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규 영장 청구'가 박범계 '추미애 라인' 인사문제로 이어졌나

이도형 2021. 2. 1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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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 최종 조율 안 된 檢인사 들고 가 文 재가 받아내"
초유의 '민정수석 패싱' 전말
文, 조율 끝난 줄 알고 재가 가능성
일각선 "朴 독대해서 文에 추가 설명"
靑 "박범계 의지대로 절차 관철" 해명
'申수석 입지 줄었을 것 해석' 나와
민정 내부갈등·백운규 영장 관련설도
靑 "이진석 실장 사의표명 사실무근"
정치권 공방으로 비화
"檢개혁 본질 흐릴라".. 법무부 말 아껴
박범계 법무부 장관(왼쪽)과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연합뉴스
대통령의 핵심참모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과 검찰 인사를 둘러싸고 갈등한 끝에 사의를 표명한 사실이 공개됐다. 정권 내부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특히 지난해 내내 전국을 뒤흔들었던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 이슈라는 것이 사안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갈등이 계속될 경우 자칫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권력누수현상)으로 직행할 수도 있다. 청와대는 설명을 통해 조기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의문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17일 신현수 민정수석의 사의를 공식 확인하고 그 배경 등을 공개했다. 청와대 참모진이 인사를 두고 관계 부처와 갈등을 빚다가 사의를 표명했다는 민감한 사안까지 공개된 것인데 그만큼 청와대가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바라봤다는 의미다. 의혹이 장기화되면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된다는 판단이 작용된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 설명에도 의문은 남는다. 청와대는 신 수석과 법무부 간 조율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검찰 고위 인사안을 승인했다고 했다. 하지만 현 청와대 보고 시스템상 민정수석실을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인사안을 재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청와대 측 설명이다. 여권 일각에선 검찰고위 인사안을 받아든 문 대통령이 조율이 끝난 것으로 알고 인사안을 재가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로 들어와 인사안에 대해 추가로 설명했고, 문 대통령이 이를 듣고 재가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 경우 조율이 안 된 인사안이 어떻게 문 대통령에게 전달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인사안을 재가했을 때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청와대에서 이뤄진 의사결정 과정을 낱낱이 알려드리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국 박 장관의 주장을 관철하는 절차가, 의지대로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신 수석은 본래 8일 박 장관과 만나 인사 관련 협의를 할 예정이어서 일요일인 7일 인사가 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자신을 패싱한 박 장관과 청와대에 심한 실망감을 느낀 신 수석이 사의를 결심하게 됐다는 것이다.

박 장관이 신 수석 조율 없이 인사안을 밀어붙인 것을 두고 검찰의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구속영장 청구가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검찰 수사가 청와대를 겨누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청와대와 여권이 결국 친정부 검사들을 요직에 배치하는 법무부안에 힘을 실어줘 정권을 향한 수사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이 백 전 장관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두고 여권에서는 “어떻게 사법적 판단 대상이 되는지 의아스럽기 짝이 없다”(정세균 국무총리) 등 강한 반발이 있었다. 이는 결국 윤 총장이 요청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교체·한동훈 검사장 복귀’ 거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여권이 중대범죄수사청을 설치하고 검찰에 대한 압박에 나선 것도 신 수석 사의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청와대는 백 전 장관 구속영장 기각과는 관계가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구속영장 청구에 격노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구속영장 청구는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은 재강조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불편했다는 시각은 인정한 셈이다. 청와대는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에 연루된 이진석 국정상황실장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광철 민정비서관이 신 수석을 ‘패싱’하고 법무부와 인사를 주도한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친한 것으로 알려진 이 비서관은 지난해 검찰과 여권 간 갈등국면의 중심에 있었다. 청와대는 이 비서관과 신 수석이 이번 인사과정에서 한목소리를 냈다고 했다. 하지만 사의를 표한 신 수석과 달리 이 비서관은 사의를 표명하지 않았다.

곧 있을 검찰 중간간부 인사가 이번 사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검찰 중간간부 인사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신 수석의 향후 거취가 결정될 확률이 높다. 신 수석 사의가 그전에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신 수석은 주위에 “(청와대에) 마음이 떠났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왼쪽)와 열린민주당 황희석 최고위원. 연합뉴스
◆ 野 “정권 끝나고 난 후 큰 화 면치 못할 것” vs 與 “수석비서도 비서일 뿐… 처신 부적절”

이달 초 검찰 고위 간부 인사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둘러싼 논란이 17일 정치권으로 옮겨붙었다. 야당은 이제 취임 한 달이 갓 지난 신 수석이 사표를 낼 정도로 이번 검찰 인사가 비정상적이었다며 정권 차원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여권에서는 신 수석이 검찰 출신임을 지적하며 그의 처신이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신 수석의 사의 표명과 관련해 “검찰총장을 쫓아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정권의 비리를 감춰줄 검사는 그대로 두고, 정권을 강하게 수사하려는 검사는 전부 내쫓는 짓에 민정수석마저 납득하지 못하고 반발하는 상황”이라면서 “가장 문제가 많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그대로 두는 비정상적이고 체계에 맞지 않는 인사에 대해 취임한 지 한 달 갓 지난 민정수석이 사표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주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을 겨냥해선 “지금이라도 뭘 잘못됐는지 돌아보고 바로잡지 않으면, 정권이 끝나고 난 후에 큰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나경원 예비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신 수석이 끝내 투명인간 취급을 견디지 못한 모양”이라며 “여전히 이 정권의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은 조국 전 장관이다. 물러났지만 물러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상황이 이런데도 (여당) 서울시장 후보들이란 분들은 ‘미스터 친문’, ‘미스 친문’ 경쟁을 하고 있다”며 “친문 순혈주의에 완전히 매몰된 민주당 정권은, 더 이상 고쳐서 쓸 수 없는 정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임기 말이 되니 권력 내부가 곳곳에서 무너지는 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열린민주당 황희석 최고위원 페이스북 캡처
이와 달리 친문 진영을 중심으로 한 범여권에선 신 수석의 사의 표명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법무부 인권국장을 지낸 열린민주당 황희석 최고위원은 전날 밤늦게 페이스북에 ‘비서론’이란 제목의 글을 올려 신 수석을 꼬집었다. 그는 “수석비서도 비서의 수석일 뿐 비서인 것은 마찬가지”라며 “검찰 간부 인사에서 자기 뜻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대통령의 수석비서관이 사의를 표명한 게 적절한 처신인가”라고 되물었다. 황 최고위원은 또 “신 수석이 아무리 선거 과정에서 대통령을 도운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검찰 출신이고, 취임한 뒤부터 줄곧 검찰 쪽 입장을 반영하려 한 사람으로 보였다”고도 주장했다.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 측은 일단 말을 아끼고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추-윤 갈등’이 진화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 신 수석 사의 논란이 불거지면서 법무부도 당황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법무부 장관과 민정수석 간 갈등이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지면서 자칫 검찰개혁이라는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도형·김선영·김주영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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