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났습니다]①"기부 세제혜택 늘려 '제2의 김범수' 유도해야"

이정훈 2021. 2. 18.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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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 이끄는 유원식 회장
"세제혜택 없는 韓서 나온 김범수의 기부, 용기있는 행동"
"세제혜택 늘려 기부 활성화해야..유산기부 지원도 필요"
"부활절 맞아 교회·구청·경찰이 함께 취약아동 지원 추진"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우리처럼 고액 자산가의 기부에 대해 세제 혜택이 없는 나라에서 거액의 기부를 결심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대단하고 용기있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부자들이 더 늘어날 수 있도록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고액 기부에 대한 각종 세제 지원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유원식 기아대책 회장

32년 역사를 가진 국내 최초 국제구호개발단체이자 국내 대표 비영리단체(NGO) 중 하나인 희망친구 기아대책을 이끌고 있는 유원식 회장은 17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김범수 의장의 결단이 많은 고액 자산가들의 나눔을 위한 물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기부 활성화를 위한 정부 역할을 강조했다.

실제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의 세계나눔지수(World Giving Index)에서 2009∼2018년 10년 누적으로 한국은 34%를 기록해 126개국 중 38위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21위였다. 특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부 비율은 0.81%로 미국(2.08%)의 3분의1에 불과했다. 이는 기부액의 15%를 세액공제하는 우리의 빡빡한 세제 지원도 한몫하고 있다. 미국은 소득금액의 50% 한도 내에서 기부금을 소득공제하고 있고, 영국은 기부액의 20~45%를 소득공제하고 있다. 일본도 2000엔 초과시 소득의 40% 내에서 소득공제를 한다.

유 회장은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 마다 보편 지원이냐 선별 지원이냐를 놓고 갈등이 많은데, 정부가 모든 지원을 다 할 순 없다”며 “정부 지원에는 늘 사각지대가 생기기 마련이며 이런 사각지대를 잘 메울 수 있는 게 NGO들인 만큼 NGO에게 이런 사업을 위탁하는 한편 개인들이 더 많은 기부를 할 수 있도록 각종 세제 지원을 고민하는 편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제언했다.

다음은 유원식 기아대책 회장과의 일문일답.

-작년 한 해 기아대책의 사업을 정리한다면

△작년은 아무도 예측 못했던 불확실성의 시기였다. 우리도 한 해를 시작하며 다양한 구호계획과 개발계획을 세웠는데도 2월부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긴급구호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예측 못했던 새로운 일들이 많이 생겼고 그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모금과 사업도 그 방향으로 바꾼 것이다. 국내에선 코로나19 초기에 방역복과 마스크 등이 부족했던 탓에 대구·경북지역을 시작으로 구호물품들을 의료진과 취약계층에게 전달했다. 그 이후에는 긴급생계지원에 나섰다. 2만2000가구에 생필품을 지원하고 이후 아동 학습문제로 눈을 돌렸다. 학교에 가지 못하면서 생긴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350가구에 학습돌봄을 지원했고 심리정서 회복프로그램까지 순차적으로 진행했다. 해외에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저(低)개발국에서 먹고 사는 문제가 생겼다. 예산을 확대해 긴급구호예산을 전년대비 370% 정도 확대했고 해외에 있는 기대봉사단이 긴급구호 활동도 했다. 45개국에서 총 97만3000명에게 65억원 정도를 지원했다.

-코로나19 이후 기업 후원이 줄어 NGO 모금에서도 양극화가 나타났다고 하는데.

△코로나19에도 개인 후원은 오히려 늘어났다. 특히 고액 후원자들이 지갑을 더 많이 열었다. 우리에겐 나눔에 대한 DNA가 있는 듯하다. 기아대책도 모금 총액이 오히려 더 늘어났다. 다만 개인 후원 비율이 늘어난 반면 기업 후원은 줄었다. 기업들이 어려움이 컸다. 물론 당장 돈이 없어서 후원을 줄였다기보단 향후 불확실성에 일단 보류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또 기업 사회공헌은 주로 대면 형식으로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이 어렵다보니 이 쪽 예산을 축소한 경우도 있다. 이렇다 보니 대형 NGO들은 대부분 모금액은 줄지 않았는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곳들이 모금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결국 NGO도 사업을 하려면 모금이 늘어나야 하는데

△기업들은 주로 기부나 후원도 연간 계획을 세우는데, 올해에도 팬데믹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다보니 작년 수준 정도일 것으로 본다. 작년보다 더 줄진 않겠지만 늘지도 않을 것이다. 대신 개인들 중 고액 후원자 그룹이 후원에 굉장히 큰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필란트로피 클럽이라고 해서 5년간 1억원 이상 후원하는 분들을 모시는데, 총 모금액 중 이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올해에도 이들은 작년보다 더 후원하고자 하는 의향을 보이고 있다. 일반 개인은 후원자 수는 늘지만 금액은 늘지 않을 것 같다. 이를 감안해서 올해엔 작년 총 모금액에서 5% 정도를 늘리는 걸 목표로 세웠다. 긴급구호를 중심으로 국내외에서의 사업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올해 집중하고자 하는 사업은 어떤 것들인가

