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한복에 윤동주‧김연아까지 '中 우기기'..외교부 뭐하나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중국 네티즌의 한국에 대한 문화 도발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김치와 한복이 중국 전통 문화라고 억지를 부린 데 이어, 김연아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나 윤동주 시인도 중국 출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이를 두고 한국 정부 차원의 강력한 항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지만, 일단 정부여당의 공식 반응은 없는 상황이다.
18일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에 따르면, 윤동주 시인의 국적은 '중국(中國)'으로, 민족은 '조선족(朝鮮族)'으로 표기돼 있다. 윤봉길, 이봉창 등 독립운동가들의 국적도 '한국'이 아닌 '조선(朝鮮)'으로, 민족 역시 '조선족'으로 나와 있다. 윤동주 시인의 경우 출생지가 중국 만주이긴 하나, 한국어로 시를 써온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그가 중국인이란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윤동주가 중국인? 시정 요구에도 "시비 걸지 말라"
문제는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한국 측의 노력에 중국은 오히려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한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지난 16일 바이두 측에 독립운동가들의 국적 및 민족 표기를 올바르게 수정하라는 내용의 항의 메일을 보냈다. 지난해 12월30일 윤동주 시인 탄생일에 맞춰 항의를 시작했으나 2월16일 순국일까지도 아무런 변화가 없자 재차 시정요구를 하게 된 것이다.
서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 마을에는 윤동주의 생가가 있는데, 생가 입구에 '중국조선족애국시인'이라고 적혀 있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중문판에도 세종대왕, 김구 등 역사적 위인과 김연아, 이영애 등 한류스타도 조선족으로 소개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반응은 거칠었다. 중국의 대표적인 SNS 웨이보에서는 윤동주 시인 관련 기사들이 하루 만에 4억 번 가량 조회됐다. 중국 네티즌들의 댓글을 보면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묻혔기 때문에 중국인이다"라는 주장이 대부분이다. 또 한국인이 '괜히' 시비를 건다는 식의 부정적 반응이 많다. 관변 매체인 환구시보도 같은 맥락으로 보도하면서 "윤동주의 국적 문제는 고증과 분석을 통해 확정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구려‧발해 뺏으려던 중국, 이젠 김치‧한복으로
중국의 문화 도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중국은 김치와 한복 등도 자국의 고유문화라고 주장하며 역사 왜곡을 일삼았다. 조선시대 한복을 중국 명나라 때 입던 '한푸'라고 우기거나, 김치를 중국식 채소절임인 '파오차이'에서 유래됐다고 주장한 것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IT기업 샤오미 역시 한복을 중국 문화라고 소개한 이미지를 스마트폰 배경화면 스토어에 올려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일부 누리꾼들이 제품 불매 의사까지 밝히며 강하게 반발하자 결국 샤오미는 콘텐츠를 수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특히 김치 논쟁에는 중국 공산당까지 가세했다. 공산당 중앙 정법위원회는 "(한국은) 김치도 한국 것, 곶감도 한국 것, 단오도 한국 것이라고 한다. 결국 사사건건 따지는 건 스스로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불안감 때문이다. 자신감이 없으면 온갖 피해망상이 생긴다"고 힐난했다. 중국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파오차이는 소금에 절인 발효식품으로 일부 몇 개 나라와 지역에만 있는 게 아니다. 중국에서는 이를 파오차이라고 부르고 한반도와 중국의 조선족은 김치라고 부른다"고 거들었다. 이들의 발언은 한국의 문화가 중국 문화 중 일부라는 의도로 해석돼 더 큰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이 같은 중국의 문화 도발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온라인판 신(新) 동북공정'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약칭인 동북공정은 고구려, 발해 등 동북3성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중국의 역사로 편입해 버리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해당 프로젝트는 5년 동안 시행돼 지난 2007년 마무리됐지만, 이번 김치와 한복 논란을 기점으로 온라인상에서 다시 점화됐다.
"韓정부 왜 가만있나" 비판에도 공식 반응 없어
때문에 정부 차원의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중국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왜곡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왜 강하게 대처하지 못하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중국에 대해 할 말은 해야 한다. 외교부와 주중대사관이 당장 나서서 이 문제들을 바로잡아주길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공식 반응은 없는 상황이다. 2022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불필요한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비공식적으로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중국 측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외교부의 입장이 나왔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일부 언론에 "역사적 사실과 한국의 정서를 감안해 종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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