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보'가 뭐길래..얼마나 가까이·자주 만나냐가 곧 '힘'

최은지 기자 2021. 2. 1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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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통령 취임 100일간 267회 직보 받아..국무총리 주례회동·당대표 독대
조국 '업무보고' 추미애 '독대' 박범계 '직보'..법무차관에 "직보" 지시도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뉴스1 DB) /뉴스1

(서울=뉴스1) 최은지 기자 =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사의 표명의 배경으로 알려진 이유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보'(직접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검사장금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두고 법무부와 검찰의 이견이 있었고, 신 수석은 이를 중재하려 했으나 박 장관이 문 대통령에게 직보해 법무부안으로 대통령 재가를 받아 지난 7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유임 등의 인사를 발표했다.

그러자 중재 역할을 하던 중에 전격 발표된 검찰 인사로 무력감과 함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신 수석은 9일쯤 사의를 표명했다. 표면적으로 박 장관과의 갈등으로 비치긴 하지만 신 수석은 대통령이 검찰과의 소통역을 맡은 자신을 '불신임' 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신 수석은 18일 이틀간 연차휴가를 내고 거취 고민에 들어갔다. 오는 22일 복귀해 최종적으로 거취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청와대 상춘재에서 정세균 국무총리와 첫 주례회동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20.1.20/뉴스1

◇대통령 '직보'의 의미…의중 파악하고 의견 피력할 기회

국정 통치자인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이해하고 정책을 실현하는 부처는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정 철학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곧 부처 수장인 장관의 능력 부재로도 평가받기도 한다.

물리적으로 대통령이 모든 정책에 대해 직접 지시를 내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를 보좌하는 것이 청와대 참모들의 역할이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부처와 조율하며 정책이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따라서 청와대 참모와 부처의 원활한 소통은 국정 운영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물론, 부처 장관들도 대통령에게 대면보고하는 것을 선호한다. 자신이 맡은 일의 중요성과 책임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대통령에게 자신의 역할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전 이를 점검하는 것이 대통령비서실장의 몫이다. 중요도를 판단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지시를 한 후 최종적으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일종의 '관문'인 셈이다.

일례로 노영민 전 비서실장은 2019년 취임 후 "국정 운영과 정국 구상을 위한 대통령의 시간 확보가 절실하다"라며 "청와대의 대면보고는 줄이되, 각 부처 장관 등 내각의 보고는 더욱 확대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2018년 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100일 동안 국무총리와 청와대 수석 비서관, 부처 장관의 직접보고를 받은 것은 총 267회로, 1일 평균 2.6회의 직접 보고를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들과 차를 마시며 자유롭게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2017.5.25/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얼마나 '가까이·자주' 대통령과 만나냐에 따라 '힘'이 생긴다

대통령과 자주 만날 수 있는 '지근거리'의 자리, 혹은 대통령과 '독대'를 할 수 있는 자리는 곧 '힘'이 생긴다. 그만큼 대통령의 의중을 잘 파악할 수 있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매일 오전 소규모 일일현안보고에 참석하는 비서실장과 국가안보실장, 정책실장 등 3실장과 일부 수석·비서관이 그렇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국무총리와 매주 월요일 오찬을 함께 하는 '주례회동'을 한다. 딱딱한 회의가 아닌 함께 식사하면서 편안하게 국정 현안을 논의하고, 때로는 국정 조언을 하기도 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발탁에 이 '주례회동'의 역할이 컸다는 이야기는 정치권에서 이미 파다하다. 홍 부총리는 이낙연 국무총리 시절 이 총리와 함께 주례회동에 배석하는 자리인 국무조정실장이었다. 청와대에서는 대통령비서실장이나 국정상황실장이 배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총리는 지난달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에서 쓴소리하거나 강하게 의견 표명을 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크고 작은 일도 대부분 보고하고 지침도 받고 경우에 따라 제 의견도 개진하는데 대통령께서는 경청을 잘해주시고 건강한 건의에 대해 수용성이 높은 입장을 보여주셔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문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비정기적으로 독대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남기 부총리는 2주에 한번씩 대통령에게 비공개 업무보고를 했다. 그만큼 경제정책을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있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홍 부총리의 보고를 받고 조언을 하고, "내년에도 잘해 주기 바란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청와대에서 김오수 법무부 차관과 이성윤 검찰국장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청와대 제공) 2019.10.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조국 '업무보고' 추미애 '독대' 이어 박범계 '직보'

논란 끝에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취임 한 달여 만에 문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했다. 당시 김오수 차관과 이성윤 검찰국장, 황희석 검찰개혁추진단장이 배석했고, 이 자리에서 공석인 대검찰청 감찰부장과 사무국장 인사를 문 대통령이 수용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조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것 자체로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갈등 국면에서 조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청와대는 당시 "대통령이 원할 때 다양한 부처로부터 보고를 받아 왔고, 부처에서 필요에 의해 보고할 때도 있다"라며 "특이한 사례는 아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조 장관 퇴임 후 장관 대행을 맡은 김오수 차관 및 이성윤 당시 검찰국장, 황희석 단장에게서 검찰개혁 관련 보고를 받고, 검찰개혁 완성을 당부하면서 "개혁 방안이 있다면 직접 저에게 보고도 해달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장관 공석 상황에서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문 대통령이 현안을 직접 챙겼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경우 윤 총장 징계 절차를 두고 지난해 12월1일 국무회의 후 문 대통령을 면담하기도 했다. 같은달 16일에는 윤 총장에 대한 '2개월 정직' 징계 제청을 위해 대면보고를 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추 장관은 사의를 표명했고, 문 대통령은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라며 힘을 실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검찰 인사 '직보'에 대해 청와대는 함구하고 있다. 대통령 보고 과정에 대해 공개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현안을 보고받고 의사를 전달하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법을 공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단이다.

통상 검찰 인사의 경우 법무부 검찰국장과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실무협의를 한 후 법무부 장관과 민정수석에게 보고하고 조율한 뒤 민정수석이 최종 조율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절차를 밟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 민정비서관실 선임행정관부터 지낸 '원년멤버'인 이광철 비서관이 박 장관과 인사 협의를 주도하고 이 비서관이 신 수석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다는 설과, 박 장관이 문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직보했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왔다.

청와대는 검찰 고위간부 인사 과정에서 검찰과 법무부 사이에 견해가 달라 신 수석이 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박 장관과 이견이 있었고, 이견 조율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법무장관 안'이 보고가 돼 발표가 되면서 신 수석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검찰 인사 과정에서 민정수석과 의견조율이 끝나지 않은 채 대통령에게 보고가 됐고, 이를 대통령이 재가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신 수석은 이번 주말까지 거취를 고민하고 22일 업무에 복귀해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silverpap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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