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파블로 수감이 스페인 표현의 자유 논쟁에 불을 붙였다

장은교 기자 2021. 2. 1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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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왕과 정권을 모욕한 혐의로 수감된 래퍼 파블로 하셀 사건이 스페인에서 표현의 자유 논쟁에 불을 붙였다. 수천명이 거리로 나와 밤샘 시위를 벌였고 정부는 형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17일 새벽(현지시간) 스페인 발렌시아 알리칸테에서 시민들이 래퍼 파블로 하셀의 석방을 요구하며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알리칸테|EPA연합뉴스

AFP통신 등은 16일 밤(현지시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카탈루냐 전 지역과 마드리드, 발렌시아 등 여러 도시에서 수천명이 거리로 나와 하셀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시위 초반에는 구호를 외치고 박수를 치며 행진하는 등 평화로운 분위기였지만 후반에는 시위대와 경찰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일도 발생했다. 일부 시위대는 유리병과 돌을 던지고 바리게이트에 불을 질렀고, 경찰은 최루가스와 고무총 등을 발사했다. 수십명이 연행됐고, 부상자도 다수 발생했다.

하셀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트위터와 자신이 만든 노랫말을 통해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와 국왕의 아버지를 살인자로 묘사하고, 경찰과 정권을 비판하며 테러단체를 미화하고 옹호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하셀은 스페인 정부가 강제로 무력화시킨 카탈루냐 지역의 분리독립을 지지하는 입장도 밝혔다. 1심은 그에게 징역 2년 1일을 선고했으나, 2심에선 “실질적 위협이 없다”는 이유로 9개월 1일로 감형됐고 지난해 5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지난 12일 수감을 앞두고 있었으나, 이에 저항하며 한 대학교 건물로 피신했다가 16일 체포됐다. 하셀은 2014년에도 비슷한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2016년에는 기자를 폭행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 여러 형사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17일 새벽(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래퍼 파블로 하셀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경찰이 곤봉을 휘두르고 있다. 마드리드|AP연합뉴스

아카데미상 수상자이기도 한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유명배우 하비에르 바르뎀 등 문화예술계 인사 200여명이 그의 유죄판결을 비판하는 탄원서에 서명했다. 이들은 “하셀의 투옥은 국가기관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려는 모든 이들의 머리 위에 칼을 매다는 것”이라며 “오늘은 하셀이지만, 내일은 우리 중 한 사람을 쫓아오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제 앰네스티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끔찍한 소식”이라며 비판했다. 스페인 형법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스페인 출신의 래퍼 발토닉도 2018년 정부를 비판하고 테러단체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 하루 전 벨기에로 망명했다.

스페인 언론 엘파이스는 “하셀의 수감이 집권세력 내 새로운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페인은 사회당과 포데모스, 좌파연합이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데 포데모스와 좌파연합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표현의 자유를 위한 형법 전면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엘파이스는 “포데모스가 ‘표현의 자유 보호법’ 초안을 만들어 사회당에 제안했는데, 사회당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나아간 내용”이라며 “좌파연합은 아예 국왕과 국가기관 모욕과 관련된 범죄를 모두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페인 법무부는 지난 주 “문화·예술분야 표현의 자유를 위해 징역형을 선고하지 않는 방안으로 형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일정과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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