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교육개혁은 사회개혁을 통해 완성된다
[경향신문]
우리의 공교육은 표준화교육 모형에 기초하고 있다. 교육은 국가단위로 표준화된 목표에 따라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교육과정이라는 ‘트랙’을 제시하며, 학생들은 동일한 과제를 경쟁적으로 수행하는 ‘트랙 주자’가 된다. 오직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달리되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 차이는 비교하기 쉬우며, 인간의 우열을 나누는 기준으로 활용된다. 학교는 이 기준에 따라 졸업장과 성적을 발급할 독점권을 가지게 되었고, 학생의 장래를 결정할 엄청난 권력을 쥐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모형으로 ‘생산’된 인간 능력의 획일성에 대해 사회적 불만이 점차 높아졌고, 수많은 미래교육 프로젝트들이 새로운 모형의 학교 형태를 제시하였다. 이들이 보기에 새로운 교육은 복잡하고도 중층적인 세계를 탐색하는 일이어야 하며, 교육과정은 동일한 모양의 트랙이 아닌 각자 다른 방향과 속도를 경험하는 창조의 과정이어야 했다. 또한 학생은 독특성을 가진 다양성의 존재로서 생애 전반에 걸친 삶과 직업을 창조하는 학습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지난 20년간의 한국 교육제도 변화는 획일적 표준화교육 모형을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교육이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똑같은 잣대가 아니라 다양성의 잣대로 인간 능력을 측정·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어제 교육부가 발표한 고교학점제 종합추진계획도 그런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문제 한 가지가 감추어져 있다. 표준화 모형을 폐기할 경우 서로 다른 트랙을 가는 학생들을 함께 묶어 서로 비교하게 되는데, 이는 결코 선발의 정당성이나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논리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시전형을 대신해서 수시전형이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온갖 종류의 문제는 바로 이런 난제를 가시화해준다. 서로 다른 맥락에서 서로 다르게 생산된 평가결과를 함께 놓고 비교해야 한다는 입시상황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추천서, 논문, 인턴, 수상기록 등이 넘쳐나게 되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요컨대 처음부터 비교 불가능한 것을 ‘공정하게’ 비교하겠다고 대든 결과가 결국 지금의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다시 정시선발 비율을 높이는 후진기어가 작동했고, 정부의 교육정책은 이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진흙탕 상황을 탈출하려면 현재의 모순을 넘어 보다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개혁을 꿈꿔야 한다. 교육개혁은 학교를 넘어, 대학을 바꾸고, 일터를 바꾸고, 종국에는 사회 전체를 바꾸고서야 비로소 완성될 일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교 안을 바꾸려 하지 말고, 학교를 둘러싼 환경을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경쟁은 결코 학교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학교를 둘러싼 조건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사회가 불평등화의 길로 치닫고 있고 교육 이외에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신기루이다. 또한 대학의 기능이 ‘정규학위’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비학위 과정과 평생학습 기능이 외면받게 되고, 따라서 불필요한 경쟁이 양산되기 때문에 나타난다. 그리고 기업들이 직업교육투자를 통해 전문인을 기르려 하지 않고 그 기능을 대학에 미루는 가운데 대학을 둘러싼 사회경쟁이 비정상적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나타난다.
지금까지 교육개혁은 사회구조를 ‘상수’로 놓고 그에 대응하는 교육을 ‘변수’로 보았다. 하지만 앞으로의 개혁은 인간화 교육을 ‘상수’로 놓고 그것을 무너뜨리는 사회구조와 환경을 ‘변수’로 놓는 기나긴 혁명이 되어야 한다. 학교를 바꾸는 일이 결국 사회를 바꾸는 일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이제 거꾸로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가 논의의 중심에 서야 한다. 사회평등화가 전제되어야 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일 의지가 있어야 한다. 성적과 석차, 졸업장과 학위, 학점 기능을 전면적으로 개혁함으로써 학교 성취의 사회적 교환가치를 절하할 수 있어야 한다. 입시에서의 공정성 개념을 다시 규정함으로써 입시가 능력자 지배주의를 실현하는 기제라기보다는 교육을 통한 사회계층이동 선순환 장치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전제로 우리 교육은 표준화 모형에서 탈피해서 창의성과 개성을 살리는 민주시민성 인간화 교육으로 나갈 수 있다.
어쩌면 듣는 이에 따라 이런 얘기를 이상주의적 농담으로 여길지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번에도 교육개혁은 무늬만 바꾸고 지나갈 것이다. 말만 무성한 채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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