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조금 떨어져 살아도 좋잖아요 ③ 작은 오두막, 큰 열망
(함평=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미국 NBC가 1974년 제작한 드라마 '초원의 집'은 미국의 작가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수기를 드라마화한 것으로 개척시대 초원에 외딴집을 짓고 사는 가족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이후 MBC가 방영하면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미드'였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고 싶은 희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외국의 오두막
핀란드에서 태어난 세계적 건축가 알바 알토가 설계한 헬싱키의 '아카데미아 서점'은 유명한 여행 목적지 가운데 하나다.
수년 전 그곳을 갔다가 캐빈 폰(Cabin Porn)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오두막(Cabin)과 포르노(Pornography)를 합친 제목으로, 도시를 떠나 전원생활을 꿈꾸는 현대인의 욕망을 담았다.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의 오두막들을 소개한 내용에 매료돼 한 권 집어 들고 나왔다. 몇 년 후 한국에서도 책이 번역돼 출간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작은 오두막에 대한 열망이 한국에서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후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옆의 한 캠핑장에서 오두막에 투숙한 적이 있다.
울창한 숲 아래 자리 잡은 작은 목재 삼각형 오두막은 책에서 본 것처럼 우아하고 멋졌다.
내부로 들어서니 가운데 통로를 두고 양쪽에 싱글베드가 놓여있고 새하얀 침대보가 깔려 있었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럽고 우아한 느낌이 들었다.
그 앞에는 나무로 된 욕조가 있어 야외 온천을 즐길 수 있게 돼 있다. 땔감으로 불을 때 물을 데우는 형태의 욕조다.
다음 날 아침에는 막 짜낸 듯한 신선한 우유와 갓 구운 빵 등이 조식으로 제공돼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한국의 오두막
한국에서도 전남 함평에 비슷한 형태의 오두막을 제조하는 곳이 있음을 알게 됐다.
약속을 잡았지만, 폭설로 한번 미뤘다가 스노타이어로 교체한 뒤 다시 제조업체인 '마룸'으로 향했다.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눈발이 막 날리기 시작했다. 현장에는 다양한 형태의 작은 오두막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슬로베니아에서 봤던 형태의 삼각형 오두막은 더블베드가 깔린 것만 빼고는 거의 흡사했다.
마룸의 이상철 대표는 특이하게도 여러 형태의 농막을 마치 자신의 집처럼 나눠 쓰고 있었다.
대표적인 농막 형태가 대여섯 종류쯤 돼 보이는데 그중 2곳은 사무실이었다. 사각형의 오두막은 깔끔하고 사무적인 장소에 잘 어울릴 듯했다.
평소 자주 보던 컨테이너 형태지만, 컨테이너보다 훨씬 세련됐다. 컨테이너를 재활용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 제작한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수년간에 걸쳐 컨테이너를 활용해 오두막을 만들어봤지만 결국 장기 거주에 맞지 않다고 판단해 처음부터 새로 설계하게 됐다고 말했다.
홍천에서 봤던 소샛별 씨의 나무집과 같은 오두막은 살림집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소씨의 집과는 디자인이 약간 달랐다. 디자인은 원하는 대로 주문이 가능하다고 했다.
공장 내부에서는 다양한 오두막들이 제조되고 있었다.
한가지 인상적인 것은 오두막 하나에도 수많은 사람이 달라붙어 제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인건비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기록적인 한파로 남쪽 지방인데도 수은주가 영하 12도로 곤두박질쳤지만, 실내는 따스함을 유지했다.
작은 히터 하나만을 켰을 뿐인데 전혀 춥지 않았다. 단열이 잘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유리창이었다. 결로가 일어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보통 이 정도 기온 차라면 창문에 물이 줄줄 흐르거나 성에가 끼기 마련이다.
이 대표에게 단열 효과가 좋은 '로이유리'를 썼는지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한다.
이 대표는 누구나 큰 집에 관심이 있지만, 작은 집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10년 이상 작은집만을 고집하며 제작해 오고 있다. 이 업체는 주문이 6개월이 밀려 있다고 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오두막을 농막으로 설치하는 케이스도 늘고 있다.
농막, 한국식 오두막
한국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오두막을 접할 방법은 농막(農幕)이라 할 수 있다. 농막은 관련 규정이 복잡한 국내에서 오두막에 대한 열망이 표출된 형태다.
원래 농막은 밭이나 논 등 농지를 가진 농업인이 농기계를 보관하거나 잠시 쉴 수 있는 창고의 개념이다. 정식 주택이 아닌 '가설물'로, 해당 읍면 사무소에 가설건축물축조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5일은 도시에서 일하고 주말은 시골에서 보내는 '5도 2촌'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농막은 도시민들이 잠시나마 시골 생활을 접하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 농막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고려해야 할까. 면적이 20㎡ 미만의 건축물이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면적이 넘어가면 신고가 반려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나무데크나 지붕도 면적에 포함된다.
가볍게 생각해서 나무데크나 지붕 등을 넓게 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홍천 소씨의 경우 이 때문에 데크를 설치하지 않고, 평상을 주문해 폴딩도어 옆에 뒀다.
특히 컨테이너의 경우 규격이 정해져 있지만 주택 형태로 제조하면 면적이 넘어가는 경우가 잦다.
전기와 수도 등은 기본적으로 들여올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정화조 설치 문제다. 화장실 사용을 위한 정화조 설치와 관련된 조례가 지역마다 다르므로 특히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반드시 해당 관청 환경과에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천 옹진군의 경우 농막에 정화조 설치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강원도 영월군이나 경기도 양평군의 경우 정화조 설치에 문제가 없다.
예전에는 정화조 설치에 난색을 표하는 지자체가 많았으나, 이를 막으면 오물이 그대로 도랑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정화조 설치를 허용해 환경오염을 막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곳이 늘고 있다.
참고로 정화조와 농막 설치를 위해 땅에 콘크리트를 타설하면 안 된다. 기본적으로 농지이기 때문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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