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2만원, 프라하 야경 보러 가실 분~~

오로라 기자 2021. 2. 1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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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랜선여행 新시장 열렸다

“저것 보세요. 코로나 전엔 밤낮으로 사람이 득실했던 카를교가 텅텅 비어있네요.”

지난 11일 새벽 2시(한국 시각) 기자의 노트북 화면에 모습을 나타낸 영국인 가이드는 체코 프라하의 유명 관광지인 카를교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줌 화상 채팅방엔 기자를 포함해 독일·미국 등에서 접속한 ‘랜선 여행자’ 6명이 모였다. 모두 프라하의 야경을 구경하려 에어비앤비에서 판매하는 온라인 비대면 여행 체험권을 2만원에 구입한 사람들이었다. 이날 프라하 야경 투어는 골든웰, 구시가광장 등 현지 주요 관광지를 한 바퀴 도는 방식으로 한 시간 넘게 진행됐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의 하늘길·바닷길이 모두 막히면서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이른바 ‘랜선 여행’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현지 가이드가 관광 명소를 돌아다니며 풍경을 찍어주고, 여행자들은 집에서 감상하는 이색 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랜선 여행을 서비스하는 국내 스타트업 ‘가이드라이브’의 김지형(42) 대표는 “랜선 여행은 지난해 수입이 거의 없어졌을 때 ‘설마 이런 게 되겠냐’는 생각을 하며 내놨던 상품”이라며 “의외로 반응이 폭발적이었고, 최근엔 기업의 단체 비대면 야유회 같은 의뢰까지 들어온다”고 말했다. 여행 업체들이 앞다퉈 시장에 뛰어들면서 지난해 5~6곳 수준이었던 랜선 여행 업체들은 올해 수십 곳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지에서 가이드가 온라인 설명 지난 11일 새벽(한국 시각) 줌 화상회의에서 프라하 랜선 야경 투어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중세 흑사병 시대의 의사로 분장한 가이드가 프라하 유명 관광 명소인 구시가지광장으로 들어서면서 온라인 여행자들에게 현지 역사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오로라 기자

◇랜선 여행, 여행업계 살리는 ‘희망’으로

시장 조사 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인터넷으로 예약받는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OTA)의 시장 규모는 2019년 7447억3000만달러(약 825조원)에서 지난해 5957억8000만달러로 급감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폐업한 여행사가 636개로 추산될 정도로 업종 전체가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위기에서 랜선 여행은 여행업계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 월 520억원 이상의 거래액을 기록했던 한국 여행 스타트업 마이리얼트립은 작년 4월 거래액이 10억원까지 줄었다. 하지만 랜선 여행 상품을 내놓으면서 10월에는 거래액이 100억원까지 회복됐다. 마이리얼트립 관계자는 “랜선 여행의 인기 덕분에 회사가 유지되고 있는 셈”이라며 “최근엔 캐나다 한 대학의 재학생 742명을 대상으로 랜선 경복궁 투어를 진행하는 등 거래액 규모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지난 9일 마이리얼트립에서 판매된 터키 이스탄불 랜선 투어에서 가이드가 터키 국민빵 '시미트'를 여행자들 대신 먹으며 맛을 묘사하고 있다. /마이리얼트립

해외에서도 랜선 여행의 열기가 뜨겁다. 에어비앤비는 지난해 4월부터 여행 감소로 수입이 줄어든 전 세계 각지의 호스트(집주인)들에게 자신의 페이지에서 랜선 여행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했는데, 두 달 만에 프로그램 수가 400건을 돌파했다. 프랑스인이 파리의 거리를 거닐며 보여주는 상품이나, 멕시코·인도네시아·자메이카 등에서 이국적인 전통 음식 만들기를 가르쳐주는 식이다. 인기가 많은 상품은 월 거래액이 10만달러(약 1억1070억원)로 자신의 집을 빌려주는 것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 씨트립도 지난해 3월부터 ‘하이난의 최고급 호텔에 묵어보기’와 같은 랜선 여행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랜선 여행과 함께 지역 특산품을 판매하는 씨트립의 라이브 쇼핑 방송에서는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누적 24억 위안(약 4125억원)에 이르는 상품이 팔렸다.

◇업계, “랜선 여행, 코로나 끝나도 인기 지속된다”

여행업계에서는 코로나가 끝나도 랜선 여행 수요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가기 전 여행 관련 서적이나 유튜브, 블로그로 정보를 힘들게 모았는데, 차라리 2만원 안팎의 랜선 투어로 알짜배기 ‘여행 예행연습’을 하려는 수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개인이 아닌 기업이나 학교, 관공서에서 워크샵 또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랜선 여행을 활용하려는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랜선 여행에 이어 ‘랜선 체험' 시장도 주목받고 있다. 온라인상에 모여 같은 취미를 즐기는 이른바 ‘온라인 동호회'다. 국내 여행 스타트업 프립에서는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조깅을 하는 ‘랜선 클럽 나 홀로 조깅’ 등의 체험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여행 업체 클룩도 호주·싱가포르·한국 등 각지에서 가수를 초청해 라이브 공연을 보여주는 상품을 판매한다. 업계 관계자는 “하나투어 같은 기존 여행 강자들도 랜선 여행이나 체험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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