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불행을 다음 재난에 그대로 '복·붙'하지 않으려면

김명희 2021. 2. 1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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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드러난 공공의료의 취약성, 위험의 불평등, 혐오와 차별 등은 메르스의 경험으로 예견된 것이었다. 그때처럼 '역경 극복의 성공 서사'에 머문다면 탄식과 불행은 반복될 것이다.
ⓒ시사IN 신선영2018년 9월10일 3년 만에 발생한 메르스 확진자가 격리치료 중인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앞.

벌써 1년이다. ‘21세기 감염병은 네버엔딩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이 코너에 코로나19와 관련된 첫 번째 글을 실은 것이 2020년 2월3일. 의학 학술지인 〈랜싯〉과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이 당시 미지의 질병이었던 코로나19 관련 첫 번째 학술논문을 나란히 게재하고 일주일 지나서였다. 코로나19 유행 1년을 맞아 기획된 최근의 몇몇 인터뷰에서 예방의학, 특히 역학을 전공했다고 하자 사람들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중국에서 처음 유행이 시작되었을 때, 이렇게 팬데믹으로 발전할 것을 예상했냐’고. ‘이렇게 될 줄 내가 처음부터 알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코로나19 이전에 사스(SARS), 신종플루, 조류독감 등도 유행이 시작될 때마다 ‘팬데믹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현실에서 실현되지는 않았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에도 팬데믹을 경고하는 연구자가 많았다. 유행 양상을 보며 팬데믹을 우려하는 이성적 추론을 하면서도 ‘설마 내 살아생전에 바로 그 일이 벌어지겠어?’ 하는 막연한 낙관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나마 비전공자보다 조금 나았던 점이라면, 포기가 빨랐다는 것이다. ‘대구 유행만 무사히 가라앉으면’ ‘이태원 클럽발 유행만 어떻게든 꺾으면’ 같은 기대를 일찌감치 접었다. 〈시사IN〉 ‘주간 코로나’에서 계속 이야기했던 것처럼, 총력을 다해서 짧고 굵게 끝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며 ‘가늘게 길게 애틋하게’ 버텨나가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예측이 맞았다. 걱정했던 갖가지 상황이 예측한 그대로 나타나면서 몹시 괴로운 한 해를 보냈다. 내 전공은 역학(疫學)이지 역학(易學)은 아닌데,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도 아닌데, 중요한 순간마다 데자뷔를 경험했다. ‘어? 이건 2013년 보건의료 노동자 연구할 때 들었던 이야기인데?’ ‘2015년 메르스 연구에서, 2016년 구금시설 실태조사에서, 2017년 결핵 연구에서 제기했던 문제인데?’

1년 전 〈시사IN〉 기고문에서도 메르스 유행의 경험을 언급하며 재난 상황에서 나타날 위험 불평등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사실 코로나19 유행 과정에서 드러난 공공의료의 취약성이나 위험의 불평등, 혐오와 차별 등은 아주 새롭거나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문제는 아니었다.

“병원에서 초기에는 직원도 마스크 쓰지 말라고 했어요, 혐오감을 주니까.” 2015년 메르스 유행 초기에 한 병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공항 노동조합 지부에서는 임신부 조합원이라도 마스크를 쓰게 해달라고 회사 측에 요구했다가 외국인에게 안 좋은 첫인상을 줄 수 있다며 거절당하기도 했다.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불과 5년 전 일이다. 지식이 확산되고 안전에 대한 인식과 규범이 바뀌면서 이런 억지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오히려 마스크를 착용하고 철저히 대비하는 모습이 고객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줄 수 있다. 메르스 유행이 남긴 소중한 자산이다.

당시 메르스 유행의 진앙지였던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용역업체에 소속되어 일하던 이송요원이 직원 검진에서 누락되었다가 뒤늦게 확진 판정을 받은 일이 있었다. 아마도 일부러 배제하지는 않았겠지만,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검사 명단에서 누락되었을 것이다. 바이러스는 고용계약을 개의치 않는다는 뼈아픈 경험 덕분에,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정부 지침에는 병원의 하청·파견·비정규직 노동자와 간병인에게까지 마스크를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빨간색 글씨로 강조되었다. 역시 메르스 유행의 교훈.

공공병원들의 국가격리병상 마련, 한층 강화된 병원들의 감염관리 역량 또한 모두 메르스 ‘덕분’이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 정도의 ‘정치적’ 위기를 겪고 나서 이만큼도 개선되지 못했다면 정말 참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개선이 모든 측면에서 고르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19는 마치 치밀한 계획이라도 세운 것처럼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차례로 공격했고,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그 계획대로 위태로워졌다. 과거의 경험들은 교훈을 남기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연합뉴스1월29일 서울역광장에 노숙인들이 누워 있다. 이날 서울역광장 노숙인 누적 확진자 수는 39명을 기록했다.

