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혹한으로 재난영화 방불케 하는 텍사스.."더 이상 태울 게 없다. 돈이라도 태우고 싶은 심정"
[경향신문]
“벽에 걸려 있는 그림까지 떼서 태웠어요. 더 이상 태울 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다면 돈이라도 태우고 싶은 심정입니다.” 미국 텍사스에서 7살과 4살 난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브리아나 블레이크(31)는 미 언론 텍사스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막같이 고온건조한 날씨로 잘 알려진 텍사스는 최근 이상한파가 몰아닥치면서, 수 백만 가구에 전력 공급이 끊겼다. 주민들은 하루 아침에 재난 영화 같은 상황에 내던져 졌다. 최대 영하 20도 안팎까지 떨어진 날씨 속에서 난방기구 하나 없이 추위와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다. 식료품점이 모두 문을 닫는 바람에 집에 미처 음식과 물을 사다놓지 못한 가정은 추위뿐 아니라 배고픔과도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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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크의 집에는 다행히 벽난로가 있었지만, 새벽 3시쯤 마지막 남은 장작의 불이 꺼지면서 절망적인 상황이 됐다. 벽에 걸린 캔버스 그림을 떼서 태웠지만 그마저도 오래 가지 못했다.
블레이크는 “‘대공황’ 시절 사람들이 온기를 유지하려고 (휴짓조각이 된) 돈을 불태우는 모습이 담긴 그림을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있다”면서 “지금 당장 400달러가 있다면 그 돈이라도 태워서 아이들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400달러는 그가 매달 내는 평균 전기세다.
블레이크는 “엄마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음식과 따뜻한 잠자리인데, 그것조차 못해주고 있다”며 “전력 없이 또 다시 밤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공포스럽다”고 말했다.
애슐린 호프너는 호흡기 질환이 있는 동거인의 산소 공급 의료기기가 전력 부족으로 작동이 중단될 뻔 한 아찔한 순간에 직면했다. 급히 911에 연락을 해 구조대원이 도착했지만, 칠흙같이 어두운 집안에서 손전등 불빛 하나에 의지해 동거인을 휠체어에 앉히고 병원까지 실어나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트위터에도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이 올라오고 있다. 한 텍사스 주민은 “24시간 동안 전기가 끊긴 상태이다. 두 아이들은 지금 패닉 상태에 빠졌다. 옷을 세겹으로 껴 입히고 담요를 네 장이나 덮고 자게 했는데도, 아이들의 몸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도 “우리 집은 캠핑 장비로 버티고 있다. 인터넷이 끊겨서 유일하게 작동하는 전자기기는 핸드폰 뿐”이라고 말했다.
텍사스주에서는 이들처럼 추위를 피해 자동차나 벽난로 등을 이용해 난방을 하려다 일산화탄소 중독, 화재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6일 텍사스주 휴스턴에선 온기를 만들기 위해 차고 안에 시동을 건 차량을 장시간 방치했다가 2명이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사망했다. 휴스턴 지역의 할머니와 아이 3명은 벽난로를 켜다 화재로 이어지면서 숨졌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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