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세종의 '문명적 주체' 만들기

박훈 서울대 교수 2021. 2. 1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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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광화문에는 두 개의 동상이 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화폐에도 이 두 분은 등장한다. 왜 이 두 명일까. 이순신 장군은 일본 침입으로 위기에 빠진 ‘민족’을 구했기 때문이고, 세종대왕은 ‘민족의 문자’ 한글을 발명한 분이기 때문일 게다. 두 경우 다 동상까지 세워진 이유는 ‘민족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차치하고 세종의 경우는 좀 생각해볼 만한 지점들이 있다. 세종은 한글창제만 한 게 아니다.

박훈 서울대 교수

중국의 역법을 소화하여 <칠정산(七政算)>이라는 천문 계산서를 편찬했고 자동 물시계, 해시계를 만들었으며 아악을 제정했다. 장영실·박연 등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주역들이다. 그런데 이것은 ‘민족주의의 개가’일까.

독자들께는 좀 불편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글창제는 한자를 더 정확하게 읽기 위한 ‘발음기호’를 만들려는 동기도 있었다는 학설도 있다. 세종이 재위했던 15세기 전반 중국의 한자 발음은 조선이 알던 것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세월도 많이 흘렀고 몽골족의 지배도 오래 받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중국의 선진문물을 신속정확하게 수용하려면 이래서는 곤란했다. 그런 상황을 타개하려는 것이 한글창제 동기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세종은 또 <칠정산>의 편찬을 통해 조선이 중국 역법을 독자적으로 운용할 능력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세종이 명나라 황제의 역(曆)을 거부하고 조선만의 고유한 시간 체계를 구축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얼마 전 상영됐던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가 세종과 장영실을 중국과 조선 조정의 사대주의자들에 맞서는 인물로 묘사한 것은 현대 한국인의 민족주의적 욕망을 덮어씌운 것일 뿐, 실상은 정반대였다(이에 대해서는 과학사 전공자인 임종태 서울대 교수가 페이스북에 쓴 예리한 감상평을 추천한다).

세종의 최대 목표는 조선을 중국과 다른 ‘조선적’인 나라로 만드는 데 있었던 게 아니라 중국에 버금가는 ‘문명국’을 조선의 힘으로 건설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메이지시대 일본의 ‘문명개화’ 같은 것이었다. 세종이나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나 장기 전략은 같았다. 메이지 정부 수립 과정의 일본에서도 ‘전통수호가 일본수호’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메이지 정부를 격렬하게 공격했다. 그러나 오쿠보 등은 ‘서구화가 일본수호’라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전자의 세력은 ‘존왕양이’로 대중을 선동했지만, 정작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의 독립과 근대화를 이룬 것은 오쿠보 세력이었다. 돌이켜보면 또한 서양문물을 배워 ‘선진국’을 이 땅에 건설하려고 줄기차게 노력해온 대한민국의 고투도 이 방향과 역사적 맥락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 내내 사대부들은 세종을 조선에 중화문명의 초석을 놓은 군주로 떠받들었다. 그게 조선왕조의 국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족주의가 세상을 석권한 근대 이후 한국인들은 세종을 ‘민족문화의 창달자’로 바꾸어 추앙했다. 그 끝에 광화문의 저 황금빛 동상이 놓여 있다. 이처럼 역사는 현실에 의해 재구성되고 재소환된다. 그러니 누가 어떤 의미로 동상이 되고 지폐 초상화가 되며 박물관의 주인공이 되고 교과서에 대서특필되는가는 바로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세종은 ‘민족문화’를 창달했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을 재빨리 알아채고 그를 따라잡고자 총력을 다하고 그것을 마침내 조선 땅에 실현시켰기에 위대한 인물이다. 그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민족적 독자성’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세계 수준의 문명을 이 땅에 건설하고자 했던 그 불타는 야망이다. 문명의 수준이 확보되지 않은 ‘민족적 독자성’이란 우리 민족을 열등한 지경으로 몰아넣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종이 감행했던 그런 노력이 오랜 기간 쌓여갈 때, 우리 민족은 이 땅에서 새로운 중화, 새로운 문명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박훈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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