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한은, 금융위 저격.. "빅브러더 되려 한다"
금융위 "한은이 법안 잘못 해석"
한국은행이 17일 금융위원회를 향해 “빅브러더가 되려 하느냐”고 공격했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강도 높은 비난이라 눈길을 끌었다. 금융위원회가 네이버 쇼핑몰 등에서 개인들이 포인트로 산 거래 내용을 정부가 수집하고 관리하는 법안을 추진하려고 하자 제동을 걸려는 것이다. 금융위는 “한은이 법안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빅테크 기업의 개인 정보 처리와 관련한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한은과 금융위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빅브러더’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가공의 독재자로 모든 국민을 감시한다.
한은은 관련 법안에 대해 법무 법인 2곳에 검토를 의뢰해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도 했다. 한은은 “가정 폭력을 예방하겠다고 모든 집에 CCTV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겠다는 것이냐. 자기 정보 결정권을 보장하는 헌법상 이념에도 반하는 방안”이라고 격렬하게 비판했다. “중국에서도 하지 않는 과도한 개인 정보 침해로 ‘명백한 빅브러더법’”이라고도 했다.
문제가 된 법안은 금융위가 추진 중인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발의했고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상임위에 상정됐다. 전반적 취지는, 네이버페이 등 빅테크 업체를 통한 거래가 늘어나는데 다른 금융업보다 소비자 보호 장치가 약하니 결제 기록을 정부가 관리하자는 것이다. 금융위는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한은은 시시콜콜한 개인의 거래 내용까지 정부가 통제하겠다는 계획이 개인 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최근 추세에 역행이라고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금융위가 밀어붙이는 법안엔 각종 ‘페이’ 이용 명세를 금융위가 금융결제원을 통해서 관리하고 수집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네이버·카카오페이 결제 규모는 지난해 100조원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빠르게 늘고 있다. 전체 신용카드 결제액이 연간 880조원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규모다. 빅테크 회사는 금융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페이’를 쓸 때는 은행에서 돈을 이체해 포인트 형식으로 충전하고 나서 결제하는 방식을 주로 쓴다. 금융위는 혹시라도 빅테크 기업이 도산하거나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해, 이 포인트를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라도 관련 정보를 수집해놓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관련 정보란 이름, 계좌 번호, 금액을 말하는 것으로 상세 구매 품목까지 수집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또 정부가 소비자에게 돈을 돌려줘야 하는 업무상 목적으로만 그 정보를 볼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강하게 반대한다. 정부가 거래 내용을 수집·관리하는 일부터가 ‘빅브러더'라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포인트 충전·결제 방식은 편의를 위해 카페 등에 일정 금액을 미리 결제해놓고 음료를 사 먹을 때마다 적립금을 차감하고, 모자라면 더 채워 넣는 것과 비슷하다. 국가가 그런 내용까지 관리하면서 필요하면 꺼내 보겠다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라고 말했다.
현재 개인정보보호법상 신용카드 거래 명세는 해당 카드사만 볼 수 있다. 은행의 계좌 이체 내용도 개인 정보 없이 은행, 계좌 번호, 금액 정도만 금융결제원이 처리한다. 탈세 등이 의심스러운 거래라는 이유 등으로 금융 당국이 개인 정보를 들여다볼 때는 반드시 본인에게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알리페이·위챗페이 등 빅테크 기업 결제 시장이 큰 중국에서도 정부의 결제 내용 수집이 한 차례 논란이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월 “알리페이를 미국에 상장하려다 (공산당) 지도부에게 회사를 빼앗기다시피 한 마윈(알리페이 모회사 알리바바 창업자)은 개인 금융 관련 정보를 넘기라는 지도부 요구를 거절했다가 미운털이 박혔다”고 보도했다. 빅테크 기업의 결제를 담당하는 중국의 감독 당국 왕롄(網聯)은 은행 계좌에서 빅테크 기업으로 이체되는 정보만 수집하고, 이후 결제 내용은 관리하지 않는다.
빅테크 결제라는 신기술을 둔 금융위와 한은의 갈등은 금융결제원의 통제권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라는 해석도 있다. 형식상으로는 사단법인인 금융결제원은 다른 은행 사이에 돈이 이체될 때 이를 중개하고 정산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은행이 사원 총회 의장을 맡고 있고, 한은 총재가 원장을 임명하게 되어 있어 대대로 한은 출신이 원장을 맡아 왔다. 하지만 2019년 한은 노조가 지명자를 반대하는 등 잡음이 일면서 금융위 출신인 김학수 원장이 취임했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위가 지급·결제(타행 간 이체) 분야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빅테크 기업을 앞세워 개인 정보 침해 위험까지 무릅쓰면서 무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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