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형의 과학 언저리] '2인1조 김용균'의 가상현실

한겨레 2021. 2. 18.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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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그의 죽음을 가상으로 목격한 사람들은 헤드셋을 벗은 다음 무엇을 증언하게 될까. 그 증언은 가상현실이 아닌 진짜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전치형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2월4일 <문화방송>(MBC)에서 방영한 가상현실 다큐멘터리 ‘용균이를 만났다’는 가상현실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다시 묻게 한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사망한 김용균을 가상현실 속에서 만나도록 하는 프로그램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타인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만난 적 없어도 아는 사람처럼 느끼고 그의 상황과 아픔을 공감할 수 있을까요?” 가상현실 기술로 무엇을 어떻게 재현해야 그런 일이 가능할까.

가상현실 기술이 현실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은 ‘용균이를 만났다’ 프로그램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가상현실은 현실의 일부를 주로 시각적으로 재현해낼 수 있을 뿐, 현실을 그런 모습으로 지속시키는 구조를 드러낼 수는 없다. 헤드셋을 쓰고 가상현실로 들어간 사람이 “용균이를 만났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김용균 사망 사건의 진상을 목격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헤드셋을 쓴 사람은 화력발전소 내부 모습과 김용균이 시설 점검창 안쪽으로 몸을 집어넣는 모습을 자세하게 볼 수 있지만, 그가 왜 몸을 집어넣어야 했는지, 그는 왜 2인1조가 아니라 혼자 작업하다 숨졌는지 알아차릴 수는 없다. 그 구조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헤드셋을 쓰는 대신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조사결과 종합보고서’라는 제목의 663쪽짜리 문서를 읽어 내려가야 한다.

김용균을 만나는 체험을 설계하기 위해 그의 가족, 동료, 친구를 만나면서 제작진은 김용균의 죽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단지 가상현실의 시각적 품질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했을 것이다. 아들을 잃고 2년이 지난 뒤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하는 김미숙씨의 마음은 가상으로 체험할 수가 없다. 사고 현장에서 뒤늦게 김용균을 처음 발견하고 그 몸을 들어 올린 이인구씨가 그날 보았던 “깊이를 알 수 없는 암흑”을 가상으로 목격할 수도 없다. “제가 복기를 자주 해요”라며 이인구씨가 털어놓은 그 암흑의 경험을 제작진은 도무지 가상현실로 구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실 혹은 진상은 가상현실이 재현할 수 있는 것 너머에 있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재현 불가능한 것을 재현하려는 시도를 통해 제작진은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또 헤드셋을 쓰고 가상현실에 들어가 볼 수도 없는 티브이 시청자는 프로그램에서 무엇을 볼 수 있었을까.

<문화방송>(MBC) 다큐멘터리 ‘용균이를 만났다’의 한 장면.

‘용균이를 만났다’를 보던 나는 현실과 가상현실 중간쯤에서 뜻밖의 2인1조 공동 작업 현장을 목격했다. 가상현실에 들어갈 김용균의 동작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이인구씨가 작업 시범을 보여주고 이를 배우가 옆에서 따라 하는 장면이었다. 그때 마침 “위험한 작업이지만 2인1조의 작업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라는 음성 해설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인구씨는 막대기를 들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긁는 동작을 보여주었다. 똑같이 한쪽 무릎을 꿇은 배우는 빈손으로 동작을 따라 했다. 이인구씨는 말과 몸으로 설명했다. “그러면 이렇게 들어가서, 들어가서 여기에 탄이 쌓여 있잖아요. 이렇게 잡고 이렇게 찌르죠.” 막대기를 넘겨받은 배우는 진지한 얼굴로 방금 본 동작을 연습했다. 김용균의 움직임은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를 통해 배우에게 전달되었고, 배우를 통해 다시 가상현실 속 김용균의 움직임으로 구현되었다. 사고 당시 지켜지지 않았던 2인1조 작업이 그의 동작을 데이터로 살려내려는 동료와 배우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가상현실은 김용균과 그의 죽음을 온전히 재현하지 못했지만 그의 옆에 서서 그를 지켜보는 경험을 제공했다. 배우가 가상 스튜디오에서 2인1조의 일원이 되어 김용균의 동작을 관찰한 것처럼, 헤드셋을 쓴 사람들은 가상현실 속에서 작업 중인 그의 옆에 서서 가상의 2인1조가 되었고 그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문화방송> 보도자료). 2018년 그날 2인1조가 아니었기에 아무도 직접 보지 못했던 그의 죽음을 가상으로 목격한 사람들은 헤드셋을 벗은 다음 무엇을 증언하게 될까. 그 증언은 가상현실이 아닌 진짜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단식하며 호소하던 김미숙씨에게 바삐 인사하고 지나가던 국회의원들에게 헤드셋을 씌우고 김용균과 2인1조가 되게 했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대로 제정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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