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극우 선동가' 러시 림보 사망..트럼프 "그는 전설"

정의길 2021. 2. 1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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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인기 방송 '러시 림보 쇼' 진행자
진보·환경·여성주의 공격하며, 극우 이념 전파
1980년대 이후 미국 보수에 지대한 영향
극우 방송진행자 러시 림보가 지난 2020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메달 훈장을 수여받은 뒤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1980년 이후 미국 보수세력에 큰 영향을 미치며 극우 세력 성장에 큰 몫을 한 림보는 17일(현지시각) 폐암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UPI 연합뉴스

1980년대 이후 미국 극우세력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라디오쇼 진행자인 러시 림보가 17일 70살 나이로 사망했다.

림보의 아내 캐서린 로저스는 림보가 진행하던 라디오 토크쇼에 나와, “림보는 2020년초부터 폐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던 중 이날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림보는 198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이름을 딴 라디오 토크쇼 ‘러시 림보 쇼’를 통해 극우에 가까운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며, 미국 보수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토크쇼는 2020년말 기준 미국 전역의 650개 제휴 방송국에서 매월 2천만명이 이상이 청취할 정도로 가장 인기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노골적이고 일방적이고 직설적인 언사로 극우를 옹호하면서 진보 및 자유주의 세력을 비난했다. 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등 수많은 음모론을 주장했다. 소수집단, 환경주의자,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비난을 퍼부었다. 림보의 이런 언사는 미국 주류 언론이 자유주의 성향에 빠졌다고 보는 보수 세력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극우 세력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극우 이데올로기 ‘스피커’로서 라디로 프로그램을 활용한 그의 전략은, 인터넷 방송 등 대안 매체를 활용하는 미국 극우 ‘선전선동술의 효시’가 됐다.

그는 노숙자 보호단체들을 “온정적인 파시스트”, 임신중절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을 “페미나치”, 환경주의자들을 “나무를 포옹하는 미친놈”이라고 표현했다. 지구온난화는 “사기”라고 주장했다.

특정인에 대한 욕설과 조롱도 서슴지 않았다. 파킨슨병에 걸린 배우 마이클 폭스를 놓고는 그의 몸떨림을 흉내내며 조롱했다. 1980년대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으로 하루에 수백명씩 죽어갈 때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에이즈 업데이트’라는 코너를 만들어 동성애자들의 죽음을 조롱했다. 그는 나중에 유감을 표명했지만, 지난해 대선에 출마한 동성애자 피트 부티지지에 대해 “무대 위에서 자신의 남편에게 키스하는 게이”는 축출돼야 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건강보험안 중 여성의 피임 비용 부담을 지지하는 조지타운대 여학생에 대해서는 “잡년” “매춘부”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당시에 “우리가 당신의 피임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당신의 성관계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당신이 성관계 동영상을 올려서 우리 모두가 볼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으로 기업들이 그의 프로그램에서 광고를 철수하자, 그는 이례적으로 사과를 하면서도 “재미있으라고, 나는 전국적인 소동을 부렸다. 진심으로 그런 모욕적인 발언 선택을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월6일 미국 의사당 난입 사태도 옹호했다. 모든 언론과 정치인들이 이를 비난하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거리를 뒀지만, 그는 의사당에 난입한 이들이 “품행이 바르고, 존경스럽다”며 “안티파와 민주당이 후원한 선동자”들이 폭력 사태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미주리의 법조인 가정에서 태어난 림보는 청소년 시절부터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방송에 큰 관심을 가졌다. 대학에 진학했으나 2년만에 성적 불량으로 중퇴하고는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무명의 디스크자키로 방송인 이력을 시작했다. 그는 신보수주의자 로널드 레이건이 집권한 1984년에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보수적인 정치이념을 주장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1987년 레이건 행정부가 방송 프로그램에서 ‘공정성 원칙’ 폐기한 것은, 림보의 토크쇼에 날개를 달아준 계기가 됐다. 공중의 이해가 걸린 사안을 다룰 때에는 서로 다른 의견들을 공정하게 소개해야 한다는 방송의 ‘공정성 원칙’이 폐지되자, 방송국들은 일방적인 견해만 가지고도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림보의 토크쇼가 전국적인 방송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림보는 1988년 뉴욕의 주요 방송사에서 자신의 새로운 토크쇼 진행을 맡았고, 이는 미국 전역의 제휴 방송국을 통해 방송됐다. 그후 그의 토크쇼는 레이건 및 아버지 조지 부시 행정부 인사 및 공화당원들의 애청 프로그램이 됐다. 그의 프로그램은 그 후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한다는 방송인 션 해너티를 비롯해 글렌 벡, 빌리 오라일리 등 극우 방송평론가들을 탄생시켰고, 보수 뉴스채널인 <폭스 뉴스>를 탄생시키는 기반을 닦았다.

림보는 전국적인 인기에 힘입어 텔레비전 및 출판업까지 진출해, 방송 재벌로 부상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2018년 그의 수입은 8450만달러(약 936억원)였다. 림보는 말년에 진통제를 과다 처방 받는 등 약물 남용 혐의로 수사를 받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림보에게 대통령자유메달 훈장을 부여했다. 트럼프는 림보의 사망을 맞아 연 퇴임 이후 첫 회견에서 “그는 전설이었다”며 “그의 방송을 매일 듣는 사람들에게는 종교적 경험 같은 것”이라고 치하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림보가 “수백만명 미국인의 목소리로서 자신의 심정을 말한 친구였다”고 애도했다. 백악관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림보의 가족에게 애도를 전했다고만 밝혔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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