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비극..고아 진폐환자 입양 15년은 '지옥'이었다
[홍춘봉 기자(=태백·정선)(casinohong@naver.com)]
수백만 원의 급여를 받던 고아 진폐환자가 입양이후 담배꽁초를 주워 피울 정도로 비참한 생활은 물론 악성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기간에도 홀로 방치했다가 최근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다.
50대의 이 진폐환자는 상당기간 단칸방에서 외출도 못하며 사실상 감금생활을 하며 폭행, 수면제 강제투여 등의 학대를 당했지만 인권위 등 국가기관이나 종교, 사회단체에서도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
특히 15년 넘게 5억 원이 넘는 거액의 휴업급여부터 양아들을 통해 사채와 은행대출금까지 갈취한 것도 모자라 사망보험금까지 가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최근 수년간 악성질병으로 고통받는 시기에도 환자의 은행신용카드를 이용해 신용대출까지 받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고아 진폐환자 사망사건은 폐광촌의 ‘정은이 사건’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8일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중환자실에 진폐증 외에 악성종양 등이 악화돼 입원, 요양 중이던 진폐환자 A씨(58)가 입원 1주일 만인 지난 11일 오전 6시께 사망했다.
서울 성북구 돌곳이로1길의 보육원에서 형제처럼 지내다가 의형제를 맺은 L씨의 소개로 1992년 6월 사북광업소에 채탄보조공으로 입사했던 A씨는 1997년 6월부터 사북연세병원에서 진폐 요양생활을 시작했다.
◇ 비극의 시작
지난 2005년 당시 L씨와 부부관계였던 K씨는 혈혈단신에 매월 수백만 원의 진폐 휴업급여를 타는 A씨를 입양해 급여를 갈취하기 위해 “가족처럼 잘해 주겠으니 아들로 입양하자”고 꼬드겼다.
당시 K씨는 사북광업소 대의원이었던 L씨와 혼인신고 2년이 지난 시점이었으며 의형제를 맺은 형과 K씨의 끈질길 회유에 2005년 11월 25일 입양절차를 마쳤다. 공교롭게도 K씨가 A씨보다 단 1살이 어렸지만 법적으로 양모가 되었다.
양모가 된 뒤 그녀는 본색이 드러났다. 병약한 A씨에게 감금과 협박, 폭행 등 학대가 이어졌고 가뜩이나 진폐증으로 병약한 그는 형편없는 식사를 제공받으면서 술, 담배에 찌들어 더욱 몸이 야위어진 것으로 주변인들은 기억했다.
더구나 의형제를 맺었던 L씨(양부)는 A씨 입양 2년 뒤 폭행치사로 사망하자 양모는 평소 알고 지내던 남자와 동거생활에 들어갔지만 무기력한 A씨는 이를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다.
◇ 법원에서 밝혀진 양모의 학대와 갈취
당시 양모는 A씨의 휴업급여 갈취, 사채와 금융기관 대출에 보증인으로 세워 대출받은 돈으로 도박과 유흥비를 지출한 행위가 춘천지방법원 판결문(사건번호 2015노215)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당시 재판은 채권채무 문제로 K씨의 언니와 진행됐고 명예훼손, 허의사실 유포 등이 쟁점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K씨는 휴업급여가 입금되는 통장과 도장을 빼앗겨 돈이 궁해진 A씨는 병원 내에서 담배꽁초를 주워 피우거나 동료환자에게 돈을 빌려 담배를 사 피우고 술도 얻어먹는 처지로 전락했다.
당시 사북연세병원에서 함께 생활했던 동료들은 A씨에게 “휴업급여를 수백만 원 넘게 타는 놈이 담배꽁초를 주워 피우고 1000원씩 구걸하며 살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려라”며 핀잔을 주는 일도 생겼다.
이런 소문이 병원에 알려지자 양어머니 K씨는 A씨를 병원에서 퇴원시켜 자신의 집 골방에 강제로 감금하고 외출외박을 못하게 하면서 사실상 감금생활이 시작되었다.
견디다 못한 A씨가 창문을 통해 집 밖으로 외출했다가 경찰에 신고되는 일이 발생하자 외출 시에는 양어머니 K씨가 30도가 넘는 독한 술, 혹은 수면제를 먹이고 출입문에는 특수키를 설치했다.
법원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결과 양어머니 K씨가 몰래 수면제를 A씨에게 먹인 것이 소변 검사에서 확인된 점과 은행대출, 사채대출에도 A씨가 강제로 보증인으로 세운 것으로 증인심문 등을 통해 확인했다.