비극으로 반복된 역사

“홈리스들은 집단 밀집 생활을 하기 때문에 전염성 질환에 취약해요. 위기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고 위생관리에 불리하죠. 메르스 같은 게 발병했을 때 당연히 홈리스들에 대한 예방대책이 발 빠르게 움직여야 했는데 서울시, 복지부는 이 부분을 놓치고 갔던 것 같아요. (…) 홈리스들이 지정병원만 갈 수 있는 체계라는 게 문제지요. 대다수가 공공병원으로 지정된 노숙인 진료시설에만 갈 수 있어요.”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노숙인 지원단체 활동가의 말이다. ‘메르스’라는 단어를 ‘코로나19’로 바꾸기만 하면 요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지난해 봄에 노숙인 지원단체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의료원에서 일일이 병원을 다 찾아서 전원(병원 이동) 요청을 한 거죠. 어떤 분은 수술을 당장 받아야 하는데, ‘이런 환자인데 받아줄 수 없냐’고 민간 병원에 요청했더니, 의료원 환자라니까 일단 안 받고 보는 거예요. (의료원은) 코로나 환자들이 왔다 갔다 했던 병원이니까.”

공공병원들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여기에 의존해왔던 이들은 또다시 의료 공백에 직면하게 되었다. 카를 마르크스의 〈프랑스혁명사〉 3부작에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시 한 번은 희극으로.” 우리에게 두 번째 반복은 희극이 아니라 더 비참한 비극일 뿐이었다.

지난여름 대구 지역 활동가는 코로나19 유행 시작이 “동절기 끝날 무렵이라서 다행인 거지, 이게 동절기 시작 시점이었다든지 중간이었으면, 어휴 사실 끔찍해요”라고 털어놓았다. 그가 우려했던 바로 그 상황이 최근 서울에서 일어났다. 홈리스들은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발생해도 검사 결과가 확정될 때까지 격리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 밀집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주거 불안정 계층의 감염성 질환이 의심되는 경우, 검사 결과가 확정될 때까지 적절한 대기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결핵 연구를 하며 만났던 활동가는 결핵이 의심되는 노숙인을 병원으로 데려가도 객담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일단 어디엔가 머무르게 해야 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다시 그 사람을 거리에 놔둘까요? 거리에 놔둘 수 없어요. 시설에 맡겨야죠. 그런데 시설에서 받아주지 않아요. 결핵 때문에. 그럼 저희 센터 응급 잠자리에 데리고 와야 해요. 센터의 응급 잠자리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거죠. 객담 검사의 결과가 활동성 결핵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죠?” 이 인터뷰는 2017년에 이루어졌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결핵, 온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메르스 유행을 거치면서도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는 여전히 위태롭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시사IN 이명익2015년 6월1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메르스 정국 의료공공성 파괴 정책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근본 대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2015년 당시엔 어린이와 청소년들 사이에 메르스 유행의 증거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불안 때문에 많은 학교와 학원, 돌봄 시설들이 휴교와 휴원 조치를 시행했다. 부모들의 재택근무나 돌봄휴가가 존재하지 않고 긴급돌봄 제도도 미비한 상황에서 아이들의 방치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특히 원래도 가족돌봄이 여의치 않았던 아이들의 사정이 어려웠다. 방과 후에 아이들을 돌보던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은 그야말로 애가 탔다. “학교 휴교하고 학원 휴원하고 센터 휴원해도 아이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구청에 ‘아이들을 위해 센터를 운영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문의했지만 돌아온 답변에 맥이 빠졌다. “자체적으로 센터 운영을 해야 한다면 하래요. 근데 무슨 일이 생기면 센터 책임이라고.” 방역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수로 ‘책임’을 질 수 있겠나. 지역아동센터 교사는 아이들이 센터에 들어오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는 모습을 3층 창밖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메르스 유행을 차단한다며 마을을 폐쇄한 사례도 있었다. 일종의 ‘록다운(lock down)’이다. 언론에서는 ‘메르스 관리는 이렇게 하는 거다’라며 지방자치단체의 선제적 조치를 칭찬했지만, 사실 여기에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윤리적 정당성도 없었다. 주민 100여 명이 뜨문뜨문 거주하는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밀접접촉자들은 가정 격리만으로 충분했다. 그런데도 갑자기 마을 입구를 가로막고 경비가 세워졌으며 집 앞 밭에 일하러 나가는 것도, 마을 바깥 일터에 출근하는 것도 저지당했다. 설명도 없었다.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정부가 하는 일이니 그냥 따랐다고 했다.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게 있으니, 적극적으로 막지 않나. 일단 따라주자. 그리고 구멍은 많잖아요. 마음먹으면 나갈 수 있어요. 진짜 산을 넘어서라도 다른 곳에 갈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나 일단 자체적으로 따르자. 마을 분위기가 그랬어요.” 하지만 주민들은 곧 깨달았다. “도시, 아파트 같은 경우가 더 위험하지 않나요? 엘리베이터도 폐쇄된 공간이잖아요. 아파트 동 전체를 격리해야 당연한 거잖아요. 근데 이거는 진짜 말도 안 되는, 힘없는 사람들만 죽으라는 거예요. (우리 마을에) 힘 있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면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 사회는 이런 조치들이 실제 효과가 있었는지, 의사결정 절차가 합리적이었는지, 방역조치로 인해 초래된 개인과 지역사회의 손실이 제대로 보상되었는지 평가하지 않았다. 피해 당사자들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도, 목소리를 낼 공간도 없었다. 그러다가 2020년 코로나19 유행을 맞이했다. 이제 돌봄 대란은 전국적 규모에서 아동뿐 아니라 장애인, 노인까지 포괄하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무분별한 코호트 격리는 자유권의 침해를 넘어 실질적 인명 피해로까지 이어졌다. 앞서의 조치들에 대한 진지한 평가가 있었더라면 피해를 좀 더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메르스 유행이라는 연습게임을 겨우겨우 치러내는 데에만 급급해서 전력을 평가하고 개선점 찾기를 소홀히 한 채 5년의 시간을 흘려보냈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다시 본게임에 출전하게 된 것이다.

