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보고 골프친 트럼프와 다르네... 바이든 출근전 산책, 7시 칼퇴
지난 12일(현지 시각) 이른 아침 백악관 북쪽 잔디밭에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부부가 나타났다. 낡은 청바지에 검은 가죽재킷을 걸친 바이든은 한 손에 커피컵을 들고 있었다. 부인 질 여사도 잔디밭을 걸어다니며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조금씩 마셨다. 저먼 셰퍼드종(種)의 반려견 ‘챔프’와 ‘메이저’가 목줄 없이 주변을 자유롭게 뛰어다녔다. 대통령 부부가 하루 업무 시작 전 ‘모닝커피’를 함께하며 개들을 산책시키러 나온 것이다.
대통령 부부의 깜짝 등장은 백악관을 공동 취재하는 기자단에 예고되지 않은 일정이었다. 곧 기자들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질 여사가 밸런타인데이(14일)를 앞두고 잔디밭에 설치한 하트 모양 조형물을 살펴보던 바이든에게 한 기자가 “밸런타인데이 선물은 뭐냐?”고 물었다. 바이든은 “(오늘은) 밸런타인데이가 아니니까 안 알려주겠다”고 농담조로 답했다.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2분쯤 대화를 이어가던 바이든이 “올겨울은 너무 춥다”고 하자, 기자는 “다음엔 우리에게 줄 커피도 가져오라”고 받아쳤다. 또 웃음이 터졌다. 잠시 후 바이든은 기자에게 다가가 “사실 난 별로 마시고 싶지 않다”며 들고 있던 커피를 컵째 건넸다.
10분도 되지 않는 이 산책 장면엔 18일 취임 한 달(30일)을 맞는 ‘바이든 스타일’이 담겨 있다. 바이든은 아침마다 질 여사와 함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고 CNN이 16일(현지 시각) 전했다. 바이든은 이날 CNN의 ‘타운홀’ 형식 인터뷰에서 백악관에서 살게 된 소감에 대해 “아침에 일어나 질을 보면서 ‘도대체 우리가 어딨는 거요' 묻는다”고 했다. 그리고 아내와 커피 한 잔을 한 뒤 오전 9시쯤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로 출근한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부부가 백악관에서 각방을 쓴 것과는 대조적이다. 트럼프의 부인 멜라니아는 취임 후 5개월간 뉴욕에 머무르며 백악관에 입주하지도 않았다.
결벽증 탓에 ‘퍼스트 펫(대통령의 반려동물)’을 두지 않았던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은 열네 살 노견 ‘챔프’와 유기견 출신 ‘메이저’를 백악관에 데려왔다. 트럼프가 자기 소유의 리조트에서 유명인들과 골프를 치며 여가를 보냈다면, ‘홈보디(homebody·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로 불리는 바이든은 가족과 여가를 즐기는 편이다. 취임 후 보낸 네 번의 주말 중 두 번은 워싱턴DC의 성당을 찾아 미사를 봤다. 한 번은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으로, 또 한 번은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떠났다. 모두 가족과 함께였다.
언론과의 관계도 달라졌다. 트럼프는 취임 열흘도 지나지 않아 CNN과 뉴욕타임스 등을 “가짜 뉴스”로 부르며 주류 언론과 전쟁을 벌였다. 바이든은 “브리핑룸에 진실과 투명성을 되돌리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트럼프 행정부에서 유명무실해진 백악관과 각 부처 정례 브리핑을 다시 활성화했다.
백악관 분위기도 달라졌다고 한다. 트럼프는 서류 읽는 것을 즐기지 않아 정보 당국의 ‘대통령 일일 보고'조차 구두로 간단히 받거나 건너뛰었다. TV 시청에 많은 시간을 써서 백악관 직원들의 일과도 불규칙했다. 하지만 바이든은 아내와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서류를 읽고 회의에 참석하는 전통적인 스타일의 그가 취임하면서 백악관 직원회의는 평일 오전 8시쯤으로 고정됐다고 한다. 바이든은 퇴근도 규칙적인 편으로, 오후 7시쯤이면 서류 뭉치를 들고 관저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대통령 가족이 워싱턴DC의 지역 상점을 찾기 시작한 것도 바이든 시대의 변화다. 바이든은 취임 후 첫 일요일이었던 지난달 24일 조지타운에 있는 델리 ‘콜 유어 마더’에서 베이글과 커피를 샀다. 이후 이 가게엔 하루 전에 예약해야 베이글을 살 수 있을 만큼 손님이 몰렸다. 부인 질 여사는 밸런타인데이를 이틀 앞둔 12일 미 의회 근처의 디저트 가게에 들러 바이든에게 선물할 컵케이크와 마카롱을 샀다. 평범한 여성들처럼 ‘곱창 머리끈(scrunchie)’으로 머리를 묶은 모습이 소탈하다며 화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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