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의 '탄소 배출 없는 핵발전론'에 대한 반론
기후위기 대응에 핵발전은 함께 할 수 없어
'위험-혜택' 아닌 '비용-효과' 측면만으로도 불필요
지난 10년 발전비 태양광 89%↓ vs 원자력 26%↑
패러다임 다른 핵발전-재생에너지 공존할 수 없어
화석 에너지의 종말은 화석 연료의 고갈이 아니라, 화석 연료를 연소시킨 결과로 일어나는 기후위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화석연료 에너지원을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핵발전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핵발전은 핵재앙, 핵폐기물, 핵확산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위험을 뒤로 감춘다면 핵발전도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모든 걸 다하자(do everything)'에 포함될 수 있다.
자동차 사고로 많은 사람이 사망한다 해도 사회적 탄성력은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핵발전 사고가 일어나면 그 뒤 수습에 그동안 핵발전으로 인한 모든 편익을 능가하는 피해가 발생한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 이후 그 지역은 회복 불가능하게 되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처리 비용이 2018년까지 236조원에 달했다. 그 비용으로도 해결하지 못해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내다 버리겠다고 한다. 게다가 비용 대부분은 핵발전 회사가 아니라 세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우리 국토는 회복 불가능의 영역으로 둬도 될 정도로 여유롭지 않다. 핵발전 상위 10개국 가운데 인구밀도는 우리나라가 가장 높다. 핵발전 주변 지역 인구가 많고 원자로가 조밀하게, 그것도 한 부지에 많이 몰려 있다. 고리 핵발전소 반경 30㎞ 이내에 300만명 이상이 살고 있다.
인간이 제한 없는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면 세상에 무슨 문제라는 게 있기나 하겠는가? 핵발전 사고에 유능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정부는 없다. 일본 동북부 지진과 그에 따른 핵발전 사고는 가장 치밀하게 구축된 일본의 안전망 역시 무력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핵발전 위험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지만, 안전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사고뿐만이 아니다. 원자로에서 수만년 동안 방사능을 가진 폐기물이 나온다. 우리 세대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미래 세대의 장기적 이익을 내다 버리는 것이다. 핵발전은 세대간 착취라는 점에서 더욱더 문제가 크다.
우리는 내일의 위험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늘 당장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현재의 전력 공급 체계에서 핵발전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그러해야 할 근거는 없다. 핵발전은 미봉책일 뿐이며 대체 불가능하지도 않다. 이제 핵발전은 '위험과 혜택' 수준뿐만이 아니라 '비용과 효과' 측면에서도 더 가능하지 않다. 핵발전이 시장에서 무너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석탄 발전이 가장 저렴했기 때문에 공급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전력 비용은 기술 혁신뿐만이 아니라 연료 비용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석탄 발전은 기술 효율성을 향상할 여지가 거의 없고 연료인 석탄은 총 발전 비용의 약 40%를 차지한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석탄 발전 비용은 지난 10년 동안 2%만 하락했다. 두번째로 큰 가스 발전은 그 비용이 지난 10년 동안 30% 이상 더 싸졌다. 이는ᅠ파쇄공법 개발로 셰일 가스 공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핵발전 비용은 지난 10년간 26% 올랐다.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예전에 고려하지 않았던 위험을 막아야 하는 비용이 증가하고 최근 세계적으로 핵발전소 수요가 적어져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그의 책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핵발전은 하루 24시간 지속해서 공급할 수 있는 탄소 배출이 없는 유일한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데 이상적이다”라고 주장한다. 재생에너지는 태양이 빛나고 바람이 부는 조건에 의존하여 간헐적으로 생산되므로 핵발전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저 부하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2020년 영국 서섹스대학의 벤저민 소바쿨과 연구원들은 <네이처 에너지> 논문에서 재생에너지와 핵발전의 탄소 감축 효과를 분석했다. 재생에너지와 핵발전의 관계는 서로 배타적이고 경쟁적이어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밀어낸다. 정부가 저탄소 에너지 예산을 핵발전에 투입하면 재생 에너지 기술에 투자할 자금이 그만큼 줄어든다. 이런 관계는 핵과 재생에너지가 공존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를 무너뜨리고, 핵발전 확대가 오히려 재생에너지 활성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재생에너지가 전체 전력의 10% 정도를 넘으면 지속적인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진다고 했다. 2020년 유럽연합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38%에 달해도 전력 공급이 안정적이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리드 기술의 혁신과 그 기술을 실현하는 배터리 가격의 하락 때문이다. 배터리 가격은 지난 10년 동안 약 80% 이상 하락했다. 재생에너지 100%(RE100)를 향한 기술혁신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비용은 각각 89%와 70% 떨어졌다. 재생에너지에 기술혁신이 집중되고 이와 함께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020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태양광 발전이 가장 저렴한 전기 공급원이라고 선언했다. 그동안 재생에너지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나라는 정부 보조금을 줄이거나 심지어 없애도 재생에너지가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2019년 전 세계 신규 전력 중 태양광과 풍력이 72%를 차지하였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출력 조절이 되지 않아 유연성이 떨어지는 핵발전은 에너지 체계의 걸림돌이 된다.
세계 전력 시장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다. 일본의 미쓰비시가 터키와 베트남에서, 히타치와 도시바가 영국에서 이미 수주한 핵발전소 사업을 포기했다. 계속 진행할수록 더 큰 손실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19년 이후 3년 동안 재생에너지를 45GW 증가시키는 반면 핵과 석탄 발전은 24GW 줄일 예정이다. 2020년 유럽연합(EU)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위한 ‘그린딜‘ 전략을 수립했는데 여기에 핵발전을ᅠ제외한다고ᅠ명시했다.