ⓒ연합뉴스2015년 6월5일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한 전북 순창의 한 마을. 최초로 마을 전체가 출입 통제되었다.

‘최선 다했다’ 백서의 불행한 결과

메르스 유행이 그 이전의 공중보건 위기와 달랐던 점이 있다. 많은 공공기관과 민간단체들이 자체적으로 ‘백서’를 발간했다. 중앙정부는 물론 광역과 기초 지방자치단체, 개별 의료기관, 학술단체, 노동조합에 이르기까지 많은 주체들이 자신의 활동을 기록하고 평가를 담은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만큼 메르스 유행이 한국 사회와 보건의료체계에 미친 충격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런 평가의 상당수가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도 얼마나 열심히 했고, 어떻게 역경을 극복했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헌신과 창의적 아이디어로 현실의 어려움을 돌파해나간 것은 기록하고 학습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이렇게 성공의 서사로 과거를 돌아보면, ‘어려운 상황’이 어떻게, 누구 혹은 어떤 구조 때문에 초래되었는지 따지지 못하게 되고, 다음의 위기에 대비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또 다른 위기가 온다고 해도 역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면’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까 봐 걱정이다. 방역과 보건의료, 돌봄의 일선에 있었던 모든 종사자, 방역수칙을 지킨 시민 등 모두가 각자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했다. 국제적으로 보자면 K방역이 상대적으로 좋은 성과를 보였다는 것도 맞다. 하지만 메르스 유행을 통해서, 또 오래된 결핵 유행을 통해서, 심지어 지난해 봄과 여름의 유행을 통해서 얻은 교훈들을 제대로 활용하는 데 여전히 실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방역 조치의 실행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예상되었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대비가 왜 불충분했는지, 보건의료 노동자 보호가 왜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는지, 공공의료 확충과 공중보건 거버넌스 체계 강화는 왜 좀처럼 진전되지 않았는지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다. 모든 평가의 과정에 현장과 이해당사자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는 ‘좋은 정치’가 완수해야 할 과제들이다.

‘몇 달만 버티면’이라는 성급한 희망이 퍼져나가고 있다. 불과 5년 전의 메르스 유행이 까마득히 먼 이야기로 느껴지는 것처럼, 코로나19 유행이 어떻게든 지나고 나면 ‘다이내믹 코리아’는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전력을 기울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다음 공중보건 위기, 사회적 재난이 닥쳤을 때 이 글의 내용을 그대로 ‘복·붙’ 하면서 탄식과 함께 코로나19 유행 경험을 덧붙이는 불행이 재연될 것이다. 세월호 1기 특조위에서 재난 거버넌스 연구를 할 때 들었던 환경운동가의 뼈아픈 반성이 떠오른다. “2005년도 씨프린스로부터 교훈을 우리가 제대로 못 얻어서 2007년도에 허베이스피릿호 사고가 난 것이고, 그때의 우리가 제대로 각성을 못해서 세월호가 터진 거예요.” 거침없는 전진만큼이나 차분한 복기(復碁)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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