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실수맨
[경향신문]
신입사원이 책상에 곯아떨어져 자자 부장이 책상을 내리쳤는데, 졸다가 벌떡 일어나서 한다는 말. “부장님이 제 집엘 다 찾아오시고, 어쩐 일이시랍니까?” 요전날 오전 약속을 깜빡. 부랴부랴 물티슈로 세수를 해가며 차를 몰았다. 약속을 메모해두지 않으면 깜빡깜빡 놓치는 경우가 생긴다. 오늘은 한 대학교의 요청에 비대면 강의를 만들고 있는데, 날을 까먹어서 실수로 알림을 했다. 그러나 약속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 하루를 벌게 되어 실수라도 즐거운 실수가 되었다. 중동지방 속담에 “낙타에게는 더 가벼운 짐보다 더 듬직한 발목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듬직한 어깨, 초롱한 눈빛과 야무진 마음가짐으로 난관과 실수를 이겨내야 하겠다.
‘실수’ 얘길 하니까 문득 생각나는 이가 있다. 성악가 파바로티다. 아버진 빵집, 엄마는 담배공장에 나갔다지. 가난했기에 사범학교에 진학해 초등교사가 되었다. 아이들과 노래할 때 가장 행복했다. 결국엔 뛰쳐나와 보험회사 외판원을 하면서 성악가의 꿈을 키웠다. 정식으로 음악공부를 하지 못했기에 만사 ‘실수맨’이었다. 아예 통째 오페라를 외우기 시작했다. 이후 대타가 생기면 어떤 배역이고 뛰어들게 되었다. 악보를 또 제대로 읽을 수 없었는데, 실수를 막고자 자기만 알아볼 수 있는 기보법을 만들었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해 실수가 반복되자 모두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웃었다. 친구들이 차고 넘치게 되었다. 음악계에 ‘부자 친구’ 가진 이는 널렸지만 ‘친구 부자’는 파바로티가 킹왕짱이었다.
한파 특보가 뜬 겨울날 산골에 ‘네순 도르마’가 수탉처럼 우렁차다. “새벽이 오리니 내가 승리함을 보리라.” 낼 아침엔 파바로티를 닮은 넙대대한 해가 뜨겠지. 실수맨의 ‘최후 승리가’. 실수는 줄여가는 것, 신도 아니고 기계도 아닌 우리 인생들. 다만 노래하고 애써보리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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