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美대통령 탄핵 어려운 이유

정시행 뉴욕 특파원 2021. 2. 18.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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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 백악관을 떠나는 트럼프 전 대통령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두 번의 탄핵 과정을 지켜보면서, 의문에 가까운 감탄이 매번 터져나왔다. 이 나라는 명백하게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조차 왜 이리 어려운가? 왜 이들은 손쉬운 정치적 보복을 인정하지 않는가? 같은.

지난 2019년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미 대선 개입을 주문한, 미국이 최악의 범죄로 꼽는 이적 행위를 저질렀지만 첫 탄핵 소추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2021년엔 의사당에 폭도 난입을 부추겼다는 혐의를 받아 탄핵 소추를 당하고도 또 면죄부를 받았다.

사람들은 공화당 의원들 머릿수만 세어보고도 ‘탄핵 정족수가 안 돼 부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결과도 그랬다. 그러나 당파주의로 치부하기엔 사정이 좀 복잡하다. 첫 탄핵 소추 때는 탄핵 여론이 절반을 넘을까 말까였다.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2차 탄핵 소추에서도 찬성률은 60% 언저리에 그쳤다. 의회 표결은 매번 절묘하게 여론을 반영했다. 민주당도 여론의 벽을 잘 알았다. 이들이 작성한 두 번의 탄핵안을 읽어보면, 정치적 분노를 가라앉히고 최대한 ‘역사의 기록’을 충실히 남기겠다는 노력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표결에 승복했다.

미국인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만 관대한 것일까. 미국엔 트럼프 이전에도 44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이 중엔 천문학적 예산을 낭비했거나, 거짓 정보를 동원해 불필요한 전쟁을 벌였거나, 분열을 선동하고 정쟁에 몰두하거나, 집무실에서 불륜을 저지른 대통령들이 있다. 권력 집중형 대통령제에서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무능과 추태, 불법이 다 망라됐다.

그러나 건국 이래 245년간 이런 대통령 중 누구도 탄핵으로 목이 날아가지 않았다. 퇴임해 면책 특권이 사라진 전임 대통령 중 단 한 명도 형사 기소되지 않았다. 트럼프가 현재 탈세, 대선 불복 교사 등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지만 실제 기소까지는 큰 장벽이 있을 것이다.

미국이 법치와 정의와 혁명을 몰라서 대통령들을 봐준 것일까. 헌법을 쓴 건국의 아버지들은 처음부터 탄핵이 매우 어렵도록 설계했다. 이에 대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정당의 일상적 분파주의는 대다수 현명한 이들의 관심사와 사명감을 꺾어놓는다”고 말했다. 탄핵의 성취감은 순간일 뿐, 이것이 초래하는 국민 분열이 나라를 더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다. 이후 양당제가 뿌리 내리면서 보복의 칼날은 언제든 상대에게서 내게로 향할 수 있음을 모두가 경험으로 체득했다.

‘대통령 탄핵·기소 제로’의 기록은 미국 민주주의의 영광이라기보단 감추고 싶은 값비싼 수업료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는 건국 70여년 만에 탄핵과 전직 대통령 처벌이 상수(常數)가 돼버린 한국이 앞으로 얼마나 먼 길을 더 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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