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전 대통령·장관들까지 '새치기 백신 접종' 발칵

공식 접종 시작 전 몰래 맞은
고위층 487명 '게이트' 비화
전 대통령 "임상시험 자원"

[경향신문]

페루의 전 대통령 등 정부 고위인사 487명이 ‘새치기’로 코로나19 백신을 먼저 맞은 사실이 드러났다. 백신구매 책임자였던 외무부 장관과 보건부 장관까지 포함된 ‘백신 게이트’로 번지면서 의회와 검찰이 조사에 나섰다.

프란시스코 사가스티 페루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TV연설에서 “마틴 비즈카라 전 대통령 등 정부 고위공무원 487명이 공식 접종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10월 미리 코로나19 중국산 시노팜 백신을 접종했다”고 밝혔다. 사가스티 대통령은 “이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적법하지 않은 방법으로 백신을 접종했다”며 “분노와 실망, 깊은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부패 혐의로 탄핵당한 비즈카라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이던 지난해 10월 시노팜 백신을 먼저 접종한 것으로 밝혀졌다. 비즈카라 전 대통령은 “임상시험에 자원해서 맞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접종한 의사는 16일 의회조사에서 “비즈카라 전 대통령은 자신이 맞은 것이 플라시보(위약)가 아니라 진짜 백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임상시험 참가자들은 자신이 맞는 것이 진짜 백신인지 위약인지 알지 못하고 접종한 뒤 반응을 보고하게 되는 데 그는 이 사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의사는 “공식 접종이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당시) 대통령이기 때문에 국가 안위를 위해 먼저 접종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새치기로 접종한 사람 중에는 비즈카라 전 대통령의 부인과 형도 있었고, 엘리자베스 아스테테 전 외무장관과 필라르 마세티 전 보건장관도 있었다. 이들은 정부의 백신계약 주 책임자였다. 특히 마세티 전 보건장관은 “선장은 마지막에 배를 떠난다”며 자신은 가장 나중에 백신을 맞겠다고 해 국민적 인기를 누렸으나, 몰래 먼저 맞은 사실이 드러났다. 아스테테 장관은 “시노팜 백신 시험을 하고 남은 백신이 있다고 해 맞았다”고 밝혔다.

관영 안디나통신은 새치기 접종을 받은 사람들의 목록이 정부 감사관실과 검찰청, 보건부 장관이 꾸린 조사위원회로 보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페루는 지난 9일부터 남미 국가 중에선 처음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30만회 분량을 확보했고, 의료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존스홉킨스대 집계를 보면 페루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120만명을, 누적 사망자 수는 4만3800명을 넘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