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처럼 과목 선택, 학점 취득.. 교원 확충-학교간 격차는 숙제
그러나 문제는 현실이다. 당장 이 같은 다양한 과목을 가르칠 교사가 태부족이고 수업의 질도 낮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학교가 속한 지역과 학교 규모에 따라 과목의 개설 수와 학생부 작성 수준이 달라질 수 있는 것도 문제다.
○ 일정 학점·성취도 이뤄야 졸업
17일 교육부가 발표한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에 따르면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학생들은 고교 1학년이 될 때 고교학점제에 맞춰 학교생활을 해야 한다. 1학년 때는 기본 수학, 기본 영어, 실용 국어 같은 공통과목을 듣는다. 2학년부터 자신이 설계한 진로에 맞춰 100개 이상의 일반·융합·진로 선택과목 중 원하는 걸 골라 직접 시간표를 짠다.
원칙적으로 대학처럼 일정 이상의 ‘학점’을 따야 졸업할 수 있다. 3년간 192학점 이상이다. 지금은 출석만 하면 졸업이 되지만 고교학점제에서는 성취도를 함께 충족해야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성취도는 △A(90% 이상) △B(80% 이상∼90% 미만) △C(70% 이상∼80% 미만) △D(60% 이상∼70% 미만) △E(40% 이상∼60% 미만)로 나뉘는데 E 이상 받아야 졸업이 된다. 40% 미만은 I(Incomplete)로 분류돼 별도 과제나 온라인 수업 등 보충 과정을 들어야 E로 끌어올릴 수 있다.
이날 교육부 발표 중 가장 눈길을 끈 건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과 함께 전 과목의 내신 평가방식을 절대평가제인 ‘성취평가제’로 바꾸는 내용이다. 성취평가제는 이른바 ‘내신 지옥’이라 불리는 같은 반 학생끼리의 경쟁을 막고 개개인의 발전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대입 선발 자료로서의 변별력이 사라지는 문제가 있어 논란이 됐다.
○ 지역·학교 격차 줄이고 수업 질 높여야
교육현장에서는 절대평가제 도입으로 인한 대입 변별력 논란보다 당장 고교학점제의 실현 가능성이 고민이다. 무엇보다 ‘선택과목’이 도시와 지방, 사립과 공립, 학군과 상관없이 모든 고교에서 다양하게 개설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17일 “교육부는 한 교사가 여러 과목을 가르치게 하겠다는 건데 교사 부담이 폭증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게 해서 수업의 질이 좋겠냐”며 “교원 수 자체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지방에는 여러 학교를 돌며 가르치는 순회교사를 운영하고 온라인 수업도 적극 활용할 것”이라며 “기존 교사가 가르치기 어려운 선택과목은 교원 자격이 없더라도 외부 전문가가 기간제 교사처럼 가르칠 수 있게 법령을 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지금도 지방 학교들은 기간제 교사조차 못 구해 난리인데 낮은 수당을 받고 농촌까지 가서 수업할 외부 전문가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같은 진보성향 교원단체에서도 “임시방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날 브리핑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고교 서열화가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교육 전문가들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꼬집었다. 다양한 수업 개설과 세심한 학생부 작성이 이뤄지는 일부 사립고나 선호 학군 명문고 진학 현상이 오히려 뚜렷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명문으로 소문난 A학교와 소외지역의 B학교에서 똑같이 A를 받은 학생이 있다면 누굴 뽑겠냐”며 “고교학점제가 오히려 고교 서열화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최예나 yena@donga.com·이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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