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미국 반중 정서와 '와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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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미 정부의 첫 단추는 전임자의 반(反)이민 행정명령 철회였다.
1850년대 골드러시로 본격화한 중국인 이민은 가난한 미국 노동자들과의 심한 알력을 낳았고, 1870년대 남북전쟁 직후 불황은 '반중 감정'을 증폭시켰다.
근년 들어 멕시코 이민자가 우세하다지만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는 중국인 이민자들이 가장 먼저 차이나타운을 이룬 곳 중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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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미 정부의 첫 단추는 전임자의 반(反)이민 행정명령 철회였다. '유례 없는' 민족·종교적 쇄국 노선을 고수했던 트럼프는 2017년 1월의 '무슬림 입국금지'를 비롯, 재임 중 400여 개의 이민 난민 억제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 수많은 빗장을 열고 행정시스템을 다시 정비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트럼프 체제 이전, 이민에 관한한 가장 혹독한 조치는 1882년 체스터 아서 정부의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이었다. 1850년대 골드러시로 본격화한 중국인 이민은 가난한 미국 노동자들과의 심한 알력을 낳았고, 1870년대 남북전쟁 직후 불황은 '반중 감정'을 증폭시켰다. 실업과 저임금, 열악한 노동환경의 주된 원인을 자본이 아닌 중국인 탓으로 돌리는 정서가 팽배했고, 대다수 정치인과 노동조합이 동조했다. 그 결과가 중국인 배척법이었다. 10년 한시법으로 제정됐지만 1892년 한 차례 시효 연장을 거쳐 1902년 아예 시한을 없앴다. 중국이 2차대전 연합국의 일원으로 가담하면서 전후에야 법은 폐지됐지만, 감정적 후유증은 이미 뿌리를 깊이 내린 뒤였다.
근년 들어 멕시코 이민자가 우세하다지만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는 중국인 이민자들이 가장 먼저 차이나타운을 이룬 곳 중 한 곳이다. 광활한 밀 농장과 과수원, 수산업과 광업, 해운업, 알래스카 골드러시(1897~98)의 거점이 워싱턴주 시애틀이었다. 당연히 반중 감정도 거셌고, 1차대전 전후 불황과 1930년대 대공황기는 그 절정이었다.
1983년 2월 18일 밤 '와미 대학살(華美大屠殺)'이란 끔찍한 이름이 붙은 사건이 시애틀 차이나타운 루이자호텔 1층 클럽에서 일어났다. '아름다운 중화'라는 간판을 달고 부유층 중국인만 출입하던 그 도박장에 중국인 이민자 3명이 침입해 손님과 경비원, 딜러 등 13명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판돈 수만 달러를 턴 사건이었다. 사건 자체가 끔찍한 건 사실이지만 '대학살(massacre)'이란 표현은 과한 감이 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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