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태세 보완' 말뿐..해안서 수km 이동 때까지 조치 없어

박수찬 2021. 2. 1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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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남성 월남 상황·의문점
해안철책 하단 배수로 뚫고 통과
CCTV 포착된 이후 병력 출동
신병 확보까지 3시간이나 걸려
어민들 입는 잠수복·오리발 발견
한겨울 장거리 바다수영 의문점
정확한 신원·출발 지점 밝혀져야
서욱 국방부 장관이 17일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 후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강원 고성군 민간인통제선 일대에서 16일 붙잡힌 북한 남성의 월남에 대해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 16일 북한 남성이 동부전선 해안철책을 헤엄쳐 귀순하는 과정에서 군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했다. 서 장관은 17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장관으로서 국민께 실망을 안겨드린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국방부 장관이 ‘경계실패’를 문제로 사과한 것은 2019년 6월 북한 소형목선의 ‘삼척항 입항’ 귀순 사건 당시 정경두 전 국방부 장관의 ‘사과 성명’ 이후 2년 만이다.

하지만 북한 남성이 해안에 상륙한 직후 군 감시장비에 수차례 포착됐으나 대응 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은 강한 비판을 받을 대목이다. 휴전선 철책에서 경계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대비태세를 보완하겠다”고 강조했던 군 당국의 공언도 무색해진 상황이다.

◆배수로 뚫리고 대응조치도 미흡

17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민간인으로 추정되는 북한 남성은 16일 수영을 하며 남하, 휴전선 이남 일반전초(GOP) 이남 통일전망대 인근 해안에 올라와서 해안 철책 하단 배수로를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도로를 따라 움직였다. 북한 남성은 오전 1∼2시에 걸쳐 군 감시장비에 수차례 포착됐으나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접경 지역에서는 군 감시장비에 신원 미상의 사람이 포착되면 해당 지역 관할 부대는 신병 확보 작전에 즉각 돌입해야 한다. 하지만 군은 16일 오전 4시 20분쯤 GOP에서 5㎞ 정도 떨어진 고성군 민통선 검문소 폐쇄회로(CC)TV를 통해 7번 국도에서 북한 남성의 모습을 포착한 뒤에야 대침투 경계령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5분 대기조 병력을 투입, 오전 7시 20분쯤 해당 검문소 인근에서 신병을 확보했다.
박정환 합동참모본부장이 17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22사단 귀순자 상황 보고를 하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북한 남성이 최전방 철책이나 해안 지역에서 수㎞ 떨어진 민통선 검문소 인근으로 이동할 때까지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검문소 CCTV에서 포착된 이후 병력이 출동했으나 신병 확보에 3시간이 소요된 셈이다. 경계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부실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겨울에 헤엄쳐서 월남?… 의문 여전

북한 남성의 월남과 관련해 일부 정황이 드러났지만, 의문점도 적지 않다. 북한 남성은 휴전선을 넘어오는 과정에서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했다. 잠수복은 검은색 고무 재질의 일반 잠수복이 아닌, 어민들이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할 때 입는 머구리 잠수복이다. 잠수복과 오리발은 북한 남성이 상륙했다고 추정되는 해안 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안팎에서는 “잠수복이 있다고 해도 저체온증을 유발할 수 있는 겨울철 장거리 수영으로 월남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목선이나 부유물을 이용해 남하했다가 해안 인근에서 수영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군 소식통은 “당시 수온은 8도 정도로 3∼4시간은 헤엄을 통한 생존이 가능하다”며 “해상에서 식별된 부유물은 아직까지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북한 남성의 정확한 신원과 출발 지점 등도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차가운 겨울바다로 월남하는 것은 뛰어난 체력과 해상 지식 등이 필요하다. 군과 정보당국도 이 남성의 신원 확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다. 민간인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소식통은 “최근 북한이 추운 날씨 속에서 노동당 제8차 대회 열병식 등을 치르면서 북한군의 피로가 누적돼 탈영병이 늘어난 정황이 있다”고 전했다.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서는 방법으로 월남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강원도 동부전선에서 북한 남성이 기계체조 선수와 같은 몸놀림으로 철책을 넘어와 귀순 의사를 밝혔다. 이번엔 겨울 바다를 헤엄쳐서 월남했다. 군의 경계 시스템을 뛰어넘는 수준의 월남이 두 번이나 발생한 셈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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