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사뿐사뿐, 새색시의 걸음
‘눈이 사뿐사뿐 오네/ 시아버지 시어머니 어려와서/ 사뿐사뿐 걸어오네(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 중 ‘눈’ 전문)
마을에서 제일 굵고 휘어진 손가락을 가진 할머니는 눈이 올 때마다 눈송이에 눌린 것처럼 마음이 무겁다. 겨울에는 할머니들하고 화투나 치며 놀다가도 봄이 돌아오면 일할 것을 생각하니 그랬다. 자투리땅이라도 놀리지 못하는 할머니들 중에서도 제일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할머니라서 그런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가마 타고 시집온 할머니는 부끄러워서 벌벌 떨었다. 댓섬(대나무 장식) 꼽아 놓고 결혼식을 할 때는 신랑 얼굴도 못 쳐다보았다.
신혼이라고는 삼 일 있다가 남편은 군대에 가고 시부모님 모시고 살면서 퍽 어려웠다. 게다가 남편이 제대하고 왔어도 서당에서 공부만 한 서생이라 일할 줄 몰랐다.
고스란히 일거리는 다 새색시의 몫이었다. 시아버지는 일 못한다고 남편을 매섭게 호통치기 일쑤여서 새색시는 몸이 부서져라 일해야 했다. 어린 마음에 지천(꾸중) 듣는 남편이 안쓰러워 남편 몫까지 해내려고 억척스레 일한 것이다.
남편은 견디다 못해 서울로 올라가 버렸다. “그때 함께 올라가블 것인디, 울 시어매가 니 없으믄 나도 못산다고 하도 그랬싸서 남았는디 평생 이라고 고생할 줄 몰랐소.”
신부가 안 따라오니 결국 다시 내려온 남편은 시아버지의 핀잔들을 다 받아내야 했다. “평생 일 못한다고 시아버지한테 소리 듣는 남편 맴은 어땠것소.” 자신이 힘든 것보다 남편의 속상함이 더 맘 아팠던 할머니는 밭일 논일을 덥석덥석 해냈다. 그렇게 인 박인 삶을 살다 보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일가심(일거리)이었다.
마을 한글 수업 시간에 눈[雪]에 대한 시를 써 오시며 들려주신 할머니의 지난한 삶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돈다. 늘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어려워하고 살았던 할머니의 마음이 오늘 사뿐사뿐 걸어와 마을 앞 느티나무에 눈꽃을 환하게 피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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