△국내에서는 위기가정 긴급지원사업을 우선으로 하며 결식아동과 무연고 아동에 대한 지원을 하고자 한다. 그 다음으로 올해에는 특히 보호종료아동들에 대한 사업을 준비 중이다.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는 18세가 되면 이 곳을 떠나야 하는데, 고작 몇 백만원만 들고 나와서 사회에 적응해서 살기엔 어려움이 너무 크다. 정부가 18세까지는 지원하지만 그 이후에 세상에 나오면 지원이 끊기는 셈이다. 선진국에서는 25세까지 지원하는 만큼 우리도 이들에 대한 지원을 더 연장할 수 있고, 그게 아니라면 민간단체가 지원해야 한다. 올해 우리가 이 일에 집중하고자 한다. 해외에서는 역시 긴급구호 중심으로 가야하는데, 먹는 문제가 가장 큰 만큼 WFP(유엔세계식량기구)와 연계해 이 사업에 집중하고자 한다. 추가적으로 취약계층 가정 청년 창업을 위한 마이크로 크레딧도 고민 중이다. 무이자로 빌려주고 상환하도록 하는 것이다. 못 받는 경우가 있어도 그런 사업을 시도해 보자고 해서 검토하고 있다.

-최근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기부가 화제다.

△우리는 흔히 `우리 부자들은 왜 빌 게이츠처럼 기부를 못하느냐`고 얘기하지만, 선진국과 1대1 비교는 적절치 않다. 미국만 해도 거액 기부자들에 대해 굉장히 세제 혜택이 많다. 고액 자산가들은 자신이 돈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재단에 기부해서 운영하는 것이 혜택이 더 크다. 그렇다 보니 기부를 안하는 게 이상할 정도다. 반면 우리는 그런 혜택이 없는데도 김 의장이 거액 기부라는 결단을 한 것은 대단한 것이고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이를 표본으로 해서 많은 자산가들이 나눔의 물꼬를 터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 역할이 클 것 같다.

△부자들이 이런 결단을 더 적극적으로 해서 기부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선진국 수준으로 세제 혜택을 높여줘야 한다. 민간에서 나눔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니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세제 문제를 깊이 고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현 정부가 복지에 대해서 그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도 사각지대는 여전히 많다. 정부가 다 할 수 없는 것이며 민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따로 있다. 부자들이 더 쉽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세제로 어느 정도까지는 지원해야 한다. 몇 년 전 한 기업 오너가 구호단체에 수백억원을 기부했는데 세금이 200억원이 넘었다는 뉴스가 나온 적 있었다. 이래선 안된다. 정부 측에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고액 후원자들이 지갑을 열 만큼의 지원은 없는 상황이다. 특히 기아대책은 유산기부에 대해 관심이 높은데 이미 20명이 우리에게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 역시 세제 지원이 문제다. 영국에서는 `레거시10`이라고 해서 재산 10%를 기부하면 상속세 등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 이를 샘플링해서 우리도 많은 이들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도록 도왔으면 좋겠다.

-재난지원금을 주면서 보편 지원이냐 선별 지급이냐를 두고 늘 다툼이 많다.

△선별 지원을 하면 늘 사각지대가 생기게 되고, 보편 지원을 하면 재정 부담이 크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기 어렵다. 이 때 생기는 선별 지원에서의 사각지대 문제는 구호단체들이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정부와 민간이 협업해서 복지문제를 해결해야만 완전체가 될 수 있다. 일단 정부가 후원자를 독려하기 위해 세제 지원에 나서야 한다. 또 어디가 사각지대인지를 정부보다 NGO들이 더 잘 아는 만큼 NGO를 활용해 사업을 하고자 해야 한다. 우리는 다문화가정이나 돌봄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아동 등을 더 잘 찾을 수 있다. 일례로, 원격수업을 들으려 해도 노트북이나 태블릿PC가 없어서 수업을 못 듣는 취약계층 아동들을 정부보다 우리가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정부가 IT기기를 제공해주면 우리가 직접 취약아동에게 이를 지원할 수 있다. 결국 정부는 선별 지원에 초점을 맞추되 그로부터 생기는 사각지대는 NGO들에게 위탁하면 된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아동 학대 이슈가 큰 화두였다. NGO의 역할은 없을까

△이런 사회적 병리 현상을 접하면서 참 안타깝다고 느꼈다. 사실 우리가 그동안 성장위주로만 너무 빨리 달려오다 보니 인간으로서의 품성이나 세대 간 이해 등에서 제대로 갖춰야할 부분들을 소홀히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 점에서 많은 분들이 나눔을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 배워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눔을 경험하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실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한 번이라도 나눔을 실천해 본 인구 비율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2013년에 34.6%였던 그 비율이 2019년에는 25%까지 내려왔다. 우리가 좀더 성숙한 국가가 되려면 기부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본다. 기아대책의 경우에도 이번 부활절을 맞아 희망상자 프로젝트라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해당 지역 교회연합회와 구청, 경찰서가 하나가 돼 취약계층 아동에게 10만원 짜리 후원물품을 제공하는 사업인데, 재원은 기아대책과 교회들이 마련하고 이를 전달하면서 아동을 살피는 일을 구청과 경찰서가 하는 것이다. 현재 서울 내 자치구 25곳을 비롯해 전국 150곳이나 되는 자치구에서 이를 하려고 한다.

이정훈 (future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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