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까지 밀고 내려온 한파.. 풍력·가스발전 멈추자 일상이 멈췄다
미국 텍사스주를 덮친 기록적 한파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멈춰 섰다. 텍사스에 공장을 둔 HP와 3M 등 글로벌 기업들도 전력 수급에 차질이 생긴 것으로 전해졌다.
17일(현시 시각) 텍사스주 전기신뢰위원회(ERCOT)에 따르면, 혹한과 폭설로 발전소 가동이 중단되면서 4만5000MW 용량의 전력 공급이 끊겼다. 특히 끊긴 전력 중 풍력 비율이 33%인 텍사스가 친환경 풍력발전을 늘리고 있지만 겨울 추위에는 무용지물로 나타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좌파 기후 어젠다의 역설(the paradox of the left’s climate agenda)”이라고 평가했다.
◇풍력발전, 한파에 무용지물로 전락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현재 텍사스 380만 가구의 전력 공급이 끊겼다. 지난해 10월 기준 텍사스주의 발전원(發電源)별 비율을 보면, 천연가스가 52%, 풍력 등 재생에너지(수력 제외) 23%, 석탄 17%, 원전·수력·석유발전 등 8%다. 텍사스는 셰일가스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 특성상 천연가스 비율이 가장 크고, 최근 10년 새 풍력발전을 3배 가까이 늘렸다. 텍사스는 이미 운영 중인 원전 4기에 2기를 더 짓는 계획을 추진하다가 포기하고 공백을 메우기 위해 천연가스와 풍력발전을 늘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한파로 가스관이 얼어붙으면서 가스발전이 가동을 멈췄으며, 풍력발전기의 터빈이 얼어붙어 전력을 생산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텍사스 정전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그나마 원전이 전력 공급 역할을 하면서 텍사스 전역의 정전 사태를 막고 있다. 텍사스주 소재 원전 4기 가운데 사우스텍사스프로젝트(STP) 원전 1호기는 급수 펌프가 얼어붙어 전력 공급이 중단됐지만 나머지 3기 원전은 100% 출력을 유지하고 있다. 오스틴시는 전력 부족 사태가 심각해지자 삼성전자·NXP·인피니온 등 기업들에 공장 가동 중단을 명령했다. 삼성전자 오스틴 반도체 공장의 가동 중단 시점은 이날 오후 4시로 파악되고 있으며, 현지 전력 부족을 이유로 가동 중단 명령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스틴 공장은 1998년 설립한 삼성의 유일한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이다. 삼성전자 측은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가동이 중단된 게 아니고 오스틴시에서 미리 공지해 준비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동 중단에 따른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업 중단에 따른 생산 손실과 라인을 재가동하는 데 드는 복구 비용은 수백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5일 “풍력과 태양광발전 의존도가 커질수록 전력망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며 “재생에너지는 일주일 24시간 내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자유주의자들은 재생에너지 가격이 화석연료와 비교할 만하다고 하지만, 이는 보조금을 받을 때 그렇다는 얘기”라며 “이번 텍사스 에너지 비상사태가 보여줬듯이 공짜 점심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상 기후 대응엔 원전만 한 것 없어
앞서 지난 2019년 11월 미국 북서부를 강타한 한파 때도 풍력을 비롯해 가스·석유·석탄발전 등은 가동이 중단됐지만, 원전은 100% 가동됐다. 지난 2017년 허리케인 ‘하비’가 텍사스를 강타해 대규모 정유 공장이 멈추고 화학 공장이 폭발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원전은 정상 가동했다. 당시 미국원자력학회는 “초강력 허리케인 어마와 하비를 겪으면서 원전이 매우 안전한 에너지원임이 입증됐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 혹한에 가스관이 얼어붙거나 가격이 급등하는 문제가 있는 가스발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원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텍사스주 정전 사태는 탈원전을 밀어붙이는 우리 정부에 교훈을 준 셈”이라며 “재생에너지와 LNG 발전에만 힘을 쏟는다면 혹한이나 혹서기에 대규모 정전 사태를 맞을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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