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냐 배움이냐'.. 淸을 향한 조선의 이중적 시선 '호렵도'

강구열 2021. 2. 1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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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매 통해 '호렵도 팔폭병풍' 환수
"알려진 호렵도 중 예술성 가장 뛰어나"
청 문물 수입 증거지만 '오랑캐' 그림이라 비하
김홍도 화풍 적용해 조선화된 방식으로 표현

‘야만’이라 여겼던 만주족의 수장에게 ‘신하의 예’로 항복한 삼전도의 굴욕(1637년) 이후 조선에게 청나라는 복수와 극복의 대상이었다. 청나라를 정벌하자는 ‘북벌론’은 현실성이 없었으나 오랫동안 조선 지배층의 목표였다. 

그러나 강희·옹정·건륭 세 황제의 치세(1661∼1796)에 최전성기를 맞은 청나라를 배척의 대상으로 둘 수는 없었다. 적개심을 털어낼 수는 없었으나 문물을 배우고, 수용해야 할 필요는 있었고, 그렇게 ‘북학’이 시작됐다.   

청나라를 향한 조선의 이런 이중적 시선을 잘 보여주는 것이 ‘호렵도’(胡獵圖)다. 사대의 예를 갖췄던 청 황제의 사냥 모습을 그리면서도 굳이 오랑캐를 의미하는 ‘胡’(호)자를 붙여 부른 것에서 읽을 수 있는 태도다. 
지난해 미국 경매에서 구입해 환수한 ‘호렵도 팔폭병풍’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해 9월 미국 경매에서 구입해 환수한 ‘호렵도 팔폭병풍’은 이런 사실을 알고 보면 흥미롭다. “산수의 표현과 화면 구성이 탁월하며 인물과 동물의 묘사가 생동감 있고 매우 정교하여 호렵도 중에서도 수작”이란 평가를 받는다. 호렵도 병풍은 18일부터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된다. 

◆황제의 사냥 그림을 ‘오랑캐 그림’이란 비하한 이유

조선에서 수입의 대상이 된 청나라의 사냥 그림은 황제가 매년 가을 목란위장(木蘭圍場)에서 왕족, 신하들을 데리고 벌인 대규모 사냥을 그린 기록화적인 성격을 가진다. 사냥에 특히 적극적이었던 게 건륭제다. 그는 재위 59년 동안 40번이나 목란위장을 찾았다고 하고 11명의 궁정화가를 동원해 가장 크면서도 세밀한 ‘목란도’를 그리게 했다. 

황제의 정기적인 사냥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군사훈련의 성격이 짙었다. 특히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소수민족이어서 인구가 많고 문화수준이 높은 한족, 변방을 위협하는 몽골족 등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상시적이고 강력한 무력이 필수였다. 사냥은 실전과 가정한 훈련이었다.  

18세기 들어 조선은 청나라와의 교류를 늘리면서 다양한 문화를 수입했고, 사냥 그림도 그 중 하나였다. 정조대(1776~1800)에 호렵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는 건 군사력 강화를 강력하게 추진한 국정운영 기조를 반영한 것기도 했다. 

호렵도 중 황제의 행렬 장면
호렵도 중 무상무예를 보여주는 사냥 장면
흥미로운 대목은 이런 그림을 ‘오랑캐의 사냥 그림’이란 의미의 호렵도라고 부르며 청나라를 향한 여전한 적개심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각 작품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호렵도는 대개 사냥에 나서는 황제의 행렬, 사냥, 사냥 후 포획물을 바치는 장면으로 구성되는데, 그림의 내용에서는 이런 태도를 읽을 수 없다. 환수된 호렵도 병풍을 살펴본 경주대 정병모 초빙교수는 “병자호란 당시 호되게 당했던 만주족의 마상무예가 표현되어 있다는 점 등에서 청나라의 문물을 배우려는 의지가 보인다”며 “황제의 행렬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해 청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의식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런 그림을 굳이 호렵도라고 낮춰 부른 것은 청나라를 향한 이중적 시선을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김홍도 화풍으로 조선화시킨 호렵도

김홍도 화풍으로 표현된 호렵도의 산수
수입된 화제(畫題)이기는 했으나 조선은 호렵도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했다. 김홍도의 화풍으로 그린 산수(山水)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김홍도는 호렵도를 처음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작품은 전하지 않는다. 정 교수는 호렵도 병풍을 김홍도의 ‘서원아집도’, ‘행려풍속도’ 등과 비교하며 “김홍도에게서 영향을 받은 궁중화원의 작품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기존의 호렵도 중에도 김홍도의 영향을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호렵도 8폭 병풍이 그것이다. 리움 소장품은 환수된 호렵도 병풍과 비슷하게 황제의 행렬을 중심에 두고 사냥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배경인 산은 “금강산 사군첩에 보이는 토산, 암산의 표현법과 유사하고 구부러지고 비틀린 잡목은 단원의 화법에서 많은 보이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사진=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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