만 국왕에게 MBS를 강등시키고, 후계 노선을 바꾸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해석까지 내놓고 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17일(현지시간) 언론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를 “재조정할 의향을 갖고 있다”면서 “대통령의 카운터파트너는 살만 국왕”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MBS를 극찬하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사우디 내에서도 MBS는 ‘미스터 에브리씽’ 으로 통할 만큼 왕위 후계자를 넘어 실세로 통했다.
백악관의 이같은 입장 변화는 다음주 미 정보당국이 의회에 2018년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배후에 MBS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할 것이라는 소식 속에 나왔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가디언에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가 법치와 인권을 우선시할 것을 기대한다”면서 “그렇지 않다면 사우디와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에서 살만 국왕을 콕 찍어 바이든 대통령의 카운터파트너라고 지목한 데 대해 워싱턴 정가에서는 MBS에 대한 상징적 경고였는지, 아니면 사우디에 MBS를 후계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인지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가로 활동한 브루스 리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백악관은 MBS가 후계자로 있는 한 사우디를 ‘버림받은 존재’로 취급할 것이라는 확고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면서 “사우디는 MBS를 제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해석했다.
MBS는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변화와 화해의 제스쳐를 보여왔다. 사우디는 지난 10일 여성 인권 운동가 루자인 알하슬룰을 1001일만에 석방했고, 올해 개정된 교과서에서 동성애자들의 사형을 지지하는 내용이 사라지는 등 인권유린국 오명을 벗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MBS의 입지는 흔들리고 있다. 살만 국왕은 그동안 왕위 형제계승의 전통을 깨고 2017년 아들 MBS를 왕세자로 책봉했다. MBS는 왕권을 비판한 언론인 카슈끄지를 살해하고 왕위 경쟁자들을 숙청해 ‘피도 눈물도 없는 지도자’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카네기재단의 중동 프로그램 책임자인 미켈레 던은 “전 세계가 MBS의 무모함과 잔인함을 보았다”면서 “바이든 정부는 MBS에 자격을 부여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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