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 '한파'로 국토 75% 얼어붙은 美.. "기후변화의 경고였다"

김표향 2021. 2. 1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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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부자' 텍사스에 '에너지 대란' 닥쳐
전기소비 급증·발전소 중단에 대규모 정전
"강추위 막을 설계 미비".. 전력시스템 붕괴
16일 최악의 한파가 덮친 미국 텍사스주 오데사에서 눈 덮인 발전소 옆 도로를 차량이 지나고 있다. 오데사=AP 연합뉴스

미국이 기록적인 ‘한파’에 완전히 얼어붙었다. 국토 4분의3이 눈으로 덮였고, 주민 2억명에게 경보가 발령됐다. 평소 눈 구경하기 힘든 텍사스ㆍ루이지애나ㆍ아칸소주(州) 등 남부에까지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지난 일주일간 미국 500여곳에서 최저 기온 기록이 깨졌다고 하니 말 다한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차질이 빚어진 건 물론이고, 16일(현지시간) 오후까지 최소 23명이 숨졌다.

한파는 ‘에너지 대란’으로 이어졌다. 텍사스, 오리건, 켄터키, 버지니아 등 18개주 550만 가구에 전기공급이 끊겼다. 그 중 텍사스에서만 400만 넘는 가구가 암흑과 추위로 고통받았다. 삼성전자의 유일한 미국 내 생산시설인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공장도 전력 공급을 받지 못해 가동을 멈췄다. 미국민들은 걱정하는 한편으로 황당해하고 있다. 텍사스는 전기와 연료가 남아도는, 독보적인 ‘에너지 부자’ 지역이기 때문이다. 어느 주보다도 많은 전기를 만든다. 2위 플로리다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미 에너지관리청에 따르면 2019년 미국 내 원유 41%, 천연가스 25%가 텍사스에서 생산됐다. 이 또한 압도적 1위다. 이런 텍사스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6일 최악의 한파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빚어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주민들이 전력 공급이 끊기자 연료용 프로판 가스를 충전하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휴스턴=AP 연합뉴스

가장 큰 원인은 에너지 시스템 붕괴다. 따뜻한 이 곳에선 거의 경험할 일 없는 혹한과 폭설에 난방용 전기 소비가 일거에 늘면서 전력망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뛰어넘었다. 설상가상으로 수많은 발전소가 연료와 물이 동결돼 가동이 중단됐다. 천연가스 수요가 급증한 탓에 일부 발전소는 연료 부족으로 전기를 만들지 못했다. 여름철 냉방전력 생산에 대비한 보수 공사를 하느라 진작에 문을 닫은 발전소도 많았다. 공급이 달리자 가격이 치솟았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휴스턴시의 시간당 전기 도매가는 1메가와트(MW) 당 22달러에서 9,000달러로 무려 409배 폭등했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자체 전력망을 운영하는 텍사스만의 독특한 에너지 정책도 사태를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남는 전기를 다른 주에 팔 수도, 이번 같은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다른 주에서 전기를 끌어올 수도 없다. 그렉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주 전력 공급을 관리하는 텍사스전기신뢰성위원회(ERCOT)를 조사하겠다”고 큰 소리 쳤으나, 때늦은 대책이었다.

전문가들은 한파 위기를 천재지변인 동시에 인재(人災)라 분석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폭설과 혹한은 막을 수 없지만, 대비만 잘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 언론은 2011년과 2018년에 한파를 경험하고도 겨울철 전력수요 급증 가능성을 무시했다고 질타한다. 제이슨 보도프 컬럼비아대 국제에너지센터장은 “발전소 등 에너지 공급원이 극한 추위에 대처할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은 탓에 전체 시스템이 얼어붙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美 텍사스주 전력 생산 비율. 그래픽=김대훈 기자

일부 공화당 의원과 화석에너지 지지자들은 풍력발전소 터빈 날개가 결빙돼 전기가 끊겼다며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책임을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풍력은 텍사스 전력 생산량의 23%에 불과한 반면, 가스(40%)와 석탄(18%) 등 화석에너지는 58%에 달한다. 더구나 겨울철에는 풍력 전기 생산량이 10% 수준으로 낮아진다. 화력발전소의 방한 시설 미비가 더 큰 문제였던 셈이다. 에너지분석가 매튜 호자는 “텍사스에 풍력발전마저 없었으면 전기 가격이 달까지 치솟았을 것”이라고 촌평했다.

해법은 간단하다. 화석에너지든 재생에너지든 비용을 들여 기후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게끔 설비를 갖추는 것이다. 친(親)환경 정책에 따라 나날이 전기 의존도가 커지는 상황에서 기후변화는 국가 전력시스템에 새로운 위협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한파도 온난화로 제트기류가 약해지자 북극에 갇혀 있던 극 소용돌이가 남하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미 남동부에서만 2050년까지 기후변화 위험을 처리하는 데 35%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에밀리 그루버트 조지아공대 인프라전문가는 “앞으로 기후위기가 악화되지 않도록 에너지 시스템을 친환경 연료로 전환하는 동시에 급변하는 환경에 대한 예측성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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