또 양어머니 K씨는 강원랜드 카지노에 2012년에만 80여 차례 출입해 도박한 기록 등을 근거로 양아들의 휴업급여와 대출금 등을 도박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인정했다.
법원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휴업급여와 은행, 사채 대출금 등 약 3억 원이 넘는 돈을 편취 및 갈취해 도박자금, 유흥비, 곗돈 등에 사용한 것으로 인정한바 있다.
정선병원 진폐병동의 환자대표 이모씨는 “과거 A씨는 바둑도 잘 두고 스포츠토토 복권을 즐길 정도로 총명한 편이었는데 입양이후 한참 지난 뒤에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며 “무기력한 모습에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회고했다.
특히 경찰이 방문해 확인한 A씨의 숙소는 그가 평소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아 왔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2015년 11월 4일, 양어머니가 외출한 시간에 A씨가 거주하는 숙소를 방문한 경찰은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고 빛바랜 벽지가 보이는 방에는 소변기와 대변기, 밥상에는 김과 빈 국그릇, 김치통, 빈그릇 등을 확인했다.
외출도 못하는 A씨는 방안에서 잠자는 것은 물론 식사를 한 뒤 대소변을 해결하고 담배를 피우거나 TV를 시청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것이었다고 현장을 확인한 경찰은 전했다.
또 방안에는 허름한 이부자리를 비롯해 재떨이에는 반쯤 피우다 남긴 담배꽁초가 나란히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담배 값을 아끼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A씨 주변에는 또 병원에서 타온 약봉지와 일회용 커피, 낡은 전기밥솥, 텅 빈 냉장고, 쓰레기 등이 주변에 쌓여 있었다.
당시 그는 경찰관에게 “이게 사람사는 것입니까.”평소 가슴에 담가둔 응어리를 쏟아내기도 했다.
평소 방안에만 갇혀 지내던 A씨는 제대로 씻지도 못해 꾀죄죄한 모습 때문에 외부인들의 방문을 철저히 막았고 매월 단 하루, 병원에 가는 날 세수를 시켜 양모의 승용차로 병원에 다녀오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었다.
A씨가 입양 후 양어머니에게 갈취당한 휴업급여는 2021년 1월 휴업급여(350여만 원)를 기준으로 하면 15년 3개월(총 183개월)간 약 6억 원이 넘는 셈이다.
특히 주민들에 따르면 양모 K씨는 지난 2019년부터 악성종양으로 항암치료를 받을 당시에도 강원랜드 인근의 단독주택 골방에 A씨를 방치하고 수시로 외출을 일삼고 은행에서 A씨 명의로 신용대출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웃 주민 R씨는 “평소에도 외출이 잦은 K씨는 고아 진폐환자가 악성종양에 고통 받는 데도 골방에 방치하고 다방이나 동네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주요 일과였다”며 “양아들의 급여를 갈취한 것도 모자라 보상금을 받는다고 자랑하고 다닐 정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P씨는 “몇 백만 원의 휴업급여는 물론 다 죽어가는 환자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수천만 원의 대출을 받아 지출한 것도 많을 것”이라며 “양아들이 죽은 뒤 최근에는 보험금 수급 신청을 위해 관련 서류준비에 바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K씨는 “남편과 혼인생활 2년 정도 지나서 본인이 우리에게 양자 입양을 원해서 한 것”이라며 “통원치료는 본인 스스로 병원생활이 싫고 내 옆에만 있고 싶다고 해서 통원으로 전환했다”고 반박했다.
또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 좋아하는 술도 뿌려주고 화장한 유골은 형이라고 불렀던 전 남편 옆에 안치했다”며 “식사도 양아들에게 제대로 먹이려고 노력했고 항암치료를 받을 때는 입원을 원한다고 병원에 입원이 되는 것도 아닌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카드신용대출에 대해 “카드대출은 양아들이 본인 (항암치료)병원비와 형수가 고생한다고 용돈을 주기 위해 (본인이)직접 대출받은 것”이라며 “진폐유족 보상도 악성 종양이라 지급이 안 된다는 말을 들었고 사망보험금도 지급여부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한편 A씨가 사망한 지난 11일부터 그의 주검은 태백병원 장례식장 사체 안치실에 보관했다가 13일 낮 12시 화장장으로 운구했으며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문상을 위한 조문실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홍춘봉 기자(=태백·정선)(casinoh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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