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한번도 경험 못한 '삼권일체' 나라
제왕적 권력은 강성 지지층 덕
증오의 진영감정, 언론·법원 향해
4·7 보선, 삼권분립 생사 갈림길
참 별난 정권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몇 번째인가. 2년 전 사법농단을 이유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됐다. 작년 검찰총장이 징계를 먹었고 올해 ‘일개 판사’가 탄핵소추를 당했다. ‘거짓말의 명수’ 대법원장은 신기록의 끝판왕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에서 딱 하나 잘 지켜진 약속이다.
몽테스키외가 존 로크의 이권분립을 삼권분립으로 확장한 것은 봉건제 왕정을 넘어서기 위해서다. 그는 ‘법의 정신’ 등에서 “사법이 입법과 행정에서 독립되지 않으면 진정한 자유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2월 국회에서 정세균 총리는 ‘대통령에 머리 조아린다’는 야당 의원 지적에 “지금이 조선왕조 시대인가”라고 버럭했다. 과연 그럴까. 민주당에서 반문은 씨가 마른 지 오래다. 비주류 조응천 의원은 한 TV프로그램에 나와 “매우 힘들다”고 토로했다. 문비어천가만 울려퍼지는 여당. 왕정 얘기가 뜬금없지는 않다.
삼권의 정점에 있는 문 대통령. 집권 5년차에도 국정 주도권을 틀어쥐고 제왕적 권력을 누리고 있다. 견고한 지지층이 비결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1987년 이후 역대 정권에서 임기말 30%대 이상 지지율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라며 “민주당 지지층과 40대 연령층이 전폭 지원한다”고 분석했다.
강성 친문 지지자들은 여당 의원도 겁내는 ‘찐갑’이다. ‘문빠’ 눈밖에 나면 누구든 좌표 찍히고 문자테러를 당한다. 문 대통령 분신격인 윤건영 의원도 예외가 아니다. 판사 탄핵소추안 발의에 불참했다가 혼쭐났다. 좌파 완장부대가 반골을 솎아내려 설쳐대는 형국이다. JK 김동욱은 방송에서 퇴출됐다. 백선엽 장군 묘소 안내판은 뽑혀나갔다. 역사가 오래된 지역감정보다 무서운 게 진영감정이다. 증오를 먹고 자란다는 점이 서로 닮았다.
움베르토 에코는 신간 에세이집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에서 “증오는 집단적으로 나타날 때가 많다. 특히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경고한다. 특히 “독재 체제와 포퓰리즘은 대중에게 증오를 요구한다”며 “적에 대한 증오는 국민을 하나로 묶어 동일한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칭 촛불정권은 그간 반대세력을 숙청하며 주류 교체에 몰두해 왔다.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이었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의 오랜 감옥살이는 전례 없다. 적을 만들고 처단하면서 내 편을 결속하는 ‘분열의 정치’가 예술의 경지다. 추동력은 증오다. 이제 언론과 법원도 타깃이 되고 있다. 언론개혁 입법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반헌법적 처사다. 청와대가 법원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판결을 문제삼는 건 오만한 외압이다. 신현수 민정수석 사의 파동으로 눈엣가시 ‘윤석열 검찰’ 무력화 의도도 재확인됐다. 문 대통령이 신 수석을 패싱하고 법무부의 친정권 검사장급 인사안을 재가한 건 분명한 검찰 장악 의지의 표명이다. 권력수사 방해가 목적이다. 민주주의가 질식 중이다.
퍼스트 펭귄은 먼저 용기를 내 바다에 뛰어든다. 먹이를 구하려 바다표범에 먹힐 위험을 무릅쓴다. 두려워 머뭇대던 펭귄 무리가 뒤따른다. 김경율·진중권·최장집·강준만·홍세화·금태섭 등은 퍼스트 펭귄이다.
내년 대선 전초전인 서울시장 보선이 40여일 남았다. 민심이 경고하지 않으면 정권 폭주는 논스톱이다. 삼권분립의 생사가 국민 선택에 달렸다.
허범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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