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화기애애 네이트판 뒤 '그림자 노동'..모니터링 요원들 부당해고 구제신청

조해람 기자 2021. 2.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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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네이트판 메인 화면


포털사이트 네이트의 커뮤니티 서비스인 ‘네이트판’에서 게시글 모니터링 업무를 하던 노동자들이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파견업체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제기했다. 노동계에서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온라인 게시판 관리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이 인정될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17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네이트판의 모니터링 업무를 담당하던 A씨와 B씨는 지난해 12월 말 아웃소싱 업체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를 상대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냈다.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는 프리랜서 7000여명을 금융사·IT기업·콜센터 등에 파견하는 하도급 업체다.

A씨 등은 지난 2016년부터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와 계약을 맺고 SK커뮤니케이션즈가 관리하는 네이트판의 게시물·댓글 모니터링 업무를 했다. 폭력·혐오 게시물, 음란성 게시물, 불법광고 등을 모니터링해 제재하는 일이다. 주 6일 일하며 시간당 1000~1500개에 달하는 게시물·댓글을 직접 전수 모니터링했다. 코로나19나 방학 등으로 접속량이 많아질 때는 2500~3000개까지 늘었고 많게는 5000여개를 검수한 날도 있었다. 휴가나 명절도 없었으며, 실시간으로 글이 올라오는 온라인 공간 특성 때문에 식사도 하기 어려웠다. 3~6개월 단위로 도급 계약을 갱신하며 일하던 A·B씨는 지난해 8월 말 회사로부터 ‘조직 개편 사유로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고 9월에 그만뒀다.

pixabay


이번 부당해고 구제 신청의 쟁점은 A씨 등의 ‘노동자성’ 문제다. A씨 등은 자신들이 사실상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의 노동자로 일했기 때문에 정당한 사유 없는 계약 해지는 부당해고라고 주장했다.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 측은 A씨 등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 도급 업무를 수행한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부당해고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원·고용당국 등은 도급계약을 체결한 프리랜서의 경우에도 실제 노동 형태를 기준으로 직접 고용 여부를 판단한다.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는지,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가 정해져 있는지, 노동 자체를 대가로 급여를 받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A씨 측은 자신들이 주 6일 정해진 근무 스케줄대로 일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출·퇴근 때 보고를 해야 했고, 실시간으로 공지와 업무지시도 받았다고 했다. 근무지침에는 검수대상인 문구나 단어가 하나하나 세세하게 정해져 있다고 A씨 측은 설명했다. 모니터링을 놓치는 등 실수가 있었다면 보고 형식으로 그 사유를 설명해야 했으며, 보안 때문에 PC방 등에서 일하기 어려워 사실상 재택근무만 가능했다.

프리랜서로 계약했지만 급여는 건별이 아닌 ‘시급’으로 받았다. 최저시급에 가까운 돈이었다.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4대보험은 물론 야근수당·주휴수당도 받지 못했다. 입사 후 3주 정도 진행된 교육기간에도 교육수당을 받지 못했다. A씨는 “일반적인 프리랜서라면 판매직은 판매를 많이 할수록, 강사는 수강생이 많아질수록 인센티브를 받아 수입을 늘릴 수 있는데, 그런 기회도 전혀 없었다”며 “프리랜서라면서도 가산수당 없이 최저시급만 주면서 새벽근무를 강제할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을 것” 이라고 했다.

김상민 기자


온라인 게시판 모니터 노동자들은 대표적인 노동 사각지대 직군이다. 대부분 재하청으로 고용돼 4대보험 등 노동자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 유검우 IT노조 부위원장은 “업무에 필요한 제반환경을 아무것도 제공받지 못한 상황에서 업무 체크 방식은 굉장히 자의적이고 불분명하다.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지 않는다고 본다”며 “이 업계가 작은 규모가 아닐 텐데,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비슷한 문제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A씨는 “세상엔 정규직과 비정규직만 있는 줄 알았는데 비정규직보다 안 좋은 이런 계약이 있을 줄은 몰랐다”며 “회사가 최대한 비용을 줄이고자 편법적으로 만들어 잘못된 형태의 계약” 이라고 했다.

A씨 등이 부당해고 판정을 받는다면 IT업계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측면에서도 중요한 사례라는 해석도 나온다. 부당해고 판정의 전제가 ‘노동자성 인정’이기 때문에, 부당해고 판정이 난다면 모니터링 노동자들을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로 인정했다는 뜻이 된다. 유 부위원장은 “A씨 직종에 관한 노동자성 판단 사례는 없었고, 혹시 있더라도 알려지지 않았다”며 “모니터링 업무를 허드렛일로, 쓰고 버리는 사람으로 취급해온 게 이 업계의 인식이었다. (부당해고 판정이 난다면) 이것도 ‘필요한 노동’이라고 업계가 재인식하는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진수 노무법인 노동과인권 노무사는 “포털 운영자들이 맡아야 하는 핵심 업무를 지금까지 외부 하도급을 통해 운영해오면서, 그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돌아보지 않았다”며 “모니터링 직종의 노동자성을 판단한 의미있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 측은 “사측과 부당해고 구제 신청인 간의 입장차를 좁혀나가는 단계”라며 “사안과 관련된 내용을 확인해줄 순 없지만,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법에서 보장하는 바에 따라 위법함 없이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 등이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의 첫 결과는 이르면 이달 말 나온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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