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해상·철책·배수로.. 北 민간인에 총체적으로 다 뚫렸다
16일 오전 강원 고성군 민간인통제선에서 신병이 확보된 북한 남성 A씨는 바다를 헤엄쳐 군사분계선(MDL)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남쪽으로 넘어온 것으로 17일 드러났다. 해안철책 하단 배수로를 통과해 남측 땅을 온전히 밟았고, 이 과정에서 배수로 차단막이 훼손됐다. 지난해 7월 탈북민 김모씨가 강화도 해안 철책 배수로를 뚫고 재입북했을 당시 군 당국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2019년 6월 ‘북한 목선 삼척항 입항 사건’ 당시 해안 경계태세를 강화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 역시 공염불에 그쳤다.
북한 민간인 남성, 어떻게 헤엄쳐 넘어왔나
A씨가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하고 헤엄쳐 남측으로 넘어온 시간은 16일 오전 1~2시 쯤이다. 최전방 GOP(일반전초) 이남 통일전망대 부근 해안에 도착한 A씨는 해안철책 하단 배수로를 통과했고 7번 국도를 따라 민통선 내 제진검문소까지 약 5㎞를 이동했다. 당시 A씨의 이동 모습은 오전 4시 20분쯤 검문소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군 관계자는 “A씨가 입은 잠수복과 오리발이 해안가에서 발견됐고 철책 하단 배수로 차단막이 훼손된 걸 확인했다”고 밝혔다. A씨는 몸에 밀착되는 일반 슈트형 잠수복이 아닌 '머구리 잠수복'을 입었다고 한다. 머구리란 바다에 깊이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하는 어민을 뜻하는 강원도 방언으로, 이들은 주로 몸에 간단히 걸치는 일체형 방수복을 입는다.
A씨는 16일 오전 7시 20분쯤, 육군 22사단 수색병력에 의해 민통선 이북 야지에서 발견됐다. 오전 4시 20분 포착되고 ‘5분 대기조’ 개념의 병력이 출동했지만 신병 확보에 3시간이 걸린 것이다.
A씨가 관계당국 조사에서 본인을 ‘민간인’이라고 밝히면서 그의 월남행로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장비를 갖췄다고 해도 일반인이 영하의 추운 날씨에 장시간 수영을 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당시 수온은 5~6도대였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민간인이 한겨울에 약 10㎞를 헤엄쳐 귀순하는 게 과연 가능하냐’는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군 내부적으로) 수영을 할 수 없다는 게 최초 데이터였는데, 현장에서 확인해보니 (A씨가) 잠수복 안에 솜동복 같은 점퍼를 입었고, 바깥으로 끈을 졸라 매어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했다”며 “본인도 6시간 내외로 수영했다고 진술했다” 고 설명했다.
‘배수로 재입북’, ‘목선 입항’… 경계 실패 반복 이유는
군 당국은 지난해 7월 ‘강화도 탈북민 재입북 사건’ 당시 철책 하단 배수로가 사각지대로 지적되자 해안ㆍ강안 철책 배수로를 전수조사하고 취약점을 보완하겠다고 했다. 해안 경계작전 실패의 대표 사건인 2019년 ‘북한 목선 삼척항 입항 사건’ 때도 당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계속된 경계 실패에 군으로선 할 말이 없게 됐다. 더구나 이번 사건이 발생한 22사단은 지난해 11월 GOP 철책 귀순은 물론 2012년 일명 ‘노크 귀순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이 때문인지 군 당국은 여느 때와 달리 경계실패를 재빠르게 인정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해당 인원이 해안으로 올라온 이후 우리 군 감시장비에 몇 차례 포착됐으나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경계작전과 시설물 관리 등 해양 감시와 경계작전에 분명한 과오가 식별됐다”고 밝혔다. 박정환 합참 작전본부장은 "22사단에는 48개 배수로가 있는데 (전수조사 및 후속 조치 과정에서) 유독 이번 사건이 발생한 배수로가 보완이 안 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신원식 의원은 “2019년 6월 목선 입항 사건 이후 10차례 경계 실패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며 “과거 1.5년에서 2년에 한 번 꼴로 일어났던 일이 최근엔 2개월에 한 번 일어난다. 장병 정신상태부터 경계태세가 총괄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서욱 장관은 “현재로선 경계시스템보다는 경계 근무하는 인원의 과오가 큰 것으로 판단한다”며 “조사를 통해 명확한 내용을 확인하고, 그에 따른 후속 조치를 철저히 하겠다”고 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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