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낙방했지만..조선 선비가 남긴 오키나와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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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 구글 지도가 알려준 서울에서 제주까지의 거리입니다.
지금이야 하늘길로 1시간 정도면 날아갈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옛날 같으면 짚신 발로 수백 리 고갯길을 걷고 또 걸은 뒤, 배를 타고 거친 파도를 넘어야만 닿을 수 있는 까마득한 곳이었을 겁니다.
제주시는 지난해 12월 '안거리'(안채, 57㎡)와 '밖거리'(바깥채, 39㎡)로 구성된 초가 신축을 마쳤고, 최근 내부 전시물 설치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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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 구글 지도가 알려준 서울에서 제주까지의 거리입니다.
지금이야 하늘길로 1시간 정도면 날아갈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옛날 같으면 짚신 발로 수백 리 고갯길을 걷고 또 걸은 뒤, 배를 타고 거친 파도를 넘어야만 닿을 수 있는 까마득한 곳이었을 겁니다.
조선 후기 영조 때 제주도 애월에 살던 선비 장한철(張漢喆, 1744~?)도 스물다섯이 되던 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짐을 꾸렸습니다.
글공부를 좋아해 향시(鄕試, 조선 시대 각 도에서 실시하던 초시)에 몇 차례 합격한 적이 있었던 그였습니다. 특히 1770년(영조 46) 10월, 향시에 수석 합격한 그는 마을 어른들과 관청에서 여비를 보태주어 같은 해 12월, 한양으로 시험을 치러 가게 됩니다.
■ 과거보러 가다가 풍랑 만나 오키나와 표류한 제주도 선비
배에 오를 때만 해도 무사히 육지에 닿아 과거 시험을 칠 생각에 부풀어 있었을 테지만, 그가 탔던
장삿배는 뜻하지 않게도 풍랑을 만나,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게 됩니다.
남쪽 먼바다로 떠내려가던 배는 류큐제도(지금의 일본 오키나와)의 한 무인도에 닿았습니다.
이곳에서 왜구의 습격을 받아 고생한 일행은 이듬해 1월, 일본으로 향하던 안남(安南, 지금의 베트남) 상선을 얻어 타면서 겨우 류큐를 벗어났지만, 또다시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하게 됩니다.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긴 끝에 남해의 청산도(靑山島)로 돌아왔을 때, 20여 명이었던 일행은 10여 명으로 줄어 있었습니다.
장한철은 이후 어렵게 한양으로 다시 과거 길에 올랐지만 안타깝게도 낙방하고, 1771년(영조 47) 5월 초에 고향인 제주로 돌아왔습니다.
과거는 떨어졌지만, 그는 이때의 표류 경험을 <표해록(漂海錄)>이라는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 구사일생 순간에도 쉬지 않은 기록…"역사·해양지리서로서 문헌적 가치 높아"
풍랑을 만나 표류하던 순간에도 장한철은 항시 글을 썼습니다.
과거를 보러 제주를 떠나, 폭풍우에 류큐제도의 무인도에서 표류 생활을 하면서도 <표해일록(漂海日錄)>이라는 이름으로 세세히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를 토대로 기억을 더듬고 보충해 쓴 것이 그가 고향 제주로 돌아와 저술한 <표해록>입니다.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된 이 책은 표류 당시의 상황과 류큐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담고 있는 역사적 문헌입니다. 이 책은 특히 뛰어난 해양지리서라는 평가를 받는데, 그가 표류한 경로를 따라 해로와 물의 흐름, 계절풍의 변화 등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제주도의 삼성(三姓) 신화에 관한 이야기, 백록담과 설문대 할망의 전설, 류큐 태자에 관한 전설 등이 풍부하게 실려 있어 설화집으로서의 가치도 높습니다.
■ 한담해변 인근에 장한철 생가 복원…제주시 "다음 달 일반인에 공개"
장한철의 삶과 <표해록>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다음 달 문을 열 예정입니다.
제주시는 총 사업비 6억 8천만 원을 들인 장한철 생가 복원 사업을 마무리하고, 다음 달 중 일반인에게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제주시는 지난해 12월 '안거리'(안채, 57㎡)와 '밖거리'(바깥채, 39㎡)로 구성된 초가 신축을 마쳤고, 최근 내부 전시물 설치를 마쳤습니다.
장한철 생가 내부에는 표해록을 애니메이션 등 디지털 방식으로 전시해, 관람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또 구들과 정지(부엌)에 책장과 불을 지피는 곳인 굴묵 등도 재현해, 관람객들이 옛 생활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했습니다.
제주시는 이번 복원 사업을 통해 지역 문화를 보존하고, 장한철 생가터가 지역 명소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반짝이는 한담해변 주변은 풍광도 빼어나니, 역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 번 들러보시는 게 어떨까요.
민소영 기자 (missionali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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