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하려다 혀 절단..법원 "재심사유 안 돼"

2021. 2. 1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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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시대 달라졌다고 당시 사건 뒤집을 수 없어"..피해자 측 "항고할 것"

[조성은 기자(pi@pressian.com)]
57년 전, 성폭행하려는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절단시켰다는 이유로 중상해죄 처벌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정당방위를 인정해달라며 낸 재심청구를 법원이 기각했다.

부산지방법원 제5형사부(재판장 권기철)는 18일 "형사소송법이 정한 재심청구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재심할 이유가 없다"면서 "반세기 전에 이뤄진 사건을 지금의 잣대로 판단해 당시의 소송이 범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재심을 할 이유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재심 사유로 "무죄를 인정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거나, 적어도 중상해죄보다 가벼운 상해죄로 인정할만한 새 증거가 발견돼야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면서 "최 씨가 제시한 증거들을 검토한 결과 무죄를 인정할 새로운 명백한 증거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성폭행하려다 혀가 잘린 노모 씨가 사실은 혀가 잘리지 않았거나, 다쳤더라도 중상해에 해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최 씨가 당시 법원이 정당방위 관련 법률을 잘못 해석하고 적용해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주장에도 "재심은 확정된 사실관계를 재심사하는 예외적인 비상구제절차"라며 "확정판결 뒤 새 증거가 나왔을 때 하는 것이지 법률의 해석과 적용이 잘못됐다고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당시 검찰이 최 씨를 불법체포하고 감금했다는 최 씨의 주장에도 "객관적이고 분명한 자료가 제시되지 않는 등 증거가 부족하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결정문 마지막에 "오늘날과 같이 성별간 평등이 우리 사회가 지향할 주요한 가치로 실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면, 사회 전반적으로 뿌리 깊었고 제도로서도 존재하던 성차별적 인식과 가치관이 지금이라도 옅어져 있었다면, '최 씨를 감옥에 보내지도, 가해자로 낙인찍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최 씨의 사건은 반세기 전 오늘날과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이뤄진 일이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여, 사회문화적 환경이 달라졌다고 하여 당시의 사건을 뒤집을 수는 없다"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는 사건 하나하나의 형평을 도모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구체적 타당성도 있지만 정해진 법에 따라 혼란을 방지하고 공동체를 안정적으로 가꾸어 간다는 법적 안정성도 함께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 씨의 법률지원단과 지원단체는 이번 결정을 두고 "법원이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결정을 내렸다"면서 "재심 요건을 보수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문을 살펴본 뒤 즉시 항고할 것"이라고 했다.

이 사건은 1964년 당시 18살이었던 최 씨가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 씨(당시 21살)의 혀를 깨물어 1.5cm가량 자른 혐의(중상해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최 씨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방위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 씨는 검찰의 불법체포로 6개월간 구치소에 수감됐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그냥 결혼하지 그러냐", "노 씨에게 마음이 있었던 거 아니냐",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다"는 등의 말을 들으며 2차 가해를 겪었다.

반면 노 씨에게는 성범죄도 적용되지 않았다. 검찰은 노 씨에게 강간미수가 아닌 특수주거침입 등의 혐의만 적용해 노 씨에게는 징역 6월에 집행유에 2년이 선고됐다.

당시 최 씨의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최 씨에게 "생면부지의 남성과 약 20분간 말을 주고받는 등 노 씨로 하여금 최 씨가 자기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라 착각하게 했다"며 "노 씨는 최 씨를 넘어뜨려 키스하려던 것뿐이지 최 씨를 반항하지 못하도록 제압한 게 아니므로 혀를 절단한 것은 정당방위의 정도를 넘어선다"고 했다.

이 사건은 정당방위를 다툰 대표적인 판례로 법원행정처가 1995년 발간한 <법원사>에도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소개됐다.

최 씨는 지난해 5월 "억울함을 풀고 정당방위로 인정받아 무죄 판결을 받기를 원한다"며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청구서’를 법원에 접수했다.

[조성은 기자(p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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