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대책보다 중요한 건 혁신 통한 노동생산성 향상
[이코노미조선]
인구절벽 속 숨은 기회를 찾아라
지난해 전후(戰後) 처음으로 ‘데드크로스(출생자가 사망자보다 적어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상황)’가 발생했다. 작년 한국 주민등록인구는 5182만9023명으로 1년 새 2만838명(2.1%) 줄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최근 3기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저출산 문제 해결을 다짐하고 있다. 인구 감소는 정말 한국 경제를 망가뜨릴 악재일 뿐일까. 전문가들은 앞으로 중요한 것은 경제개혁과 구조조정, 그리고 이미 인구 하향 압력 속에서도 다른 각도에서 새로운 성장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을 찾는 노력이라고 조언한다. 그래야 인구감소→경제 성장 위축→고용악화→저출산→인구감소라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조선’은 이번 커버 스토리에서 인구절벽을 상수로 인정하고, 인구 구조 변화 속에서 돈을 버는 산업과 사람들을 살펴보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었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 첫 데드크로스 발생
해외 사례와 신흥산업 참고해
새로운 성장 방안 고민할 시점
"이 자리에서 아동복 장사 시작한 지 20년인데 최근 가장 힘듭니다. 근처 아동복 가게는 올해 3월까지만 영업한다고 하더군요." 1월 31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서 아동복 전문 C 브랜드 영업점을 운영하는 김윤조(53)씨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수년째 이 지역에 이어져 온 출산율 저하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2020년 연 매출이 전년 대비 70% 이상 감소했다"라며 "장사를 시작한 후 가장 안 좋은 상황"이라고 했다. 연천군 연간 출생자는 2016년 403명에서 2019년 275명으로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이코노미조선’이 이날 돌아본 연천군청과 전곡 시외버스터미널 등 연천군의 요지에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연천군청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기린(가명)씨는 "연천군은 휴가 나온 인근 군부대 군인들을 빼면 젊은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은 곳"이라며 "코로나19 사태로 휴가가 막히자 지역 경기가 완전히 죽었다"라고 했다.
같은 날 오후 경기도 동두천시 상패동 559번지. 이곳은 2022년 국가산업단지 예정 부지다. 그러나 관련 2층 임시 건물 앞에는 ‘토지 보상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국가산업단지 건설은 불가능하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극심한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산업단지를 세우려고 하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연천군 및 이곳과 인접한 동두천시는 ‘인구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한 지역의 20~39세 여성 인구수를 해당 지역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수로 나눈 값을 소멸 위험 지수라고 하는데 소멸 위험 지수가 0.5 미만이면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말 현재 경기도에서 인구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 곳은 동두천·여주·포천시와 양평·연천·가평군 등 여섯 곳이다. 이 지역들은 서울과 통근 접근성이 부족할뿐더러 일자리와 지역 생산성도 부족해 젊은층 유입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는 경기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지난해 ‘지방 소멸 위험 지수’ 조사를 통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05곳을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했다. 5년 전인 2015년 80곳에서 25곳이 늘었다. 아울러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 중 60%에 가까운 10개 시·도에서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많은 인구 자연감소 현상이 나타났다. 2015년에는 2개였던 인구 자연감소 시·도가 5년 만에 5배로 늘어나면서 지역 소멸 본격화가 머지않았다는 우려감이 크다.
이는 지난해 전후(戰後) 처음으로 ‘데드크로스(출생자가 사망자보다 적어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상황)’가 발생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인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한국 주민등록인구는 5182만9023명으로 1년 새 2만838명(2.1%) 줄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최근 3기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저출산 해결을 다짐했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 어렵다.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추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부는 2007년에서 2017년까지 10년간 저출산 대책으로 약 130조원의 재정을 투입했지만,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저출산·고령화와 인구감소의 가장 큰 문제는 흔히 경제 분야라고 말한다. 한창 일할 나이의 인구(만 15~64세 생산가능인구)가 곧 ‘노동자’이자 ‘소비자’인데 이들의 규모가 줄어드니 만들어 팔 제품도, 살 사람도 줄어든다는 논리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1776)’에서 "어떤 나라든 그 나라의 번영 정도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척도는 인구의 증가 수"라고 했다. 그는 임금 상승이 국내총생산(GDP)의 규모가 아닌 인구 증가에 기반한 지속적인 성장에 의해 일어난다고도 했다. 핵심은 인구감소는 노동력 감소로 직결된다는 것. 이후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대 인구가 감소하는 영국에서는 더 이상 투자할 큰 기대를 할 수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인구감소가 노동력 감소로 반드시 이어지리란 법은 없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요시카와 히로시 일본 릿쇼대 교수는 "경제 성장을 결정짓는 것은 인구가 아니다"라며 "150년간 일본 인구 추이와 실질 GDP 통계를 보면 상관관계를 찾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이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구수보다 노동 생산성이 중요한 요인"이라고 했다. 선진국에서 노동 생산성 상승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새로운 설비와 기계를 투입하는 자본 축적과 넓은 의미에서의 기술 진보, 즉 혁신이라는 것이다.
◇선진국 경제 성장을 결정짓는 건 혁신
실제 일본에서는 한때 취직이 쉽지 않았으나 2010년대부터 인구가 감소하면서 청년들의 취업난이 오히려 기업들의 구인난으로 역전됐다. 기업들이 인재유치를 위해 경쟁을 하니 일본 기업들은 연봉을 후하게 주고 복리후생을 강화했다. 청년들의 경제력이 다시 개선되기 시작했다.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도 일본의 1960~2015년의 토지·주식시장을 분석하면서 "‘인구절벽’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1990년 이후 일본의 긴 불황이 ‘인구감소에 따른 수요부진’ 탓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인구가 아니라 자산시장의 거품 그리고 연이은 정책의 실패가 원인"이라고 했다. 단순히 인구가 준다고 경제 성장이 멈춘다는 과거의 가정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중요한 것은 경제개혁과 구조조정, 그리고 인구 하향 압력 속에서도 다른 각도에서 새로운 성장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을 찾는 노력이라고 조언한다. 그래야 인구감소→경제 성장 위축→고용악화→저출산→인구감소라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 LG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인구감소 시대에는 과거와 같은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의 효과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려는 구조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해 기존 제조업의 혁신, 공장 효율화에 주력하는 동시에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기반을 새롭게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과거와 같이 얼마나 저렴하게 만들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비싸게 판매할 수 있도록 고부가가치를 창조하는 데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생산성 향상은 기업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정부 정책도 이러한 기업 활동을 지원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는 노력과 함께 행정 서비스의 생산성 향상에 주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요 측면에서는 새로운 시장을 찾는 노력도 중요하다. 일본은 2000년대부터 상장기업의 상당수가 인구변화 전담조직을 상설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일상관찰을 통해 소소한 욕구를 제품·서비스에 내재화한 신개념 제품으로 새 시장을 창출했다.
‘이코노미조선’은 이번 커버 스토리에서 인구절벽을 상수로 인정하고, 위기 속 기회를 모색해 봤다. 인구절벽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닥친 절체절명의 위기일까, 새로운 도약의 디딤돌이 될까. 독자 여러분도 함께 고민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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