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인척 감시 특별감사관 임명" 신현수 주장, 靑서 묵살당했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최근 여권이 정치 쟁점화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의 사찰 의혹에 대해 “청와대는 개입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신 수석은 작년 12월 31일 임명 직후 문재인 정부가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던 각종 현안의 해결을 위해 사실상 국정 기조 전환을 건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대부분 수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임명 한 달 만에 신 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계기는 검찰 인사에서 배제당한 것이었지만 국정 기조를 둘러싼 갈등이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신 수석은 지난 16일 청와대 비공개 회의 때 과거 국정원 사찰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청와대가 이 문제는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신 수석이 갑자기 국정원 이야기를 꺼내서 좀 놀랐다”며 “여러 차례 사의를 표명한 상황에서도 자기 의견을 계속 표명했다”고 했다. 최근 민주당은 “2009년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청와대 지시로 특명팀을 꾸리고 18대 국회의원 전원을 불법 사찰했다”며 자료 공개를 요구했고, 야당은 “선거를 위한 국정원의 정치 개입”이라며 반발했다.
이 밖에도 신 수석은 문 대통령에게 “특별감찰관을 빨리 지명해야 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특별감찰관은 대통령 친·인척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의 비리를 감시하는 직책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줄곧 공석이었다. 여권 관계자는 “신 수석이 검찰 문제뿐 아니라 일방통행식 국정의 전환을 건의했지만 묵살당하자 사의를 표명한 것”이라며 “문 대통령을 신뢰했기 때문에 더욱 불통의 벽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신 수석은 이날도 사의를 철회하지 않았고 문 대통령은 이를 수리하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인사를 두고 검찰과 법무부 견해가 달라 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었다”며 “그 과정에서 신 수석이 몇 차례 사의를 표시했고 대통령이 그때마다 만류했다. 지금도 그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국정전환 궁리하다 원점으로 돌아간 文… 신현수는 걸림돌이었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여러 차례 사의를 표명한 것은 검찰 인사 문제뿐 아니라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각종 국정 현안에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문제에 대국민 사과까지 했던 문 대통령은 최근 검찰 인사를 통해 추 전 장관 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여권 관계자는 17일 “신 수석이 벽을 느낀 것 같다”고 했다. 게다가 신 수석이 검찰 인사는 물론 과거 국정원의 사찰 의혹과 특별감찰관 임명 문제를 두고 계속 고언(苦言)을 하면서 문 대통령에게 불편한 존재가 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한 달 전인 지난달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추 전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에 대해 “국민들께 송구스럽다”며 “이제는 서로의 입장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국민을 염려시키는 갈등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했었다. 윤 총장에 대해서도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이라고 치켜세웠다. 문 대통령이 그동안 대립각을 세워왔던 검찰과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 같은 태도 변화에는 작년 12월 31일 임명된 신 수석의 온건론이 상당히 반영됐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손발을 맞춰온 대통령과 신 수석의 생각이 이때까지는 똑같았다”고 했다. 신 수석은 민정수석 임명 전 문 대통령에게 “저는 검찰 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대통령도 이를 수긍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최근 검찰 인사를 통해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신 수석이 윤 총장과 검찰 인사를 논의하고 있던 상황에서 지난 7일 신 수석을 배제하고 박범계 법무장관과 친조국 라인인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만든 검찰 인사안을 재가했다. 검찰이 월성 원전 비리 의혹과 관련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시점과 맞물리면서 항의 차원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왔다. 당시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대통령 공약이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검찰 인사와 백 전 장관 영장 청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 문제 외에도 최근 현안에서 미묘한 입장 변화를 보이고 있다. 신년 회견에서 4차 재난 지원금에 대해 “지금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민주당이 강력 주장하자 열흘 만에 검토를 지시했고 최근엔 “4차 재난 지원금 추경에 일자리 예산도 넣어달라”고 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신년회견 때는 “북미 간에 보다 좀 더 속도감 있게 긴밀하게 대화를 해나간다면 충분히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가 지난 15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만나서는 “서두르지 말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모습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4월 보궐선거 때문 아니겠냐”는 말이 나왔다. 이번 서울·부산시장 선거는 보궐선거지만 국민 절반이 투표하는 사실상의 대선 전초전으로 불린다. 여권 지지층을 결집해야 하는 상황에서 청와대 기조도 급변했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반(反)검찰 전선을 밀어붙여 온 민주당 친문 강경파 손을 들어준 셈”이라며 “재난 지원금도 처음에는 재정건전성 등을 걱정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의 말을 듣다가 선거를 앞두고 여당 편에 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선거에서 지면 끝장난다. 곧바로 레임덕이 시작될 것”이라며 “정권의 명운을 건 선거라서 법을 지키는 선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하기 때문에 대통령도 움직이는 것 같다”고 했다.
여권이 보궐선거에 ‘올인’하고 문 대통령도 여기에 호응하면서 신 수석과도 갈등이 생긴 것이란 분석이다. 신 수석과 가까운 한 정치권 인사는 “신 수석은 대통령과 소주를 할 만큼 서로 신뢰하는 사이였다”며 “신 수석이 믿었던 대통령이 자신이 원하던 길과 다르게 가니 굉장히 괴로웠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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