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빈자리 (하) / 손영준
우수상ㅣ 손영준 제조업 노동자
“저도 그만두겠습니다.” 멀뚱한 표정의 차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잘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다시 반복될 일과 또다시 비어 있는 사람들의 자리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 빈자리에 가서 그 사람들의 일을 대신하고 싶지 않았다.
빈자리가 많은 곳에서 여러 기계를 만지며 일한 시간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불과 두달 정도 바닥을 쳤던 일감은 서서히 올랐고 석달쯤 뒤에는 가장 바빴을 때의 80% 정도를 회복했다. 일감이 늘자 차장은 휴대폰을 들고 있을 때가 부쩍 늘었다. 그리고 현장의 빈자리는 하나씩 채워져갔다. 대부분 얼마 전에 해고된 사람들이었다.
“이럴 거면 그냥 잠깐 쉬고 있으라고 말할 것이지!”
“이럴 줄 알았지. 그냥 한달 잘 쉬었네, 뭐.”
다시 돌아온 사람들의 반응은 해고될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그게 나는 신기했다. 그 덤덤함과 무심함이 어쩐지 안쓰러웠다. 해고된 사람들은 다 비정규직이었고 재입사를 하면서 다시 비정규직이 됐다. 해고됐던 인원의 절반 이상이 다시 모였을 때쯤엔 일감이 가장 바쁠 때와 비슷할 정도가 됐다.
그전에도 비슷한 패턴으로 일감은 늘다 줄었고, 비슷한 방식으로 인원을 줄였다 늘렸다고 했다. 애초 정직원 수는 전체 야간조의 절반도 되지 않았고 그 수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늘지 않는 게 당연했다. 회사에서 조정하고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단순히 일감이 일정치 않으니 야간조 근무시간을 조정해가며 비용을 조절하는 것으로 짐작했다. 나는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이란 것을 다시금 느꼈다. S회사는 단지 야간조를 비용을 조절하는 ―정확히는 절감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없앨 수 있는 부분으로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S회사의 야간조는 원래 없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알았다. 처음에는 주간조만 운영했고 일감이 늘 때마다 잔업과 특근을 반복하던 직원들이 불만이 쌓여가자 야간조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애초 야간조의 시작은 주간조 정직원들의 바람에 의한 것이었다. S회사는 창업 20년쯤 된 회사였고 주간 근무자들은 전원 정규직이었다. 같은 일을 하는 야간조는 대부분이 비정규직인데다 일감이 줄면 인원도 줄이는 방식의 운영은 너무 뚜렷한 차별이었다.
집단해고 이후 많은 생각을 했다. 정규직인 나는 같은 야간조지만 야간조의 운명에 동승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해고됐다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좀 헷갈렸고 어느 순간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됐다. 그 결심을 실행하는 날은 내가 S회사에서 일한 지 2년이 다 돼가던 때였다.
처음의 집단해고에서 1년쯤 지난 시기에 다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전에 겪었기에 이미 다들 짐작은 하고 있었다. 반복은 짐작을, 짐작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줬기에 그전보다 더 덤덤한 모습으로 사람들은 차장의 말을 듣고 있었다. 전과 같은 얘기였고 차장의 표정도 전과 비슷했다. 비슷한 인원이 다시 해고 명단에 올랐고 휴게실 안은 역시나 조용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의 상황뿐이었다.
텅 빈 휴게실에서 가장 끝까지 앉아 있던 나는 생각을 굳히고 일어나서 사무실에 있던 차장에게 가서 말했다.
“저도 그만두겠습니다.”
멀뚱한 표정의 차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장이 작성한 명단에 나는 없었지만 나는 그 명단에 포함되고 싶었다. 그것이 잘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반복될 일과 또다시 비어 있는 사람들의 자리를 보고 싶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빈자리에 가서 그 사람들의 일을 대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알겠다.”
한참 지나서 입을 연 차장은 그 말밖에 하지 않았고, 나는 바로 짧은 인사를 한 뒤에 탈의실에서 짐을 챙겨서 공장을 나섰다.
나중에 S회사에 남아 있던 직원과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아예 야간조가 없어지고 남아 있던 야간조 직원들이 주간 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더 나중의 통화에서는 다시 야간조를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통화 뒤에 나는 내 결심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 뒤 나는 다시 비정규직이 됐다.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에 입사한 첫날, 나에게 일을 가르쳐주던 사람에게 나는 물었다.
“여기는 일이 많나요?”
지친 기색의 얼굴이 나를 돌아다봤다. 그 얼굴과 나는 5년 가까이 함께 일했다. 그곳에서는 급격히 일감이 줄어드는 일은 없었고 직원을 해고하는 일도 없었다.
이따금 S회사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연락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S회사를 나간 뒤에도 퇴사와 입사를 몇번 더 반복한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소식을 들었던 것이 3년쯤 전이다. 이제는 S회사와의 연도 다 끊어진 듯하다. 그래서 그곳에 빈자리가 또 있는지 어떤지를 나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지만 알 것도 같다. 그래서 알고 싶지 않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하편입니다. 수상작 일부를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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