빌 게이츠는 그의 회사인 테라파워(TerraPower)를 통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소형 차세대 원자로를 설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2019년 1056억달러 자산을 가지고 있는 빌 게이츠조차도 막대한 납세자 자금 없이는 그 핵발전소를 건설할 수 없는가 보다. 빌 게이츠는 테라파워가 설계한 원자로 기술을 시범 운영하기 위해 앞으로 10년 동안 수십억달러를 지원하도록 의회를 설득하려 했다.
우리나라 보수 언론이 주장하듯 핵발전이 그토록 엄청난 이익이 나는 노다지 시장이라면 왜 기업과 개인 투자만으로 해외 진출을 하지 못하는가? 핵발전은 엄청난 정책 지원과 막대한 세금 지원으로만 건설된다. 이익이 난다면 소수가 차지하고 손실이나 피해가 발생한다면 시민 모두가 감당해야 한다.
핵발전 수출 시장이 수백조원이라는 주장도 실제가 아닌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주요 선진국 대부분은 현재 가동 중인 핵발전소 수명이 다하면 새로 짓지 않고 퇴진시킬 예정이다. 중국은 2018년 재생에너지에 910억달러를 투자했지만 원자력에는 65억달러를 투자했다. 중국, 러시아, 동유럽과 중동을 제외하곤 새로운 핵발전소 투자를 계획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세계 시장의 중심부에 있는 우리나라가 이들 나라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뒤떨어진 재생에너지 후진국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유럽 주요 국가는 40%를 넘어가고 있고 중국과 일본은 20%를 넘고 트럼프 대통령 시절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던 미국조차도 20%에 도달하려는 반면 우리나라는 6%에 머물고 있다.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세계 인구 3분의 2가 사는 지역에서 태양광과 풍력이 가장 싼 신규 발전인 데 반하여 우리나라는 세계 기준에서 재생에너지보다 비싼 석탄 발전 비용이 가장 싸다.
우리나라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재생에너지 전환을 해야 한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대기업들은 자신들에게 납품하는 기업들에 100% 재생에너지로 만든 상품을 요구하려 한다. 이 재생에너지에는 핵발전이 포함되지 않는다. 핵발전은 저탄소 에너지이긴 해도 핵폐기물을 쏟아내 재생에너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바이든 새 정부는 화석 연료를 사용하여 생산된 상품에 탄소 국경세 부과를 준비 중이다. 선진국들은 앞선 재생에너지 기술력으로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 대한민국은 핵과 석탄 발전을 붙들고 있다가 세계 시장에서 걷어차기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가장 큰 야당과 여러 언론은 우리나라가 재생에너지를 할 자연 여건이 안된다고 한다. 태양광은 위도가 낮을수록 유리한데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의 나라 독일보다도 위도가 무려 15도나 낮다. 우리나라는 풍력이 북유럽처럼 풍부하지는 않지만, 상공에 제트기류가 흐르기 때문에 작다고 볼 수 없다. 보존해야 하는 농지와 산지가 아니어도 건물, 고속도로와 철도 주변, 주차장, 댐, 저수지와 대륙붕 등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할 곳이 우리 국토에 널려 있다.
우리 사회가 어떤 에너지를 사용할 것인가는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핵발전은 원자핵을 분열시켜서, 그리고 화석 연료는 분자를 태워서 에너지를 발생시키므로 이들 에너지는 특정 장소에서 전력으로 만들어 도시와 산업 지역으로 전달한다. 태양과 바람은 원자핵과 화석 연료에 비해 에너지 농축이 적어 수많은 지역에서 에너지를 모아 배전망을 통해 분배한다. 하지만 이런 비효율성과 제약이 오히려 실질적인 이점이 된다. 곧 핵과 석탄 발전은 소수가 지배하는 중앙집권적인 에너지 체계지만, 재생에너지는 분산적이므로 시민이 지배할 수 있는 분권적인 체계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정책이 수립된다면, 재생에너지는 소수가 지배하는 에너지 독점을 무너뜨려 우리 공동체를 바로잡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물질적으로 유한한 지구에서 더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달성될 수 없다. 이미 인간이 만든 세상은 지구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핵발전은 에너지 소비의 지속적인 성장을 전제로 한다. 태양과 바람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세상을 만들어야 인류는 지구에서 지속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에너지 결핍이 있다면 ‘성장’이 아니라 정의로운 분배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 없었던 ‘성숙’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과학혁명의 구조>의 저자 토머스 쿤은 “과학은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발전하며 이는 개종에 비유된다”라고 했다. 개종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념을 완전히 바꾸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패러다임 전환은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총체적인 과정이다. 일부만 받아들이고, 일부는 받아들이지 않는 식의 취사선택은 허용되지 않는다. 천동설과 지동설이 함께 수용될 수 없다. 그러므로 쿤은 ‘과학의 역사는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커다란 건물 하나를 짓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옛 건물을 어느날 포크레인으로 밀어버리고 그 옆에 새 건물을 짓는 과정이다‘라고 했다.
마찬가지다. 핵발전과 재생에너지는 그 패러다임이 다르므로 두 가지 모두를 선택할 수 없다. 과거의 방식을 지속하느냐, 미래의 지속 가능으로 전환하느냐의 패러다임 경쟁이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 cch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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