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게시판 유명인 폭로글 '와글와글'..'자작글' 피해도 만만찮다

임소연 기자 2021. 2. 1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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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학폭, 학폭..뜨거운 '익게']고발 등 순기능 있지만 뜬소문 유발하는 부작용도
네이트판 페이지/사진=캡쳐


#“10년이나 지난 일이라 잊고 살까도 생각했지만...” 지난 10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배구선수 이다영·이재영의 과거 학교폭력 폭로 글이 올라왔다. 두 선수가 심부름을 시키고, 흉기로 위협했다는 구체적인 진술과 사진까지 들어 있었다. 며칠 뒤 두 선수는 사과했고, 지난 15일 배구 협회는 두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했다.

#16일 네이트판엔 배우 조병규를 저격한 폭로글이 올라왔다. 작성자 A씨는 "조병규 무리에게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병규 소속사가 "거짓"이라며 법적대응을 예고하자 A씨는 허위였음을 직접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또 나타났다. 그러자 이번엔 "조병규에 대한 누명"이라고 반박하는 동창생이 글이 올라왔다.

인터넷 익명게시판에 각종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유명인의 부정 등을 쉽게 세상에 알릴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익명에 숨어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악의적 소문을 퍼뜨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순기능만큼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정확하거나 악의적 정보가 계속 올라오면서 온라인 공론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피로감을 높인다. 폭로 글에는 ‘주작이네’, ‘중립기어(중립적 입장) 박고 갑니다’라는 댓글을 쉽게 볼 수 있다.
개인적인 '자작'부터 유명인 루머까지 판치는 '판춘문예'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배구계 학폭' 의혹은 진실로 밝혀지며 순기능을 했지만 익명 게시판의 부작용도 만만찮다. 특히 유명인들에 대한 루머는 익명게시판 단골 글이다. 소설 같은 이야기가 많다보니 네이트'판' 게시판과 신춘문예를 결합한 '판춘문예'라는 말까지 나온다.

배우 조병규를 둘러싼 학교폭력 의혹은 매일 바뀌고 있다. 학폭 폭로글→허위·사과→학폭 추가글→동창 반박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계속되는 이슈에 배우는 물론 지켜보는 사람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다.

과거 익명게시판에 올린 글이 사회 자정작용을 불러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2015년 네이트판엔 김병지 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의 아들이 학교폭력 가해자라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왔다. 김 부회장과 아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으나 수년에 걸친 소송 결과 법원은 무효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엔 보배드림에 아이돌 그룹 갓세븐 멤버 영재를 겨냥한 글이 올라왔다. 고교시절 학급 친구들을 때리고 심부름 시켰단 내용이었다. 소속사인 JYP는 사실무근이라 반박하며 해당 글 작성자와 직접 만났고 "어떤 근거도 듣지 못했다"며 법적대응을 예고했다.

개인적인 '자작글(스스로 지어낸 글)'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자신의 25개월 난 딸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초등 5학년 남학생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내용의 국민청원이 올라와 공분이 일었다. 한달간 53만명 이상이 청원에 동의했다. 그러나 내용은 모두 허위로 밝혀졌다. 작성자에겐 딸도 없었다.
어디까지가 개인사이고 공론사항?…"실명제는 답 아냐"
국민청원 게시판/사진=캡쳐

익명 커뮤니티는 일종의 '대나무숲'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을 공유하고, 이 중 다수가 공감하는 일은 공론화돼 수면 위로 올라온다. 최근 '웃긴대학'에 올라온 '학원 하원도우미 배달 갑질 사건'이 일례다. 배달원 개인의 억울한 사연이 '소비자 갑질' 문제를 끄집어냈다.

익명성은 피해자·고발자 개인에 대한 사회적 주목을 최소화 해준다. 본인을 공공에게 노출할 때 입을 수 있는 2차 피해를 피하면서도 문제 고발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익명게시판의 순기능이라 볼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익명게시판뿐 아니라 실명인증이 필요한 국민청원 게시판까지 공론화를 원하는 개인사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배우자의 불륜 이야기, 개인 간 채무 다툼 등이다. 인터넷 게시판이 '개인 일기장'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선 루머 유포나 지나친 개인사 남발 등을 자제하기 위해 '실명제'도 거론한다. 빠른 전파력에 비해 사실 확인 및 정정은 느리기 때문에 그 폐단을 막자는 것. 그러나 익명성이 주는 순기능을 감안하면 무 자르듯 규제할 순 없다는 게 전문가 목소리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교수는 "소수랄지라도 선의의 피해자를 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실명으로 폭로할 경우 가해자나 구경꾼들에 의한 2차 피해 우려가 있다"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니 원천차단하겠다는 발상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다만 "사안에 따라 폭로에 대한 접근방식을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며 "폐해가 크거나 공익적 경우엔 익명성 기준을 엄격히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폭로가 공익을 위한 것인지 비방을 위한 것인지를 구분할 책임을 커뮤니티에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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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연 기자 goatl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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