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3000억 시설증설에 부담금이 1850억.. 기업들 "투자 엄두 안나"

서동일 기자 2021. 2. 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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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조세에 허리 휘는 국내 기업들

기업 당기순익 50조 감소, 준조세는 68조 냈다

롯데제과는 껌을 팔면서 지난해 20억 원대의 폐기물부담금을 냈다. 이 부담금은 껌을 씹다 길에 뱉는 사람이 많아 환경미화 비용이 많이 들었던 1980년대 부과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껌 시장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고, 이제는 시민의식이 높아져 아무렇게나 껌을 뱉는 사람도 흔치 않다. 그런데도 껌 폐기물부담금 요율이 꾸준히 올라 롯데제과는 2000년 3억 원을 내다 2012년부터 최근까지 매년 20억∼30억 원의 부담금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이 이같이 ‘준조세’ 형식으로 낸 비용이 2019년 67조59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동아일보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함께 준조세 추이를 분석한 결과다.

2019년 국내 기업들의 당기순이익은 총 111조 원으로 전년 161조 원 대비 50조 원 줄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기업들이 부담한 준조세는 4조6700억 원 늘어 7.4% 상승했다. 2009년부터 최근 10년 동안 기업이 낸 준조세는 매년 4∼11%씩 상승했다. 재계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여권을 중심으로 이익공유제 도입이 논의되는 등 준조세 부담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본다.

3000억 시설증설에 부담금이 1850억… 기업들 “투자 엄두 안나”

국내 제조업체 대기업 A사는 2012년 계획했던 경기 소재 생산 공장 증설 계획을 지금까지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개발제한구역보전부담금’이 발목을 잡았다. A사가 증설을 위해 계획한 금액은 약 3000억 원, 하지만 공장을 증설하려면 1850억 원의 부담금을 내야 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A사가 공장을 세울 당시 이 지역은 개발제한구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공장 설립 후 해당 지역 전체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였다. 이 때문에 A사는 정부 측에 꾸준히 부담금 감면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증설 계획을 실행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는 현재 이 부지를 주차장으로 사용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과도한 부담금이 기업의 투자를 막은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B사는 서울 내 연구개발(R&D)센터를 지으며 건축비 1600억 원 중 80억 원을 ‘과밀부담금’으로 지출했다. 현행법상 정부 및 공공단체가 짓는 연구소는 과밀부담금이 감면되지만 기업이 짓는 연구소는 감면 조항이 없다. 결국 이 회사는 건축비의 5% 해당하는 금액을 부담금으로 지출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R&D 투자의 핵심은 인력이고, 연구소가 수도권을 벗어나면 고급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과밀부담금을 감수하더라도 연구소를 수도권에 지을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민간기업이 짓는 연구소만 감면 조항이 없다는 점은 역차별”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함께 분석한 준조세 현황 및 추이를 보면 이처럼 기업들은 준조세 부담으로 투자를 미루거나 역차별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당기순이익이 감소하는데도 법인세뿐 아니라 준조세 부담이 늘어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다.

실제로 2019년 국민, 기업이 정부 및 공공기관에 낸 준조세는 총 156조9200억 원, 이 중 기업들이 강제적으로 낸 준조세는 총 67조5900억 원이다. 이는 환경부담금, 폐기물부담금 등 기업이 경제 활동을 벌이면서 얻는 직간접적 이득에 대한 비용 성격을 갖거나 환경오염 등 사회적 피해에 대한 보상 성격을 가진 항목을 제외한 금액이다. 이러한 각종 부담금까지 포함하면 기업이 내는 준조세는 법인세(72조1700억 원)에 육박하거나 넘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조사 기간 국내 기업들의 당기순이익은 총 111조 원으로 전년 161조 원 대비 50조 원 줄었지만 이 기간 기업들이 부담한 준조세는 오히려 4조6700억 원 증가했다. 준조세 항목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보험료의 경우 2009년 대비 117% 급증했다. 전경련 측은 “지속적인 복지수요의 증가로 준조세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준조세 중에서 기업의 ‘비자발적 기부금’은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란이 돼 왔다. 동반성장기금, 미소금융재단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의 비자발적 기부금은 2009년 4291억 원에서 매년 증가해 2019년 총 6557억 원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10년간 52.8% 오른 셈이다. 최근에는 여당이 이익공유제를 추진하는 등 재계는 부담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익공유제의 모델이 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나 동반성장기금, 이 밖에도 올림픽 유치 등 국가적 행사를 위한 준비금 등 정부가 기업에 요구하는 비자발적 기부금 사례는 수없이 많다”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특히 현 정부 들어 반(反)기업 정서 혹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유로 각종 부담금을 늘리거나 사실상 강제적인 기부금이 늘어났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법인세 같은 세금 외에 준조세가 늘어나는 것은 기업들에 큰 부담”이라며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환원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준조세를 통해 사실상 강제화되는 부분이 늘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서동일 dong@donga.com·홍석호 기자

::준조세::
준조세 세금 외에 강제적으로 정부 혹은 공공기관에 내야 하는 돈. 기업의 경우 법인세를 제외한 강제적 납부액이 해당된다. 사회보험료, 환경부담금 등 각종 부담금, 비자발적 기부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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