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 사의 막전막후.. 靑 향한 검찰수사가 여권 위기감 불질러
검사 출신인 신 수석으로서는 검찰 인사와 검찰 개혁 등 주요 현안에서 친정인 검찰 입장을 헤아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말 민정수석으로 임명될 때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런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설명했고 대통령도 신 수석의 뜻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새해 들어 원전 수사와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 등 청와대를 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검찰에 대한 강경론이 정권 내부에서 커진 것으로 보인다. 신 수석 임명과 더불어 지난해 말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무산 사태를 넘기며 검찰과의 극한 갈등은 피하자는 온건론이 힘을 얻는 듯 했지만 검찰이 권력의 심장부를 향해 민감한 수사를 계속 밀어붙이자 문 대통령이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등을 주장하는 강경파에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최근 신 수석의 사의 표명 계기가 된 검찰 인사는 여권 내 강경파가 검찰 개혁에 대한 주도권 싸움에서 승리한 전장이었다. 윤 총장의 인사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애쓴 신 수석은 철저히 배제됐다. 정권 관련 수사를 뭉개거나 윤 총장 밀어내기에 앞장섰던 간부들이 유임 또는 일선 지검장으로 전보된 것은 반년 밖에 남지 않은 윤 총장의 임기까지 검찰의 힘을 확실하게 빼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검찰 인사를 앞두고 있던 이달 초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의혹을 수사하는 대전지검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여권 핵심에 적지 않은 위기감을 불러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 2018년 원전 조기 폐쇄 당시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원전 가동 중단과 폐쇄를 실행한 위치에 있었던 백 전 장관이 구속되면 검찰 수사가 곧바로 청와대 내부로 치고 들어가는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는 처음부터 끝까지 청와대 주도와 지시에 의해 실행된 정황이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어 백 전 장관의 구속은 여권을 크게 긴장시키는 일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4월 참모진에게 “월성 1호기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되느냐”고 물었고,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18년 6월 원전이 폐쇄됐다. 검찰 수사는 원전 조기 폐쇄를 추진한 청와대 참모진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거쳐 경우에 따라서는 문 대통령의 관여 여부까지도 확인이 필요한 상황으로 갈 수도 있을 만큼 폭발력이 큰 것이다.
연초 공익신고에 의해 촉발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에도 법무부와 검찰 고위 간부들은 물론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 연루설까지 불거져 검찰을 향한 여권의 불만은 더 커지는 상황이었다.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기소를 앞두고 있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도 청와대를 향해 현재 진행형이다.
여당이 지금 검찰의 직접 수사권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여권 내 강경파의 득세를 드러내준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을 기소와 공소유지 전담기관으로 바꾸는 내용의 중대범죄수사청 설립 법안을 이달 발의해 6월 통과시킬 계획을 최근 밝혔다. 이는 검찰의 수사 기능 자체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어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물론 검사의 수사 활동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신 수석이 사의 표명 이후에도 출근은 하면서 자리를 지킨 것은 사직을 만류한 문 대통령과의 인간적인 관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 현안에서 문 대통령이 자신의 뜻을 받아주지 않은 것을 확인한 신 수석이 사의를 거둘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법조계에서는 보고 있다.
18일 아침 청와대로 출근한 신 수석은 18, 19일 이틀간 휴가를 냈다. 내주 월요일 출근할 예정인 신 수석의 사의 파문을 봉합하기 위한 여권의 설득작업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결과가 주목된다. 신 수석이 월요일 출근 때까지도 사직 의사를 굽히지 않을 경우에는 문 대통령도 사표를 수리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파문이 장기화될 경우 임기 말 국정 혼란으로 비춰질 수 있고 자칫 ‘레임덕’ 조짐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신 수석이 마음을 돌리지 않고 후임 인선에서 비검찰 출신의 민정수석이 임명되면 검찰을 향한 여권의 강공 드라이브가 더 거세지면서 검찰 개혁을 놓고 정권과 검찰 간의 ‘강 대 강’ 충돌이 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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