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 수석 사의 파동 이면엔 청와대·검찰 '깊은 갈등의 골'

이완 2021. 2. 1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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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뉴스분석]
현 정부 첫 검찰 출신 민정수석
검찰 인사 '패싱'에 수차례 사의
검찰개혁 과정서 누적된 갈등 방증
청와대 신현수 민정수석과 김외숙 인사수석이 지난 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리는 국무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임명 한달 반 만에 사의를 밝힌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검찰개혁 과정에서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 조직 사이에 누적된 갈등 수위가 그만큼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검찰과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문 대통령이 임기 중 처음으로 발탁한 검찰 출신 민정수석마저 검찰 인사를 둘러싼 정권 수뇌부와의 갈등 끝에 직을 던지겠다고 나선 것부터 심상찮은 신호다. 문 대통령이 즉시 사표를 반려했다고 하지만, 신 수석이 아직까지 사의를 번복하지 않고 있다는 건 인사 과정에서 쌓인 감정적 골이 메워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일각에선 신 수석의 사의 표명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아닌 문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는 17일 신 수석이 검사장급 인사 과정에서 박 장관과 갈등을 빚은 뒤 문 대통령에게 여러차례 사직 의사를 밝힌 사실을 공개했다. 일반 정무직 공무원도 아닌 청와대 고위 참모의 사의 표명 사실을 사표가 수리되지도 않은 단계에서 인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자칫 집권 후반기 권력누수로 비칠 위험마저 감수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검찰 인사에 대해 이견이 있었고 (신 수석의) 사의 표명이 있었다는 것은 팩트다. 법무장관의 (인사)안이 (민정수석과) 조율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에게) 보고가 되고 발표가 됐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7일 검사장급 인사에서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이종근 대검찰청 형사부장 등 이른바 ‘추미애 라인’으로 분류된 검사들이 자리를 지켰고, 일선 복귀 가능성이 점쳐지던 윤 총장 측근 한동훈 검사장은 한직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에 유임됐다. 박 장관 쪽은 “최대한 (윤 총장 쪽 의견을 들으려고) 애를 썼다”고 했지만, 윤 총장과 대검 쪽은 ‘인사 패싱’을 당했다고 들끓었다. 박 장관이 만든 인사안에 대해 좀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던 신 수석은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인사가 발표된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애초 이번 검사장급 인사를 앞두고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전임자인 추미애 장관 시절 누적된 검찰 조직의 불만을 다독이기 위해 윤 총장 쪽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출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문 대통령은 새해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총장에 대한 저의 평가는 그냥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라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이제는 서로의 입장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국민을 염려시키는 그런 갈등은 다시는 없으리라고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예측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이런 전망은 어긋났다. 윤 총장 쪽 의견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청와대는 박 장관이 신 수석과 조율하지 않은 인사안을 문 대통령에 직접 보고했고, 당연히 신 수석과 조율을 거친 것으로 생각한 문 대통령이 이를 재가해 발표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이런 설명은 법무부 안을 민정수석이 장관과 조율한 뒤 대통령에게 보고해온 관례에 비춰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법무장관이 민정수석을 건너 뛰고, 그조차 ‘수석과 협의가 된 것처럼’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면 자칫 ‘월권’이나 ‘기망’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여권과 법조계 안팎에는 신 수석의 사의 표명이 박 장관의 ‘패싱’에 따른 모욕감과 무력감 때문이라기보다, 자신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은 문 대통령에 대한 섭섭함, 친정인 검찰 앞에서 권위를 세우지 못하게 된 데 따른 수치심 때문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신 수석을 잘 아는 법조계 관계자는 “애초 신 수석이 조율한 인사안을 재가하려던 문 대통령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해 대전지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에 격노해 마음을 바꿨고, 박 장관의 인사안대로 재가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했다. 갈등의 당사자로 지목된 박 장관이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는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한 원로는 “민정수석은 윤 총장의 잔여 임기 전까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조율하고 싶었겠지만, 문 대통령은 검찰 인사권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강경하고 원칙적”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일단 신 수석과 박 장관의 갈등을 인정하는 선에서 상황을 마무리지으려는 분위기다. 몇몇 언론이 제기한 민정수석실 내 갈등설은 강하게 부인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광철 민정비서관이 법무장관 편을 들어 신 수석을 패싱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직을 걸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청와대는 신 수석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러 채널로 설득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신 수석이 임명 두달도 안 돼 그만둔다면, 임기말에 접어든 문 대통령의 권위와 리더십에도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수석은 아직까지 사의를 번복하지 않고 있어 사퇴 파동이 완전히 진화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여권 내부에선 윤석열 총장의 징계 무효 결정 이후 한때 유화론을 모색했던 문 대통령이 다시 검찰에 대한 강경기조로 선회한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이에 따라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후속 조치가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완 서영지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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